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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여오(汝五), 호는 청강(晴岡). 아버지는 감예종(甘禮從), 어머니는 박종(朴宗)의 딸로서 반남박씨(潘南朴氏)이며, 형은 감경인(甘景仁)이다. 감경륜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머리 6급(級)을 베었다. 사후 경상도에서 임진왜란 때의 공에 대해 계(啓)를 올려 면향(免鄕)되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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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여일(汝一), 호는 관술정(觀術亭), 아버지는 감예종(甘禮從)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종(朴宗)의 딸이다. 동생은 감경륜(甘景倫)이다. 감경인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권관이 되었다. 1606년(선조 39) 도해차관부사과 전계신(全繼信)을 따라 군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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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감문립(甘文立)은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고, 사복(司僕)을 지냈다. 선무원종3등공신(宣武原從三等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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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교통수단 및 도로와 철도 등의 관련 시설. 창원 지역에서의 교통은 전통적으로 물길을 많이 이용해 왔다. 그것은 창원 지역이 처한 지리적 배경에 기인한다. 물길의 이용은 멀리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창원 지역 곳곳에 분포하는 조개더미와 거기서 출토된 유물이 그 증거이다. 특히 성산 패총과 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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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탁영(權擢英)의 형이다. 권수영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세운 공으로 선무원종 1등공신에 녹훈되고 승차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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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권을의 자는 차갑(次甲). 아버지는 권준영(權俊英)이다. 이름은 을미년(1595)에 태어났기 때문에 ‘권을(權乙)’이라고 불렀던 것이 굳어진 것이라 한다. 『미수기언(眉叟記言)』에는 창원군 상남면[현 상남동] 바닷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세거지, 문중, 후손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권을은 조선 선조 대에 창원도호부 서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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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수영(權秀英)의 아우이고, 노경종(盧景宗)[1555~1625]의 장인이다. 권탁영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당시 노경종·김홍면(金弘勉)과 함께 소모장(召募將) 이정(李瀞)[1541~1613]의 참모가 되어 전공을 세워 1595년(선조 28)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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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으로 김옥견(金玉堅)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연종(金連宗), 어머니는 장세권(張世權)의 딸로서 안동장씨(安東張氏)이다. 김개는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서 나서 자랐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주부를 거쳐 1591년 장련현감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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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지역으로 낙향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석공(金錫貢)의 딸이고,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근사(金謹思)이다. 김경사는 음사로 벼슬에 나가 1521년(중종 16) 나주판관, 1526년 형조정랑이 되었다. 금산군수 등을 거쳐 1545년(인조 1) 성주목사가 되었으며, 그 뒤 나주목사를 지내고 광주목사로 있다가 처 김해김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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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금산(琴山) 김귀(金龜)[1426~1485]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옥견(金玉堅)의 손자인 김난종(金蘭宗)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로 감사를 지낸 김연(金緣)의 딸이다. 김계(金洎)[1538~?]는 1538년 창원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1582년(선조 15) 문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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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금산(琴山) 김귀(金龜)[1426~1485]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우추(金遇秋), 아버지는 김양후(金亮後)이다. 김곽은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속한 화목(花木) 사람으로, 1651년(효종 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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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지역으로 낙향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영인(靈人)·희우(希禹), 호는 금산(琴山). 아버지는 별시위(別侍衛)를 지낸 김이형(金利亨)이고, 어머니는 밀양손씨(密陽孫氏)이다. 김귀는 1453년(단종 1) 사마시에 급제하고 1466년 문과에 급제하여 장악원 장악(掌樂院掌樂)으로 있었다. 1469년(예종 1) 사헌부 지평에 이어 군기시 판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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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광주(光胄).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옥견(金玉堅), 아버지는 김택(金澤), 어머니는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의 손자 신용관(申用灌)의 딸로서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김윤종(金胤宗)이 사촌동생이다. 김난종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명종 때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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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경찬(景纘), 호는 동산(東山). 아버지는 김한(金漢)이고, 어머니는 감찰을 지낸 이옥성(李玉成)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김명윤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살았다. 1583년(선조 16) 19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1584년 사헌부감찰에 이어 선전관이 되었으며, 1585년 훈련부정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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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신묵재(愼黙齋). 아들로 김수광(金秀光)이 있다. 김불비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리총랑(典理總郞)·보문각직제학지교를 거쳐 서해도안무사·성균좨주겸의랑을 지내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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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유생. 김상정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덕삼(德三), 호는 곡천(谷川).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이견(金以堅), 어머니는 조수(趙洙)의 딸로서 함안조씨(咸安趙氏)이다. 김상정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어머니가 기이한 태몽을 꾸고 낳았다고 하며, 몸집이 유달리 컸다고 한다.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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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천장(天章), 호는 환성헌(喚惺軒).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김불비(金不比)이며, 아들은 김석공(金錫貢)이다. 김수광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금동마을에 살았다. 일찍이 양촌(陽村) 권근(權近) 문하에서 수학했다. 1450년(세종 32) 문과에 급제하여 1461년(세조 7) 예조좌랑이 되었고,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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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고(子高). 아버지는 금산(琴山) 김귀(金龜), 어머니는 판사(判事)를 지낸 김효로(金孝老)의 딸이다. 김옥견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1455년(세조 1) 사어(司禦)로서 세조의 즉위를 도와 정난원종공신(靖亂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함흥병마도위를 지내고 1504년(연산군 4)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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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형숙(亨叔).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관(金灌)이고,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신잠(辛岑)의 딸로서 영산신씨(靈山辛氏)이다. 김우운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직장(直長)으로 있으면서 공을 세워 선무원종1등공신에 녹훈되었다. 벼슬은 동지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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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유생. 김윤종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지(繼志)·치도(致道). 호는 유계(柳溪).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옥견(金玉堅)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김혼(金渾)이다. 김난종(金蘭宗)이 사촌형이다. 김윤종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정우당(淨友堂) 김식(金湜)의 문하에서 수학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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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직보(直甫).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현(金鉉)이고, 어머니는 이명로(李命老)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아들로 김상정(金尙鼎)이 있다. 김이견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1687년(숙종 13) 무과에 급제하여 회령(會寧)의 변수(邊帥)가 되었다. 16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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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유생. 김진환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무재(無齋).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준(金浚)이다. 김진환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1736년(영조 12)년에 여러 경상도 유생들과 더불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묘(文廟) 배향 문제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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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김팽수(金彭壽)이고, 어머니는 송빈(宋霦)의 딸로서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처는 감찰을 지낸 이옥성(李玉成)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아들로 김명윤(金命胤)이 있다. 김한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살았다. 조선 중기 무과에 급제하여 1566년(명종 21) 어란포만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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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아버지는 부제학을 지낸 김언필(金彦弼)이고, 장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이다.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과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가 사위이다. 김행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명곡동에 살았다. 출사하여 벼슬이 회령포만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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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증조할아버지는 김언필(金彦弼)이며, 아버지는 김수용(金壽鎔)이다. 김홍면은 임진왜란 때 노경종(盧景宗)[1555~1625], 권탁영(權擢英)과 함께 소모장(召募將) 이정(李瀞)[1541~1613]의 참모가 되어 활약하였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훈련부정에 이르렀다. 1595년(선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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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효량은 15세 때에 아버지 김득예(金得裔)가 악질에 걸려 낫지 않자, 산 사람의 뼈가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왼손 무명지를 끊어서 피를 약에 타서 병구완하여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효행이 향리에 널리 알려져 세종 때에 조정에서 정려를 내리고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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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효성(孝誠), 호는 명암(明菴).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노공석(盧公奭)이고, 어머니는 하씨(河氏)이다. 장인은 권탁영(權擢英)이다. 노경종(盧景宗)[1555~1625]은 일찍이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문하에서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초계(草溪)[현 경남상도 합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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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화중(和中),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노언(盧焉)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군기시소윤을 지낸 김양귀(金良貴)의 딸이다. 노숙동은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여 1435년(세종 17) 감찰을 지냈다. 1443년(세종 25) 응교를 역임하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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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노형은 현 창원시 명곡동 사람으로 적성현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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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있는 조선 시대 창원부에 속한 조창 터. 마산 남성동 조창 터는 조선 시대인 1760년(영조 36)에 경상도 관찰사 조엄(趙曮)의 계에 따라 대동미의 징수를 위해 창원부에 둔 조창의 터이다. 『경상도 읍지』 「창원부 읍지」 창고 관련 기록에 따르면 “해창은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조창은 해창 곁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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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오산(午山) 남쪽 기슭에 있던 나루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오산 남쪽 기슭에 있던 나루터이다. 회원천이 마산만으로 흘러들어가는 하구이고, 동쪽으로는 오산 구릉이 막고 있어 내륙으로의 접근성이 유리하여 나루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산진은 산호동에 있는 고립 구릉인 오산[달리 마산 또는 용마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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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마을의 오래된 흔적은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나오는 감계리(甘界里)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감계리(甘界里)는 여러 자연마을을 포함하여 나타낸 마을 이름이었다. 여러 자연마을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던 감계원[현 외감의 원지동에 있던 옛 마을]에서 이름을 딴 것이 감계리다. 이 감계리가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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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성일(誠一). 아버지는 문응정(文應井)이다. 문행은 생원으로 1580년(선조 1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도사(都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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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박무열은 현 창원시 동정동 정계(井界)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1등공신에 녹훈되고, 향직에 임명되었다. 벼슬이 수문장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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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박시명은 1400년대 후반 창원도호부 사화(沙火)[현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살았는데, 당시 참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받들어 효를 다하였다. 27세에 무과에 응시하여 출사하려 하였으나, 때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어 출사의 뜻을 접고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93세에 죽자 매우 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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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선비. 박신윤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경(德卿), 호는 우곡(愚谷).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박홍정[1541~1619]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박이경(朴而慶)이다.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박신윤은 처음에는 낙빈(洛濱) 이시장(李是樟)[1628~1683]에게 배웠고, 나중에는 허재(虛齋) 신몽삼(辛夢參)[1648~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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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박정견은 조선 성종·연산군조에 창원도호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산군 때 상기(喪期)을 짧게 제한하는 법이 엄하였음에도 연이은 부모상에 3년간 최복(衰服)을 입어 애도했으며, 상을 마친 후에도 초하루와 보름에 전(奠)을 올리는 예를 그만두지 않았다 한다. 1510년(중종 5) 경상도관찰사 강혼(姜渾)의 장계에 의해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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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재숙(再淑), 호는 의와(義窩). 증조 할아버지는 박신윤[1661~1698]이고 아버지는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낸 박충준(朴忠俊)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승지를 지낸 윤경수(尹敬守)의 딸이다. 박홍정(朴弘貞)[1541~1619]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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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수령이 국왕을 대신하여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에게 제사 드리는 사단(社壇)과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 드리는 직단(稷壇)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도 의식을 행하였다. 전통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주례(周禮)』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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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 안염(安恬)이 아들이다. 안세억(安世億)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퇴촌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선전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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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안세인은 1700년대 현 경상남도 마산시 내서읍 안성리에서 살았다. 효행이 돈독하여 아버지가 죽은 후 애도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어 하늘에다 부르짖어 애통함을 달랬다. 그 연유로 향리 사람들이 호천재(呼天齋)라고 불렀다 한다. 경상도에서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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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여제를 지내던 제단.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역질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했다. 이 여단은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다. 여제는 1908년 국가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철저하게 부정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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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도호부 관아가 합포성에 있을 때 동헌에 딸려 있던 누정. 연빈루는 1488년(성종 19) 이영분(李永蕡)이 창원부사로 재임할 때 지은 누정으로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단지 홍귀달(洪貴達)의 『허백정집(虛白亭集)』「연빈루기(燕賓樓記)」에 당시 창원도호부에서 선정을 베풀고 있는 부사를 치하하는 의미로, 새로 지은 누(樓)의 이름을 연빈루라고 지어 준다는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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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오이원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감발(甘發), 호는 이수(以秀). 충정공(忠貞公) 오윤겸(吳允謙)의 8세손이자 병조판서 서파공(西波公) 오도일(吳道一)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오태성(吳泰聖)이다. 현재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일원에 살고 있다. 오이원은 7세 때에 모상(母喪)을 당하였다. 이 후 어머니에 대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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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옥석견의 본관은 의령(宜寧). 의령옥씨(宜寧玉氏)의 14세손이며 감사공파(監司公派)이다. 아버지는 옥수(玉壽)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 지역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옥석견은 창원도호부 불천(佛川)[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잠리 인근]에 살았다. 어릴 때 아버지가 죽어 가난하였으나 별미가 생기면 가슴에 품고 와서 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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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 있는 산. 북쪽으로는 대암산(大岩山)[669m]과 이어지고 남쪽은 상점령(上點嶺)을 지나 불모산(佛母山)[801.7m]과 이어지는 낙남정간의 갈림길이다. 용지봉의 원래 이름은 용제봉(龍祭峰)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김해도호부 단묘에 “용제봉은 김해도호부의 서쪽 불모산에 있으며, 50리이다. 기우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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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조선 시대 웅천현의 역사와 인물, 물산 지역적 특성 등을 기록한 읍지. 『웅천현 읍지』는 1866년(고종 3)에 국가의 명으로 편찬된 지방지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지방지는 한강 정구가 함안의 역사와 인물, 특산물, 산천 등을 기록하여 간행한 함주지가 처음이다. 이러한 함주지의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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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마을의 연원을 알려 주는 가장 확실한 유적은 고인돌과 고분이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3기가 마을 앞 안산자락의 농경지 속에 있고,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2곳이 외감의 독뫼와 그 인근 지역에 있다. 고인돌과 고분의 존재는 이른 시기에 상당한 세력이 외감마을 주변에 살았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마을 북동쪽 독뫼 앞에는 옛 주거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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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이덕립(李德立)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차룡동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훈련부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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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의(全義). 김명윤의 외삼촌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서 태어났다. 이명하(李明河)는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1589년(선조 22) 무신(武臣)의 불차채용(不次採用: 관계의 차례를 뛰어넘어 벼슬을 주는 것)에 추천되었고, 창성부사로 재직할 때 백성을 제일로 다스려 특별히 강계부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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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이숙(李潚)은 창원도호부[현 경상남도 마산시 봉암동]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이는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1602년(선조 35) 이귀(李貴)가 정인홍(鄭仁弘)의 죄악을 아뢴 상소문 속에 '합천군수 이숙이 정인홍이 관의 명령을 거역한 것을 분히 여겨 반민(叛民)이라 꾸짖었더니, 정인홍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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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임성립의 본관은 나주(羅州). 나주임씨(羅州林氏) 시조 임비(林庇)의 24세손이며 장수공파(長水公派)이다. 아들은 임빈(林彬), 손자는 임윤국(林潤國)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일원에 살았으나 지금은 타지로 이주해 살고 있다. 임성립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14세때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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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여마을에 있던 자여역(自如驛)은 창원도호부의 중심 역이었다. 자여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1530년조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로 미루어 마을은 그 이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여역은 같은 책 제32권 경상도(慶尙道)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조에 의하면 부의 동쪽 19리 지점에 있었으며, 도호부 14개 역을 중개하는 큰 역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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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장수산(張守山)은 창원도호부[현 경상남도 마산시 합성동]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3등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수문장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내용이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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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정문성(鄭文星)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경(台卿).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정태인(鄭泰仁)이고, 어머니는 진주이씨(晉州李氏)이다. 정문성은 1624년(인조 2)에 일어난 이괄(李适)[1587~1624]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1644년(인조 22)에 군관(軍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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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정자미(丁自美)의 본관은 창원. 자는 명숙(明淑). 아버지는 정석년(丁惜年)이고,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정동수(鄭東秀)의 딸이다. 정자미는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사람으로, 용력(勇力)이 남달리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 2등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훈련부정에 이르렀다.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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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선비. 조계익(曺繼益)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선술(善述). 아버지는 조윤신[1511~1571]이고,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1572]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장중우(張仲羽)의 딸이다. 현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조계익은 청빈을 벗 삼아 살면서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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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조광익(曺光益)[1537~1578]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가회(可晦), 호는 죽와(竹窩)·취원당(翠遠堂). 아버지는 조윤신(曺允慎)[1511~1571]이고,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1572]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장중우(張仲羽)의 딸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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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선비. 조윤신(曺允慎)[1511~1571]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중(誠仲), 호는 고암(古巖)·노재(魯齋). 아버지는 함안군수를 지낸 조효연(曺孝淵)[1486~1530]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1487~1565]로 강원감사를 지낸 송재(松齋) 이우(李堣)[1469~1517]의 딸이다. 조윤신은 일찍이 과거 공부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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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조치우(曺致虞)[1459~1529]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경(舜卿), 호는 정우당(淨友堂). 아버지는 영암군수를 지낸 조말손(曺末孫)이다. 부인은 창원박씨(昌原朴氏)이다. 조치우는 1494년(성종 25) 과거에 급제하여 1495년(연산군 1) 예문관 검열로 있었고, 1498년(연산군 4)에 사간원 정언이 되었으며,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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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 아버지는 조윤신[1511~1571]이고,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1572]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장중우(張仲羽)의 딸이다. 다섯 아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조호익은 1576년(선조 9)에 경상도도사 최황(崔滉)이 군적(軍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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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조효연(曺孝淵)[1486~1530]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언부(彦溥), 호는 위재(韋齋). 아버지는 사옹원정(司饔院正)을 지낸 조치우(曺致虞)[1459~1529]이고, 어머니는 창원박씨(昌原朴氏)로 부장(部將)을 지낸 박혁손(朴赫孫)의 딸이다. 조효연은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1522년(중종 17)에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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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있는 성황사(城隍祠)가 있던 터. 성황사는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진해 성황사지는 성황사의 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제덕토성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내남산(內南山)의 끝자락인 해발 43.7m의 정상부 평탄한 곳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성황사(城隍祠)가 현의 북쪽 1리이며, 보평역(報平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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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무신. 최숙손(崔叔孫)의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문약.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최윤덕(崔潤德)[1376~1445]이다. 맏아들로 태어났다. 최숙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1422년(세종 4) 직장(直長)으로 있었고, 1427년(세종 9) 사직(司直)으로 있었으며, 1433년(세종 15) 절충상호군이 되었다. 1435년(세종 17) 중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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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북면 외감리와 감계리 일대에서 우거(寓居)하였던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유악(維嶽)·수옹(壽翁).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허자(許磁)[1496~1551]이고, 아버지는 강호처사(江湖處士) 허강(許橿)[1520~1592]이다.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1523~1603]로 대제학을 지낸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외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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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지역에서 우거(寓居)하였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父)·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臺嶺老人). 증조부는 이조판서 허자(許磁)[1496~1551]이고, 할아버지는 강호처사 허강(許橿)[1520~1592]이다. 아버지는 포천현감 허교(許喬)[1567~1632]이며,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로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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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지역에 우거(寓居)하였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의 일족인 것으로 보이나 가계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허호(許䎁)는 1689년(숙종 15)에 사직서 참봉이 되었고, 1692년(숙종 18) 상서원 직장이 되었다. 1693년(숙종 19)에 전생서 주부가 되었다가 사헌부 감찰이 되었고, 1694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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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대도호부사를 지낸 문신. 황경중(黃敬中)[1569~1630]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직지(直之), 호는 오촌(梧村).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황수(黃琇)[?~1617]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1618]로 좌랑(佐郞)을 지낸 이준(李浚)의 딸이다. 황근중[1560~1633]의 아우이다. 황경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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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황근중(黃謹中)[1560~1633]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일지(一之), 호는 월담(月潭).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황수(黃琇)[?~1617]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南氏)[?~1618]로 좌랑(佐郞)을 지낸 이준(李浚)의 딸이다. 황경중(黃敬中)[1569~1630]의 형이며, 조선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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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황하룡은 조선 성종·연산군 대에 창원도호부 서쪽 물리동에 살았다. 형 황한룡(黃漢龍)과 함께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여막살이로 효행을 다하였다. 경상도에서 계를 올려 조정에서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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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황한룡은 조선 성종·연산군 때에 창원도호부 서쪽 물리동에 살았다. 동생 황하룡(黃夏龍)과 함께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막살이로 효행을 다하였다. 경상도에서 계를 올려 조정으로부터 요역을 면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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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황형(黃衡)[1459~1520]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언평(彦平).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시대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를 지낸 회산군(檜山君) 황석기[?~1364]이고, 할아버지는 대흥현감을 지낸 황선경(黃善慶)이며, 아버지는 선공감정을 지낸 황예헌(黃禮軒)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사헌부 감찰을 지낸 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