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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장원(章元), 호는 행정(杏亭). 아버지는 나안세(羅安世)이고, 동생은 나응삼(羅應參)이다. 김응상(金應商)의 딸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다시 이형집의 딸과 결혼하여 4남을 두었다. 1537년(중종 32) 사헌부감찰을 지낸 뒤, 청주목판관겸청주진병마절제도위(淸州牧判官兼淸州鎭兵馬節制都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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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마비(馬非)는 학생(學生) 서치명(徐致明)의 아내였는데, 30세에 남편을 여읜 후 21년간 상복을 벗지 않은 채 위판(位版)[위패]을 설치하고 장막을 쳐 놓았으며, 겨울과 여름으로 의복을 만들어 영전 앞에 가져다 놓았고 조석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시 전라도관찰사였던 유관(柳灌)에 의해 절의가 조정에까지 알려져 포상이 상신되었다. 1528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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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열녀. 윤사임 처 박씨는 25세이던 1510년(중종 5)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동안 소복을 벗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는 등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였다. 또한 절일(節日)과 기제(忌祭) 때는 분묘 앞에 나아가 초상 때처럼 서럽게 울며 처음과 다름없이 애통해하였다. 이에 1526년(중종 21) 전라도관찰사 유관(柳灌)이 장계(狀啓)에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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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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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동질금(同叱今)은 남편인 향리(鄕吏) 이당(李堂)이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동안 상복을 벗지 않고, 안방에 흰 장막을 설치하여 신주를 그 안에 모셔 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다. 1512년(중종 7) 정려의 명이 내려져 정문(旌門)이 세워졌으며, 1517년(중종 12)에는 전라도관찰사 남곤이 장계를 올려서 세(稅)를 감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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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평고군(平皐君) 조숭지(趙崇智)이다. 조원윤(趙元倫)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병조판서에 올랐다.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4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마천군(馬川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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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열녀. 금이(今伊)[1473~?]는 37세인 1509년(중종 4) 자식도 없이 남편 갑사(甲士) 최치강(崔致江)을 여의었는데, 전라도관찰사 유관(柳灌)이 장계를 올린 1526년(중종 21)까지도 계속 흰옷을 입고 고기는 물론 양념한 반찬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평상과 장막을 갖추어 신주(神主)를 모신 뒤 향로와 꽃병을 놓고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