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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복출(金卜出)은 1893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1906년 5월 21일[음력] 박일대(朴一大)·임천쇠(林千釗)·윤말용(尹末用)·이흑보(李黑甫) 등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기로 의기투합하고는, 그날 밤 각기 총칼을 휴대하고 경상북도 개령군 한곡(漢谷)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같은 해 6월 중순 김복출 등은 총칼로 무장하고 개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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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수길(金壽吉)은 1902년 1월 2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대구 지역에서는 3월 8일 기독교계와 계성학교·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계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수길은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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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임천(金任天)은 1872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당시 개령면 동부동 동민들은 동부동 뒷산에서 3월 24일과 4월 3일·4일·6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제1차 의거에는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敦), 제2차 의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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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충한(金忠漢)은 1883년 10월 24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비봉동 707번지에서 태어났다. 미국인 선교사 어드만(W.C. Erdman)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문중과 가정에서 쫓겨났던 김충한은 1906년 새로 건축한 비봉교회 초대 조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대구 계성학교를 다니던 중 목사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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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 독립 운동. 일제 강점기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도 일제의 침탈에 맞서 민족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개항 이후부터 한일 병합 조약에 이르는 시기에는 국권 수호와 회복을 위한 운동으로 의병 전쟁과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10년 국권 피탈 이후로 이러한 국권 회복 운동은 조국 광복을 위한 민족 독립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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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출신이거나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도 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미국 등 열강들의 후원 속에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에 맞선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위정척사 계열의 유생들은 상소 운동과 의병 항쟁으로, 개화 지식인들은 실력 양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섰다. 이명균,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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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안(朴泰安)은 1898년 6월 14일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小舍)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은 황금정교회 장로 최용수(崔龍洙), 같은 교회 소사 한명수(韓明洙)와 함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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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현식(申鉉式)은 1873년 2월 2일[대구지방법원에서 발간한 재소자 신분 카드에는 1874년 2월 2일생으로 되어 있음] 김천시 양천동[당시 금릉군 감천면 양천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신현식은 50세가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1920년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배일(排日) 지사를 모아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주로 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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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여영조(呂永祚)는 1862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여영소(呂永昭)로도 불렸다. 호는 일재(一齋)이다. 일제의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에 맞서 안동의진과 진주의진이 대일 항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인 1895년 12월 통문을 돌리고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1896년 여영조는 허위·조동호·여중룡 등과 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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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균(李明均)[또는 李銘均]은 1863년 1월 14일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조선 성종 대의 청백리로 유명한 충간공 이숭원의 14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일괴(一槐)이다. 가학(家學)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일제 식민지 시기 절치부심하던 이명균은 대한광복회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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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윤(公允), 호는 소암(小庵)·서주노인(西周老人)이다. 아버지는 이준성(李浚性)이며, 어머니는 하빈 이씨(河濱 李氏) 진사 이시근(李時根)의 딸이다. 이석균(李鉐均)은 1855년 1월 19일 연안 이씨 집성촌인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 16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167번지]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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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응수(李應洙)는 1879년 10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 307번지에서 일제 침략에 상소 운동으로 맞서다 감옥에서 순국한 성석(醒石) 이건석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국권을 찾지 못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고자 이응수는 3·1운동 때는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5개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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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주남수(朱南守)는 1892년 9월 2일 경상남도 거창에서 한학자 주회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3월 20일 거창 지역에서는 거창읍교회를 설립한 주남고[일명 주남선, 주남수의 형] 등 거창읍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주남고는 당시 같은 교회 교인이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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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응수(崔應洙)는 1901년 9월 28일 김천시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1월 제1차 김천면 시장 독립 만세 시위가 사전 발각되어 실패로 끝난 후, 3월 24일 오후 11시경 제2차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김천의 애국 청년 최응수를 비롯하여 김인수(金仁守)·김윤상(金允祥)·김영훈(金泳勳) 등이 김천면 욱정(旭町) 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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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은 1862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639번지에서 한학자인 남애(南厓) 최창락(崔昌洛)[1832~186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익길(崔益吉) 또는 최학광(崔鶴光)으로도 불렸다. 18세에 아버지 최창락을 따라 성재(性齋) 허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족형인 양오(陽梧) 최봉길(崔鳳吉)[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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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명수(韓明洙)는 1893년 1월 1일 김천시 황금동 185-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로 있던 27세의 한명수는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같은 교회 조사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 같은 교회 장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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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도석(黃道石)은 1899년 4월 25일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당시 개령면 동부동 동민들은 동부동 뒷산에서 3월 24일과 4월 3일·4일·6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제1차 의거에는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