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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산동리에 있는 열녀 동래정씨의 조선 후기 정려와 충직한 노비 복이를 기리는 비와 단. 열녀 동래정씨(東萊鄭氏)는 도사(都事) 정운길(鄭雲吉)의 맏딸로 청송심씨(靑松沈氏) 가문의 심해(沈諧)와 혼인하였다. 동래정씨는 심해와 서울에 살고 있었다. 정유재란[1597]이 일어나자 임진왜란 때 안전했고 친정 식구들이 피난해 있던 전라도 함평으로 피난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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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해암리에 있는 열녀 여흥민씨의 조선 후기 정려. 열녀 여흥민씨(驪興閔氏)는 민흥기의 딸이며 장예원 판결사를 지낸 남양홍씨 홍우기(洪宇紀)의 부인이다. 홍우기의 아버지는 홍비(洪棐), 할아버지는 만전당(晩全堂) 홍가신(洪可臣), 외할아버지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다. 여흥민씨는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껏 섬기며 살았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편 홍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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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에 있는 열녀 전주이씨의 조선 후기 정려. 열녀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이명순(李命純)의 딸이며 진주강씨 강이덕(姜履德)의 부인이다. 전주이씨는 강이덕에게 시집와 시부모님과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그러던 중 남편 강이덕이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이씨 부인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씨는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며 따라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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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에 있는 열녀 청송심씨의 조선 후기 정려. 열녀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아산시 둔포면 운용2리 능안말에 살던 평산신씨 신광철(申光徹)의 부인이다. 신광철은 무신이며 부사과를 지냈다. 병자호란[1636~1637] 당시 신광철은 전쟁터에 나가고 심씨는 병환 중인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다. 청나라 군대가 아산 지역까지 오게 되자 병든 시아버지를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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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열녀 평산신씨의 조선 후기 정려. 열녀 평산신씨(平山申氏)는 아산 고을의 관리였다고 전해지는 고세진의 부인이다. 평산신씨는 어릴 때부터 유순하고 영특했으며 결혼한 후에도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집안의 화목에 정성을 다하였다. 하인들도 사랑으로 대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남편이 병이 들어서 위독해지고 신씨의 극진한 간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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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금성리에 있는 열녀 해남윤씨의 조선 후기 정려. 열녀 해남윤씨(海南尹氏)는 인주 금성리에 살았던 통덕랑 지응청(池應淸)의 부인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일찍부터 효녀로 칭송이 자자하였고, 결혼 후에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남편이 병을 얻게 되자 병 간호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으나 결국 남편이 세상을 떴다. 해남윤씨는 남편의 관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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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금성리에 있는 효부 경주최씨의 정려. 효부 경주최씨(慶州崔氏)는 호조참판을 지낸 충주지씨(忠州池氏) 지한문(池漢文)의 부인이다. 최씨는 어릴 때에도 효녀로 이름이 났고, 결혼 후에도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어 최씨는 남편과 함께 온갖 약재를 구해 다려 드리며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애를 썼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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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에 있는 효부 동래정씨의 조선 후기 정려. 효부 동래정씨(東萊鄭氏)[1649~1728]의 아버지는 정은(鄭嶾)이고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이다. 신창 수라리에 사는 해주오씨 선전관 오도빈(吳道彬)[1647~1706]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부모를 떠날 수 없어서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할 만큼 부모를 극진히 섬겨서 고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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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효부 양주조씨의 조선 후기 정려. 효부 양주조씨 정려(孝婦楊洲趙氏旌閭)는 신창맹씨 집안의 효자효부 정려 4기 중 하나이다. 효부 양주조씨는 조눌(趙訥)의 딸이며, 아들 맹세형(孟世衡)[1588~1656]으로 인해 승정원좌승지로 추증된 맹희(孟喜)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신창맹씨 가문에 시집와서 배우자를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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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에 있는 효부 의령남씨의 조선 후기 정려. 효부 의령남씨는 탕정면 매곡1리 맹골마을에 오랫동안 세거해 온 우봉이씨(牛峰李氏) 집안의 이배하(李培夏)와 혼인하였으나 일찍 사별하였다. 시아버지마저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어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난한 형편이어서 병구완을 제대로 못함을 한탄하며 매일같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중 어느날 개가 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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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신흥리에 있는 효자 강봉수의 조선 후기 정려. 강봉수(姜鳳壽)[1543~1615]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충청도 온양에서 태어났다. 자는 덕수(德叟), 호는 옛 문헌에 송암(松庵)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세인들은 강봉수를 ‘창암선생(窓巖先生)’이라고 불렀고 후손들도 창암공파로 칭한다. 증조할아버지는 진주강씨 온양 입향조 판관 강자위(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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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에 있는 효자 강이기의 조선 후기 정려. 강이기(姜履箕)의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명(士明)이고, 효자 창암(窓巖) 강봉수(姜鳳壽)의 9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자라 칭찬이 자자했는데, 어느 날 부친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강이기는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백일 동안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렇게 기도하며 극진히 간호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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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도산리에 있는 효자 김익생의 정려. 김익생(金益生)[1388~1450]의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성재(省齋)이다. 김녕김씨 아산 입향조 송암(松菴) 김질(金秩)[1364~1454]의 아들이며,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의 외할아버지이다. 아버지 김질은 고려가 망하면서 도고면 도산리에 들어와 절의를 지키며 여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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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송촌리에 있는 효자 김현의 조선 후기 정려. 김현(金鉉)[1595~1637]의 본관은 김해, 자는 옥이(玉耳)다. 김해김씨 음봉면 대동 입향조 김합의 6대손이고, 제용감 봉사를 지낸 김인지의 아들이다.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으며, 모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하였고, 계모를 맞이한 후에도 생모에게 한 것처럼 효로써 봉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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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효자 맹사성의 조선 전기 정려.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이다. 청백리, 명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맹사성은 효자였는데, 맹사성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어머니를 극진하게 간병하며 모셨다. 맹사성이 열 살 되던 해에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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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효자 맹흠규의 조선 후기 정려. 맹흠규(孟欽圭)[1735~1811]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 자는 유옥(幼玉), 호는 만옹(晩翁)이다. 신창맹씨 18대손으로 1765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1805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효자 맹흠규 정려와 관련하여 맹흠규의 효행 관련 사항이 전해지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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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궁화리에 있는 효자 안일관의 조선 후기 정려. 효자 안일관 정려가 있는 마을은 순흥안씨(順興安氏) 14세손 안수인(安守仁)이 세조 즉위 때 중앙 정치의 혼란을 피해 시흥에서 이곳으로 입향한 이후 순흥안씨 양도공(良度公)파가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다. 안일관(安日觀)[1669~1730]은 입향조 안수인의 4대손으로, 어릴 때부터 천성이 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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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에 있는 효자 이태연의 조선 후기 정려. 이태연(李泰淵)[1799~1867]은 본관은 전주, 자는 성장(聖長), 호는 강옹(江翁)으로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이다. 아버지 이의호와 어머니 초계정씨 사이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고 돌아가신 후 삼년상의 시묘를 하여 예를 갖췄다. 이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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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에 있는 효자 임태춘의 조선 후기 정려. 임태춘(任泰春)[1751~1811]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에서 출생한 조선 후기 영조 때의 학자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자인(子仁), 호는 농옹(聾翁)이다. 증조할아버지 서재 임징하가 옥사를 겪은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은거하였다. 귀머거리 늙은이라는 뜻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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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효자 정수징의 조선 후기 정려. 정수징(鄭壽徵)[1691~1747]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있어 칭찬이 자자하였다.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 조석으로 맛있는 음식을 차려드렸고, 추운 겨울밤에는 부모님이 추워하실까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고을의 관리가 되어서는 항상 부모님께 문안을 드린 다음 관청에 들어갔다. 부모님의 병환에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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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효자 채동교의 조선 후기 정려. 채동교(蔡東喬)[1772~1824]는 본관이 평강(平康)이고 염치읍 대동리에 5대째 세거하였다. 아버지는 이조정랑을 지낸 채지영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며 채동교는 2남 1녀 중 장남이다. 채동교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예의 바르기로 마을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 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