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흥복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렁이와 흥복사」는 김제시 백산면 흥사리[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흥복사 중건에 관한 명칭유래담이다. 본래 흥복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末寺)로 650년 고구려의 고승 보덕대사가 창건하여 승가사라고 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그 후 1625년(인조...
-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에서 김효자·호랑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효자와 호랑이」는 갈공동에 있는 효자비를 세우게 된 비석유래담이자 위기에서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해준 것에 대한 호랑이의 보은담이다. 갈공동의 효자비와 호랑이 조각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하늘이 낸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김효자가 호랑이의 가시를 빼주고,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 주었다. 이런 은혜를...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단야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단야의 설화」는 김제태수의 딸인 단야가 벽골제 제방을 마구 무너뜨리는 청룡에게 제물로 바쳐져 벽골제와 백성들을 살려냈다는 인신공희담이다. 단야아가씨가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백성들은 청룡이 사는 곳에 배를 띄우고 단야의 넋을 위로하였다. 또한 그녀의 효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단야각(丹若閣)과 단야루...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서 벽골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는 옛날 부량면 포교리에서 월승리에 걸쳐 제방을 쌓을 때에 푸른 뼈를 넣어 벽골제를 건설했다는 토건유래담이다.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흘해왕 21년 조에 ‘시개벽골지안장일천팔백보(始開碧骨池岸長一千八百步)’라고 기록되어...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벽골제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벽골제 비명의 보존」은 부량면 신용리의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옆에 위치한 벽골제비(碧骨堤碑)에 얽힌 비석유래담이다. 벽골제비는 벽골제 사적과 개보수 상황을 기록하여 새긴 것으로 1959년 벽골제와 함께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1975년 제1차 벽골제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되어 문헌에 나타난 연대와 안장(岸長...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고현에서 부설거사와 묘화 부인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부설거사와 묘화부인」은 삼생연분(三生緣分)의 부설(浮雪)을 만나서 말을 하게 된 묘화(妙花)의 부부 운명담이며, 속세를 떠나지 않고도 불법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는 부설의 재가성도담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는 월명암에 현재 소장되어 있는 「부설전(浮雪傳)」[전라북도 유형...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가신(家神)인 성주에게 복을 빌기 위해 부르는 민요. 「성주풀이」는 집 자체의 내력, 과거에 행한 일, 가장(家長)이 건강하고 돈을 잘 벌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은 무가로 성주굿·안택(安宅) 등에서 구연된다. 굿거리 장단에서 경토리로 된 유절무가는 민요화되어 민요 「성주풀이」가 되었다. 1981년 10월 입석 줄다리기 연습 무렵에 농민들에게서 채록한 자료가 1...
-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에서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연벽과 벽골룡」은 벽골제와 관련된 많은 설화 중 특별히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趙連璧)에 대한 씨족시조전설이다. 또한 벽골제 수호신인 벽골룡의 부탁을 받고 벽골제를 빼앗으러 온 변산의 청룡을 활로 쏘아 쫓아 주었다는 괴물퇴치담이다. 이를 「쌍용추(雙龍湫)와 벽골룡」이라고도 일컫는다. 전라북도 김...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천냥기생과 꾀보머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신화·전설·민담으로 나누는 것이 세계적인 통례로 되어 있다. 이 셋 사이에 확연한 선을 긋는 것은 곤란하며, 서로 넘나드는 경우도 있고 하나가 다른 것으로 전환되기도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정리할 수 있다. 신화·전설·민담을 구별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내용상의 구분인데, 신화가 신성성(神聖性...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칠성신이 되는 유래를 밝혀 주는 서사무가. 「칠성풀이」는 칠성신의 근원을 풀어 밝히는 서사무가이다. 이를 「살풀이」, 「성신굿」, 「문전분풀이」 등이라고도 한다. 「칠성풀이」는 전국적인 전승 분포를 보이는 서사무가 유형의 하나로, 마음씨 나쁜 계모로부터 죽음을 모면한 전실 소생의 아들들이 칠성신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칠성신의 명칭은 함흥의 「살풀이」,...
-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려시대 초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이때는 아직 왕권의 통치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고려 왕조는 1018(현종 9)에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 통치 제도를 마련하게 된다.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었지만, 특히 이때에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다시 중국식 한자명으로 고쳐진 것이다. 그 기준은 757년(경덕...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세운 후백제의 초대 왕. 본관은 전주(全州). 본성은 이(李)씨였으나, 뒤에 견씨(甄氏)라 하여 전주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자개(阿慈介), 동생은 능애(能哀)·용개(龍蓋)·보개(寶蓋)·소개(小蓋), 누이는 대주도금(大主刀金),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진다. 아들로 신검(神劍)·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 등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삼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역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관해 비교적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벽골제 축조에 관한 기사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30년(흘해왕 21) 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시기 김제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으므로, 벽골제 축조는 330년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김제시는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광활한 평야를 형성하여 미곡생산량이 풍부해 ‘삼한 중 가장 풍요로운 땅’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부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 계층을 중심으로 한 문화와 예술이 발달하였고 서당, 서원, 향교 등 교육 기관이 김제 전역에 산재 하여 교육의 도시로도 유명하였...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김제 지역 역사. 고려 전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왕조의 통치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고려는 1018년(현종 9)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통치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기는 하였지만, 이때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중국식 한자명으로 다시 바뀌었다. 바뀐 기준은 757년에 신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곡식·재 따위를 긁어모으거나 푸는 데 쓰는 농기구. 고무래는 직사각형·반달형·사다리꼴 등의 널조각 위쪽에 자루를 박아 ‘T’ 자 모양으로 만든다. 용도에 따라 논밭에서 쓰는 것과 염전에서 쓰는 것, 곡식을 멍석 등에 널어 말리는 데 쓰는 것, 부엌에서 재를 긁어내는 데 쓰는 잿고무래 등이 있다. 모양에 따라 고무래 날을 이빨처럼 어긋나게 톱으로 판 것과 고무...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면서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가 되어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구지지산...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 앞에 있는 고려시대 승탑.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舍利)를 모시는 묘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로부터 선종이 들어온 9세기 이후에 각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법통(法統)이 이어지면서 불상 숭배보다는 조사(祖師)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중요한 예배 대상이 되어 많은 부도가 건립되었다. 일반적으로 부도는 석탑과 마...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수(石獸). 현재의 귀신사는 백제가 망하고 16년 뒤인 676년 국신사(國信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구순사로 바뀌었다가 조선시대에 귀신사(歸信寺)로 바뀌었다. 귀신사 석수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석수가 놓여 있는 지형은 모악산의 자락에서 구순혈(狗脣穴)에...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밭이나 논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극젱이는 논에 쓰기도 하지만 주로 밭을 가는 데 쓴다. 바닥이 좁고 험한 곳에서 얕게 갈 때, 또는 쟁기로 갈아 놓은 땅에 극젱이를 끌어서 골을 타기도 한다. 쟁기로 갈면 볏밥이 한쪽으로만 갈려 나가나, 극젱이를 쓰면 양쪽으로 나가기 때문에 감자밭 따위를 매는 데 편리하다. 극젱이는 쟁기보다 힘이 약한 게 흠이다. 토질에...
-
1895~191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행정구역 상 옛 명칭. 갑오·을미개혁기인 1895년(고종 32)에 조선 정부는 행정체계 근대화 추진의 일환으로 기존의 지방행정구역을 조정하였다. 1895년에 금구군과 만경군을 분할하여 전주부 금구군이 되었고,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금구군은 전라북도에 속한 26개 군 중 3등군에 포함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금구군은...
-
1597년 정유재란 때 원신과 김언공이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 지역에서 왜군을 궤멸시킨 전투. 일본은 명과의 강화가 결렬되자 1597년(선조 30) 1~2월에 14만5천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재차 조선을 침략하였다. 금구대첩(金溝大捷)의 목적은 직산전투에서 패퇴한 왜군이 정읍을 향하여 남주할 것을 예상하여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인 원신과 김언공(金彦恭)의 군사로 기습 공격을 하여...
-
75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후 백제 영토는 685년(신문왕 5)까지 신라식 4주 3소경 및 다수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각 고을의 이름도 당나라가 중국식으로 고쳤던 주·현의 이름이 복구되었지만, 상당수가 점차 신라화하였다. 신라는 757년(경덕왕 16)에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종교적·도덕적인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거나 꺼려지는 언어 표현. 아득히 먼 옛날부터 금기어·속신이 발생하여 전승되었으며, 금기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파생(派生)·조어(造語)되어 이를 불문율처럼 여겨 지켜 내려왔다. 금기어는 금지되는 행동과 함께 금기에 속한다. 금기는 특정한 인물·사물·현상·언어·행위 등이 신성시되거나, 또는 두렵다고 신봉함으로써 그 대상을 보...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화기(畵記)에 의하면, 금산사 명부전 시왕도는 풍곡당(豊谷堂) 덕린(德麟), 해운당(海雲堂) 익찬(益贊), 월허당(月虛堂) 준언(俊彦), 반월당(槃月堂) 해선(海詵) 등의 승려들이 편수가 되어 1861년(철종 12)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에 있는 도갑사(道岬寺)에서 20명의 화원과 함께 그린 다음 이곳...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볏짚으로 왼새끼를 꼬아 악귀를 쫓는 금기의 새끼줄. 금줄은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기 위해 대문 밖에 걸어두거나 길 어귀의 신목(神木)과 같은 신성한 대상물에 매는 줄이다. 이를 ‘인줄’ 혹은 ‘검줄’이라고도 한다. 즉 신성한 곳이나 정성껏 다루어야 하는 곳에 새끼를 꼬아서 둘러쳐 놓은 줄이다. 아기를 낳았을 때 숯과 청솔가지, 붉은 고추 등을 꿰어 대문 앞에...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학자이자 역사학자. 김상기(金庠基)의 아호는 동빈(東濱)으로, 아버지는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김연익(金然翊)이다. 김연익은 백산면 일대에서 이름난 토박이로 학행(學行)과 행실이 남달랐으며, 덕망과 신의를 갖추었던 것으로 전한다. 김상기(金庠基)는 한국 동양사학의 기초를 세운 대표적인 동양사학자이자 한학자이다. 김상기는 최보열(崔輔烈)과 최병심(崔秉心)의 문...
-
수리조합은 토지나 가옥 소유자가 모여 농지에 대한 관개용 저수지와 제방 따위의 축조·관리 및 수해 예방 사업을 목적으로 조직한 법인체이다. 1925년에 설립된 동진수리조합은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수리조합으로, 김제 진봉 일대 광활한 땅에 대대적인 간척 사업을 실시하여 오늘날 광활면 일대를 조성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수리조합은 근대식 농사법으로 개선한다는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일제의...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금융조합 건물. 1906년 「은행조례」 공포로 설립된 농공은행이나 지방 창고로도 농촌 금융을 소통시키지 못하게 되고 농촌 금융을 전담하는 새로운 금융 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07년 5월에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관한 건」이 공포되었다. 동년 8월에 광주지방금융조합이 설립되었고 1910년 6월 말 조합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종형 사리탑과 금강계단. 금산사는 모악산 남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라북도 내 최대의 사찰로서 여러 가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후백제의 견훤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진표율사(眞表律師)가 12세 때 이곳에서 출가하였다고 전하고 있어서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노주(露柱). 김제 금산사 노주는 금산사 경내의 대적광전과 대장각의 중간에 석련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형태에 따라 노주라고 하였으나 원래 어떤 용도로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부에 놓인 보주(寶珠)만 없으면 방형의 대좌처럼 조성된 특이한 석조물이다. 지대석은 사각형으로서 하나의 석재에 2단으로 조각되었는데, 아랫단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 당간은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달거나 사찰의 괘불탱화를 걸어두는 장대를 말하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좌우에 세운 기둥이다. 당간지주를 보면 그 주변이 사찰이 있는 신성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철, 금동, 나무로도 만들었다. 2개의 기둥을 60~...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금산사의 불전. 금산사(金山寺)는 전라북도 내 최대의 사찰로서 여러 가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5]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진표(眞表)가 12살 때 금산사에서 출가하였다고 전하고 있어서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는 창건 당시에는 소규...
-
조정래(趙廷來) 대하소설 『아리랑』은 동학농민운동 이후부터 8·15광복 때까지 전라북도 김제의 드넓은 평야를 주요 배경으로 하여 한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아리랑』은 조선에서 곡물을 수탈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항구 도시 군산에서 시작해서 주요 작중 인물들의 궤적을 따라 한반도 전역과 만주, 러시아, 하와이, 동남아시아 등으로 폭넓게 전개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우...
-
1403년부터 199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가 멸망하면서벽골군은 757년(경덕왕 16) 중국식 한자명인 김제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현으로 격하되었고, 1403년(태종 3) 김제현에 지군사[1466년 군수로 개칭]를 두었고, 1466년(세조 12) 김제군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670년 발간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동헌이 공무를 수행하는 곳으로서 외아(外衙)라고 부르는 데 대하여, 내아는 관리의 가족이 살림하는 곳을 가리킨다. 내동헌(內東軒)이라고도 한다. 김제동헌의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다. 김제내아는 1667년(현종 8) 김제동헌이 지어질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뒤 동헌이 수리되거나 중건될 때 함께 개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정무가 행해지던 중심 건물을 가리킨다.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內衙)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리게 되었다. 현청(縣廳)의 동헌은 대개 정면이 6~7칸, 측면이 4칸으로 된 장중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며, 여기에 내아 등의 부속건물이 따른다. 김제동헌은 김제향교에서 동쪽으로...
-
1143년부터 1403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지금의 김제시는 삼한시대에 벽비리국(辟卑離國)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벽골군(碧骨郡)을 설치했고, 백제 멸망 후 당(唐)이 벽성(辟城)으로 고쳐 고사주(古四州)[현재의 고부]의 영현을 삼았다. 757년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제군으로 바꾸고 전주에 예속시켰다. 이때 평고현(平...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증조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할아버지는 나석(羅碩)이다. 아버지는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우의정을 제수하고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 낙천와(樂天窩) 나중우(羅仲佑)이다. 1419년(세종 1) 기해 식년시 병과에 5위로 급제하였다. 1420년(세종 2) 권지저작(權知著作)으로 통사랑봉상시녹사(通仕郞...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내리아(乃利阿)에서 ‘내리(乃利)’는 ‘곧다’라는 뜻이고, ‘아(阿)’는 읍이나 성을 말한다. 즉 곧은 성이라는 뜻이다. 바다의 조수가 이곳까지 밀려올 때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보(中甫),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감찰지평(監察持平) 노준경(盧俊卿),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노단(盧亶), 어머니는 비순위별장(備巡衛別將) 이천로(李天老)의 딸이고, 아내는 김극치(金克致)의 딸 및 김후(金厚)의 딸이다. 아들은 노상인(盧尙仁)·노상의(盧尙義)·노상례(盧尙禮)·노상지(盧尙...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농촌에서 마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깃발. 농기(農旗)는 농악대들이 들고 다니는 큰 기로 용기(龍旗), 용둣기, 용당기, 대기, 덕석기, 두레기, 서낭기 등으로도 불린다. 동제를 지내거나 두레 때 마을의 상징으로 농기를 세워 두며, 이웃 마을과 화합 또는 싸울 때에도 농기를 내세운다. 그리고 농기는 기능으로 보아서 동제에서 신간(神竿)이나 신기(神旗)와 같은 기...
-
조선 후기 김제에서 활동한 의승장(義僧將). 법명은 처영(處英)이고, 호가 뇌묵(雷默)이다.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이다. 뇌묵은 금산사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휴정은 팔도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승(義僧)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뇌묵은 김제 금산사를 중심으로 1천여 명의 승...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옷감·이불감 등 천을 다듬을 때 받치는 돌. 옷이나 이불 호청 등을 세탁한 후 풀을 먹여 약간 말려 손질한 다음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린다. 풀을 먹여 두드리면 천이 견고해지고 매끄러워지면서 다림질을 한 효과가 난다. 골고루 두드리기 위해서는 여러 번 접어 가면서 윤이 나도록 다듬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 섬유 특유의 광택과 촉감을 살릴 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미륵신앙 계통 불교종단의 하나. 대한불교법상종(法相宗)은 한국의 미륵신앙 계통 불교종단의 하나로 신라시대의 오교(五敎) 가운데 하나인 법상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며, 진표율사(眞表律師)를 종조로 삼고 있다. 1969년 3월 전영동(全英東)·최선애(崔善愛) 등이 전라북도 금산사(金山寺)에 대한불교법상종포교원을 설립하여 1970년 2월 문화공보부...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던 대화교 포교당. 대화교(大華敎)는 손은석(孫殷錫)이 서울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손은석은 서울에서 최제우(崔濟愚)를 교조로 하여 제우교(濟愚敎)라는 종교를 만들어 포교를 시작하였다가, 1920년 교명을 용화교(龍華敎)라고 바꾸었다. 뒤를 이은 윤경중(尹敬重)은 불교성을 가미, 교명을 대화교라 고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다. 윤경중은 원래 강경...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비가 올 때 어깨에 걸쳐 두르던 우장(雨裝). 도롱이는 사의(簑衣)라고도 한다. 또 지방에 따라 도랭이·도롱이·드렁이·도링이·되랭이·되롱이·등구지·느역 등의 방언이 있고, 옛말로는 되롱 또는 누역이라고 하였다. 도롱이의 방언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짚을 거적처럼 촘촘히 엮어 만든 것을 ‘접사리’라고 하는데,...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곡식의 이삭을 두드려 알곡을 떠는 데 쓰는 농기구. 도리깨는 선 자세로 작업을 하는데, 두 손을 이용하여 어깨너머로 넘기고 돌리면서 앞으로 내리쳐 알곡을 떨어낸다. 바짝 말린 보리나 밀, 콩, 수수, 조 등의 이삭을 펼쳐 놓고 타작하는 농기구이다. 거두기용 농기구로서 긴 막대기나 대나무 끝에 구멍을 뚫고 턱이 진 꼭지를 가로로 막아서 돌게 하고, 꼭지 밑에...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외세에 반대하고 탐관오리를 축출하기 위해 동학 남접(南接)의 주도 하에 진행된 집회. 개항과 더불어 농촌 경제가 점점 파탄 지경에 달했고, 지방관과 토호들의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한편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崔濟愚)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명으로 처형당하고, 동학교도들은 정부의 탄압으로 매우 힘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최제우 사후 최시형이 교단을...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중시조. 아내는 상장군 문유보(文儒寶)의 딸이고, 사위는 장군 유삼백(柳森栢)이다. 두경승(杜景升)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과 청하면, 진봉면, 공덕면, 성덕면 일대의 고려 후기 행정구역인 만경현(萬頃縣) 사람이다.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으로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무신정...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금산의 웅치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이어서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청하면·진봉면·공덕면·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어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로 행해지면서 두내산현(豆乃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줄을 길 게 달아 우물물을 퍼 올리는 데 쓰는 기구. 낮은 곳에 있는 물을 언덕진 높은 곳의 논이나 밭에 퍼붓는 기구를 두레라고 한다. 가벼운 오동나무와 그 밖의 나무로 위는 넓게 퍼지고 밑바닥은 몹시 좁게 네 귀퉁이를 만들어 네 귀퉁이 위쪽에 줄을 매달고 양쪽에서 노 젓는 것처럼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물을 푼다. 두레박은 바로 이 ‘두레’와 모양새가 비슷하...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닭을 기르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용품. 짚으로 씨망태 짜듯 둥글게 공처럼 만들고 가운데에 구멍을 내어 닭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있는데, 이와 모양은 같지만 작은 형태를 ‘달걀망태’라고 한다. 둥우리는 병아리 따위를 가두어 기르거나 닭 따위를 가지고 다니며 팔 수 있게 만든 어리와 혼동되어 불리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둥주리·둥지리·종두리·둥어리·...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땅을 일구는 데 쓰는 농기구. 따비는 지방에 따라 따부, 따보, 때비, 탑, 보습으로도 부른다. 따비는 근래까지 서해안과 그 도서 지방 및 제주도에서 극젱이로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이나 돌밭을 가는 데 사용되었다. 요즈음에는 솔뿌리나 청미래덩굴 등을 캐기도 하는데, 이를 솔따비라고 한다. ‘따비밭’이란 말은 따비로나 갈 만한 작은 밭을 말한다. 따비는 생긴 모...
-
이기(李沂)는 1848년(헌종 14) 6월 5일 전라북도 김제 만경[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에서 이택진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증(伯曾)이다. 호는 해학(海鶴)·질재(質齋)·재곡(梓谷)·효산자(曉山子) 등인데, 이기는 스스로 남악거사(南嶽居士)라고 부르기를 즐겨했다.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였으나 용감하게 보수적인 사상을 털어 버리고 근대적...
-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종은 동학 농민 운동이 모두 진압되고 난 후 지방 행정구역 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1895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때 만경현과 금구현이 군으로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만경군·금구군은 김제군과 함께 전주부[관찰사]에 속하게 되었다.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3개 군은 전라북...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강 하류에 있는 농경지. 만경평야는 김제시와 완주군·익산시·군산시에 걸쳐 있는 만경강(萬頃江) 하류에 형성되어 있으며, 동진강 하류의 김제평야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평야에 속한다. 인접한 김제평야와 더불어 김만경평야·금만평야·호남평야라고 불리며, 한국의 주요 곡창지대를 이룬다. 본래 만경평야는 홍수와 가뭄이 심해 대부분이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
통일신라와 고려·조선 때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벽골·두내산·무근촌(武斤村)·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짚으로 엮어 곡물을 널어 말리는 데 쓰는 깔개. 지역에 따라 덕서기, 덕석, 턱성, 터서기라고 부른다. 한편 ‘덕석’은 겨울철에 소가 추위에 떨지 않게 몸에 걸쳐 주는 거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멍석을 짜는 데는 잔손질이 많이 가서 한닢을 만들려면 능숙한 사람이라도 일주일쯤 걸린다. 벼의 다수확 품종이 보급되면서 짚 자체가 멍석을 만드는 데 부적합하여...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종교 단체. 모악교(母岳敎)는 증산교에서 갈라져 나온 신종교로 신앙 대상은 원래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姜甑山)이었지만, 모악교를 창시한 여원월(余圓月)이 사망한 이후에는 여원월도 함께 받들고 있다. 또한 단군과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崔濟愚)의 신위도 모시고 있다. 강증산은 개벽주(開闢主)·미륵불(彌勒佛)·옥황상제(玉皇上帝)·증천상제(甑天上帝)...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무당이 구연하는 사설이나 노래. 무가는 무(巫)에 의하여 무속적 제의에서 가영(歌詠)되는 구비물이다. 무는 무속의례를 집전하는 주제자이며, 신분은 특수 계층에 속한다. 원래 무는 무속의례를 집전하는 여자만을 지칭하였고, 남자에 대해서는 격(覡)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오늘날에도 무라고 하면 주로 여자 무당을 일컬으며, 남자 무당에 대해서는 박수·박사·화랭이...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무근...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의 문수사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는 일제강점기 불화. 문수사 삼성각 현왕도는 화승인 관하당(觀河堂) 종인(宗仁)이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불화이다. 현왕도는 일반적으로 사찰 법당 안의 현왕단(現王壇)에 모시기도 하고 약사전(藥師殿) 등에 모시기도 한다. 문수사 삼성각 현왕도가 봉안된 삼성각은 맞배지붕에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로 1974년에 중수되었다. 종인은...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 문수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문수사는 624년(백제 무왕 25) 혜덕선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문수곡에 창건하였는데 950년에 소실되자, 957년(광종 8)에 왕사 혜림(慧林)이 350m 떨어진 지금의 장소에 중창하였다. 중창 당시에 ‘문수암’이라는 현판이 이곳에 날아와서 떨어졌다고 하며, 현판은 신필(神筆)이라 하여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지금의 사찰...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 문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석가여래좌상. 문수사는 624년(백제 무왕 25) 혜덕선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문수곡에 창건하였는데 950년에 소실되자, 957년(광종 8)에 왕사 혜림(慧林)이 350m 떨어진 지금의 장소에 중창하였다. 중창 당시에 ‘문수암’이라는 현판이 이곳에 날아와서 떨어졌다고 하며, 현판은 신필(神筆)이라 하여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지금의...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 문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아미타여래좌상. 문수사는 624년(백제 무왕 25) 혜덕선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문수곡에 창건하였는데 950년에 소실되자, 957년(광종 8)에 왕사 혜림(慧林)이 350m 떨어진 지금의 장소에 중창하였다. 중창 당시에 ‘문수암’이라는 현판이 이곳에 날아와서 떨어졌다고 하며, 현판은 신필(神筆)이라 하여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지금...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실을 뽑을 때 쓰는 기구. 목화의 솜이나 누에고치의 실을 잣는 간단한 수공업의 방적 연장으로 물레바퀴와 가락 사이에 솜을 걸고 물레를 돌리면 가락이 빠른 속도로 돌면서 실을 뽑는다. 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감는 가락, 물레의 몸과 가락을 걸쳐 감아 물레가 돌아감에 따라 가락을 돌게 하는 물레줄, 이 줄에서 힘을 받아 가락을 돌리는 물레바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서 민중들이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민속이란 민속학에서 포괄적인 용어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김제 지역의 민속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신앙·전설·풍속·생활양식·관습·종교의례·민요·...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박명수(朴命壽)는 본관이 함양(咸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백의창의(白衣倡義)하여 의병을 모집한 뒤 웅치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순절하였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장수와 양곡을 주청한 이순신(李舜臣) 등 18명은 선무...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일서(一瑞), 호는 굴지당(屈指堂).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고창현감을 지낸 박형(朴珩)이다. 어머니가 큰 돌이 떨어져 가슴에 안기는 꿈을 꾸고 낳아 석정(石精)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다. 박석정(朴石精)은 16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학문이 남달리 뛰어났으며, 많은 제자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토헌(土軒) 박초(朴礎)의 후손이다. 박충길(朴忠吉)은 부장(部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백관들은 권정례(權停例)로써 진하(陳賀)하였다.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종묘와 사직의 주판(主版)을 받들고 먼저 떠나게 하고 왕...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출신의 승려이자 불교 지도자. 박한영(朴漢永)의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子)이다. 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전주, 김제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한영은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들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
조선 전기 김제 벽골제를 수축한 문신. 본관은 진원(珍原). 초명은 희종(熙宗), 자는 자인(子仁), 호는 위남(葦南).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박온(朴溫)이다. 박희중(朴熙中)은 생원으로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05년 이조좌랑이 되었다. 1406년(태종 6) 군자감승(軍資監丞)으로 전라도경차관(全羅道敬差官)에 임명되었다. 이어 세자부좌정자(世子傅左...
-
백제 때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벽골군(碧骨郡)에 관한 기록은 부족하여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330년(비류왕 27) 벽골제 축조 기사로 보아 벽골제와 관련성이 있다는 설과 볏골[벼의 고을]이라는 말에 연원이 있다는 설이 있다.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무근촌(武斤村)·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에서 단야의 설화를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 벽골제 쌍용놀이는 백룡과 청룡 두 용의 싸움과 이 과정에서 희생된 김제태수의 딸인 단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가 지금의 민속놀이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벽골제의 제방공사와 용의 이야기가 후대에 와서 인간들의 애정갈등과 함께 얽히면서 놀이화가 된 것이다. 쌍용놀이는 ‘벽골제’에 얽힌 다음과 같...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던 마한 54소국의 하나. 벽비리국의 ‘비리’라는 말은 비리국(卑離國)·고비리국(古卑離國)·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내비리국(內卑離國) 등 마한의 소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백제의 부리(夫里)와 신라의 벌(伐)·불(弗)·불[火]처럼 평야, 읍락, 나라 등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
-
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의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고현마을과 부서울마을 일대가 과거 부윤현의 위치이다. 성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부설각시’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부서울’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만경면 남쪽 13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이 지금도 고현과 부윤으로 부르는 점 등 여러 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손바닥 크기의 납작한 돌을 땅바닥에 세우고, 다른 돌을 던져 쓰러뜨리며 노는 놀이. 비석차기는 상대편의 비석을 일정선 상에 세워 놓고 자신의 비석을 운반해 상대 비석을 쓰러뜨려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비석까기’, ‘비석치기’, ‘비사치기’ 등이라고도 한다. 돌을 이용한 가장 발달된 놀이로서 전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운동 효과가 높은 편이다. 고려...
-
진봉면 심포리 심포항(深浦港)과 망해사(望海寺)는 드넓은 서해의 풍광과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제시의 중요한 문화적·역사적 자원으로 일망무제한 김제 지평선의 일단을 장식하는 중요한 문화 관광지로 꼽힌다. 옛 문헌에서 심포라는 지명을 찾아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 지방 지도 등에는 이 지역이 하일도(下一道)로 표기되어 있다. 심포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시대의 역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며 생활의 터전을 닦아왔다. 그러나 백제 중엽 이전의 구체적인 연혁은 아직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한시대에는 54개국 중 벽비리국에 해당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전라북도 김제시에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이 확인된 예가 없어 그때부터 이곳에 사람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 전라북도 김제시 및 김제시 외곽에는 많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역의 특성상 주로 전설적인 요소들이 강한 설화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벽골제와 관련된 설화가 많다. 특이하게 비거를 만들었다고 하는 정평구와 관련된 설화가 채취되어 회자되고 있다. 김제 지역에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이 깊은 설화들이 많이 전해지고...
-
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김제 교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처음 창립할 때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약칭 통일교]라고 이름 붙였다가 1997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꾸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의 아버지로 믿으며, 예수를 인간의 구주인 동시에 복귀된 선(善)의 조상으로 믿는다. 문선명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신·구약 성서와 함께 『원리강론』, 『문선명...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엄, 풀 무덤 따위를 쳐내는 데 쓰는 갈퀴 모양의 농기구. 쇠스랑은 논갈이나 밭갈이에 쓰는 농기구로 지역에 따라 소스랑·소시랑·쇠시랑·소스랭이·쇠서랑 등으로 불리며, 모양은 갈퀴 모양으로 3~4개의 발이 달리고 기역자로 구부러진 한쪽 끝에 나무 자루를 박았다. 씨를 뿌리거나 심기 위해서는 우선 땅을 일구고, 덩어리진 흙을 부수며 바닥을...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수동산현은 본래 백제 영토였는데,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백제 소속이었는지, 지방...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어떤 사물에 빗대어 묻고 알아맞히는 언어 표현 놀이. 수수께끼는 시사물을 바로 이르지 아니하고 빗대어서 말을 하여 그 사물의 뜻을 알아맞히는 놀이로써, 주로 은유를 써서 대상을 정의하는 언어표현이다. 수수께끼는 기억하기가 아주 간단하고 쉬울 뿐만 아니라, 개인이 창작한 것이 아니고 심리적·기능적 필요에서 생겨난 인간적 언술의 근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표준...
-
전라북도 김제시에 설립된 증산교 파벌 교단인 순천도의 본부. 장기준(張基準)은 증산교의 김형렬(金亨烈)을 따르다가 김형렬이 1916년 봄에 전국 360군에 360명을 보내어 6무(戊)를 묻게 했을 때 아무 영험이 없는 데 실망하였다. 다음 해인 1917년 고향인 순천 쌍암(雙岩)에 있는 제왕봉(帝王峰)에 올라가 『서전(書傳)』서문(序文) 만독(萬讀)을 정진 끝에 현무경의 진의를 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봄과 가을에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 시제(時祭)는 원래 사시제라고 부르던 것으로서 1년에 네 번, 즉 춘하추동의 계절마다 고조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문중 제사이다. 즉 4대 봉사가 끝나 기제(忌祭)를 잡수시지 못하는 조상을 위하여, 5대조부터 산소를 직접 찾아 올리는 제사이다. 이를 ‘묘제’, ‘시향(時享)’, ‘시사(時祀)’, ‘시양’, ‘세...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김제시의 변천 과정.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과, 남쪽으로는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 및 부안군과, 북쪽으로는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인접하며,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하고 있다. 김제의 자연환경을 보면 동부에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높이 500~700m의 산지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정월 대보름 절식의 하나. 오곡밥은 장수를 기원하는 음식의 하나로 신라시대 까치에게 감사하며 정월 대보름 제사상에 올리던 약밥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약밥에 사용되는 잣, 밤, 대추 등의 귀한 재료를 구할 수 없었던 일반 평민들이 약밥 대신 쌀과 콩 등의 다섯 가지 곡식을 넣어 오곡밥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일대에 있는 광산. 모악산을 이루고 있는 엽리상 화강암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금구면 선암리 등지에 석금(石金)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다. 현재 채굴하고 있는 금광은 모두 사금광으로, 엽리상 화강암의 풍화물이 하천에 의해 이동·퇴적하면서 집적된 충적층 하부와 기반암 또는 플라이스토세 접촉부에 사금이 포함되어 있다. 모악산에...
-
조선 후기 문신이자 의병. 정묘호란은 1627년(인조 5)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에 대한 주전정책(主戰政策)이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 인조 즉위 후 집권 세력인 서인은 광해군 때의 대외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후금과의 관계를 끊는 한편,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후금은...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희춘(柳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유광복(柳光復)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유지화(柳志和)[1599~1680]는 1633년(인조 11)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叅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개항기 의병 항쟁.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한말 의병항쟁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이 계기가 되어 발생한 것으로, 활동 시기에 따라 을미의병·병오의병·정미의병 등으로 구분된다. 을미의병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그리고 복제(服制)의 변경 조치로 발생하였고, 병오의병은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19...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
-
757년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고쳤는데, 그때 내리아현(乃利阿縣)은 이성현(利城縣)으로 개칭되어 김제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이성현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김제시 공덕면...
-
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어머니를 둔 집권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의종 말기에 산원(散員)으로 견룡행수(牽龍行首)를 지냈다. 1170년(의종 24) 보현원(普賢院)에서 대장군 정중부(鄭仲夫)·이고(李高) 등과 무인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뒤 응양용호군(鷹揚龍虎軍)의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이의방은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하여 전주의 영현으로 있던 금구(金溝)를 현(縣)으로 승격...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公輔). 증조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할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아버지는 이몽상(李夢祥), 어머니는 남상덕(南尙德)의 딸이다. 아들은 이응명(李應蓂)·이응협(李應浹)·이응시(李應蓍)이다. 이정신(李廷臣)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8년(선조 21) 식년문과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이괄(李适)은 인조반정에 대한 녹훈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하여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한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나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임진왜란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1592년 4월 14일 일본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이와 맞서 부산진의 첨사 정발(鄭撥)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초기에는 왜군의 일방적인 북상이 계속되었다. 풍부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대규모 왜군은 당일에 부산성을 점령하고, 계속 북상하여 같은 해 5월 2일에 한양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침공한 지 20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
-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서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입석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 사람들이 재앙을 막고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입석[선돌]은 길쭉한 자연석이나 커다란 돌을 일부만 다듬어 똑바로 세운 기념물 또는 신앙 대상물을 지칭한다. 입석동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이 입석은 마을의 당산으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곡식을 빻거나 찧는 데 쓰는 용구. 통나무나 돌의 속을 파낸 구멍에 곡식을 넣고 절굿공이로 찧는다. 옛말로는 ‘절고’로 표기되었고, 지역에 따라 ‘도구통’, ‘도구’, ‘절기방아’라 부른다. 절구는 통나무나 돌 또는 쇠로 만들며, 그 재료에 따라 ‘나무절구’, ‘돌절구’, ‘쇠절구’ 등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어느 것이나 윗부분에 우묵한 구멍이 있다. 공이도...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군수를 지낸 무신. 본관은 영덕(盈德). 자는 언결(彦潔)이다. 아버지는 정창국(鄭昌國)이다. 정담(鄭湛)은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니탕개(尼湯介)의 변에서 공을 세우고 여러 벼슬을 거쳐 1592년(선조 25)에 김제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 휘하의 일본군은 용담(龍潭)·진안(鎭安)을 공격하여 웅치(熊峙)[지...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 아버지는 첨정(僉正)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이다.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1570년(선조 3)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각별한 후원과 촉망을 받았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이 되었고, 1585년 홍문관수찬이 되었다. 본래 서인이었으나 이이를 버리고 박순(朴淳)·성혼...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비거 발명가, 무신. 정평구(鄭平九)는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였다. 청년이 되어 문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여 다시 무과에 응시하였고, 이후 무관 말단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라우수사로 부임해온 당시의 명장 이억기(李億祺)가 정평구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중용함으로써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정평구와 비거(飛車)에...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김제 지역에는 손효성 가옥, 김제 신풍동 일본식 가옥, 오영순 가옥, 최희성 가옥, 함태영 가옥, 황병주 가옥 등의 전통 가옥과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전통 가옥의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김제시 장화동 후장마을의 가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후장마을 가옥의 평면 구성과 규모 등을 보...
-
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성은 정씨(鄭氏), 호는 환성(喚惺), 자는 삼낙(三諾).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지안(志安)[1664~1729]은 1678년(숙종 4) 15세에 미지산 용문사(龍門寺)로 출가하였고, 정원(淨源)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680년 설제(雪霽)를 찾아 법맥을 이어받은 뒤, 침식을 잊고 경전 연구에 몰두하였다. 1690년(숙종 16...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물질. 김제 지역은 백두대간과 금남정맥(錦南正脈), 호남정맥(湖南正脈), 영산기맥(榮山岐脈), 모악기맥(母岳岐脈) 등의 산줄기 때문에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지형을 이룬다. 동남부와 북서 해안에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동진강(東津江)·원평천(院坪川)·만경강(萬頃江) 주변에 광대한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남부 산지는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승려.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는 1568년(선조 1)에 봉서사(鳳棲寺)에서 출가하였는데, 사미승(沙彌僧)일 때 신중단(神衆壇)의 향을 피우는 직책을 맡았다. 그날 밤 주지의 꿈에 부처가 향을 피우니 제천(諸天)은 받을 수 없노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진묵의 신이로움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뒤 일정한 주처 없이 천하를...
-
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승려. 성은 정씨(井氏)이고,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이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12세에 출가하여 금산사(金山寺) 순제(順濟)에게 사미계법(沙彌戒法)을 받았다. 760년(경덕왕 19)에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서 미륵상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하다 762년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교법(敎法)을 전해 받고...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반찬을 여러 층의 그릇에 담아 포개어 간수하거나 운반할 수 있게 만든 용기. 찬합은 주로 목재를 짜서 옻칠하여 수분의 침투를 방지하게 되는데, 대나무쪽을 잇대어 엮은 죽합(竹盒)이나 박목판(薄木板)으로 짠 구조 위에 등나무 줄기로 엮어 만든 등합(藤盒)도 그 나름의 장점이 있어 더러 쓰였다. 재료는 대·버들·백자·나무·놋쇠·은 등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쓰다가 못...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의 역사. 철기시대는 대체적으로 원삼국시대 이후이다. 원삼국시대의 김제 지역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마한의 벽비리국(辟卑離國)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익산 지역 일대를 포함한 건마국(乾馬國)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 일대에 대한 긴급 수습조사를 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증산교의 한 교파이자 교주 강일순의 사당. 청도대향원(淸道大享院)은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姜一淳)의 사당을 의미하지만, 하나의 교파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사당을 세운 김삼일(金三一)은 법종교 전 교주 김병철(金炳澈)의 아들로, 강일순의 딸인 강순임(姜舜任)이 그의 서모(庶母)이다. 김삼일은 처음에는 법종교에 귀의하였으나 강순임이 죽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의 역사.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청동기시대 역사는 관내 각지에서 청동기 유적과 유물산포지가 확인됨으로써 알 수 있다. 1974년에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부용리 성자동에서 이형의 마제석검이 1점 수습되어, 김제시 최초로 청동기시대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후 김제시 백구면 반월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와 토기요지 11...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백(麗百).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최후신(崔後臣)이다. 최득남(崔得男)은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피난길에 오르자 위험을 무릅쓰고 당시 세자인 광해군을 호종하였다. 위성원종공신(衛聖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위성원종공신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벼·보리 등을 탈곡할 때 쓰던 농기구. 탈곡기에는 넓은 의미로 콩·팥·옥수수·땅콩 등의 탈곡과 탈립(脫粒) 또는 껍질을 까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탈곡기도 포함된다. 탈곡 방법은 작물의 종류나 농업의 발달 정도에 따라 다르다. 옛날에는 두 개의 막대기에 한 끝을 끈으로 묶어 집게 모양으로 만든 것에 벼 이삭을 끼워서 잡아당겨 훑어내는 훑이를 사용하였...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속성은 오씨(吳氏)로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소요(逍遙)이다. 태능(太能)[1562~1649]은 13세 때 장성(長城) 백양사(白羊寺) 진대사(眞大師)에게 계를 받았다. 부휴당(浮休堂) 선수(善修)에게 경전을 배운 뒤 묘향산에 가서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수행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 때 휴정과 유정(惟政)이 의병을 일...
-
가는 댓조각이나 싸리를 엮어서 통같이 만든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고기잡이 기구. 통발은 일명 ‘쪽대’라고도 한다. 가느다란 대조각으로 원추형(圓錐形)의 발을 엮고, 밑바닥에서 안쪽으로 다시 원추형으로 반쯤 발을 엮어서 구멍을 낸 것이다. 대나무 통발 원추형 밑바닥의 안쪽에 있는 ‘발’은 원추형을 중간에서 자른 모양 같은 깔대기로 ‘안혀’또는 ‘안섭’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원통형 또...
-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중...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풀무는 다른 말로 ‘궤풀무’라고도 하는데, 이는 생긴 모습이 마치 상자 모양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또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쓰여 지는데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불메’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손풀무를 ‘불미’, 발풀무를 ‘발판불미’라고 한다. 또한 농사짓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힘든 일을 서로 거두어 품을 지고 갚는 일. 품앗이는 농촌에서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노동력을 맞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품아이’, ‘품바꾸이’ 등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의 교환 형식이라고 이해되고 있으나, 그 어원적인 의미는 ‘품[노동력]’·‘앗이[수(受)]’인데 대한 ‘품’·‘갚음[보(報)]’의 뜻이 내포된 노동력의 호혜적(互惠的) 증...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곡물에 섞인 쭉정이나 먼지 등을 날리는 데 쓰는 농기구. 풍구는 공기의 기류를 이용하여 곡물을 선별하는 연장으로 비교적 근대적인 기계 기구의 구조를 갖추었다. 기록에 의하면 풍구는 18세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비교적 근대에 만들어진 기구라 할 수 있다. 풍구를 돌리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근년에는 전동기를 달아 돌리기도 하였고,...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법조인이자 독립운동가·정치가. 함태영(咸台永)의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송암(松岩)이다. 1873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정당리에서 태어났다. 1889년에 아버지 함우택(咸遇澤)이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관(宣略將軍行龍讓衛副司官)에 제수되자 함께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법조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6개월 과정을 거...
-
가랫바닥 끝에 쇠로 된 날을 붙인 전라북도 김제시의 농기구. 화가래는 나무를 자루에 직각으로 박은 가랫바닥 끝에 쇠로 된 날을 붙인 농기구이다. 괭이의 원시형이다. 흙을 파고 고르는 데 쓰는 연장으로 조선 초기 하위지(河緯地)[1412~1456]의 유서에는 ‘괘이’로 표기되었으며, 『고사신서(考事新書)』 농포문의 ‘노작’도 괭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날의 모양이 가래처럼 생겨 화가래...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고추·마늘 등 양념이나 곡식을 가는 데 쓰는 연장. 확독은 ‘돌확’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통 자연석을 우묵하게 파거나 번번하고 넓적하게 판 것 등이 있는가 하면, 오지로 되어 버치[너럭지] 형태의 그릇 안쪽에 우툴두툴하게 구워낸 것도 있다. 돌로 만든 것에는 손에 쥘만한 둥근 돌로 곡식을 으깨며, 오지로 된 자배기에는 흙으로 구워낸 허리가...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우주(紆州)[오늘날의 전북 완주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아버지는 고려에서 문하평리를 지낸 황문용(黃文用)이며, 어머니는 덕수장씨(德水張氏)로 현령을 지낸 장핵(張翮)의 딸이다. 황거중(黃居中)은 어릴 때부터 글 짓는 데 능하고, 경서를 해석함에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의 황산전투(荒山戰鬪)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학자.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흥복사에 있는 조선 후기 삼존불상. 흥복사는 650년(의자왕 10)에 고구려에서 온 보덕(普德)이 창건한 사찰로 승가사라고도 불렸다.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25년(인조 3) 김제에 살던 흥복처사(興福處士)가 기원도량으로 삼아 극락전을 중건하고 흥복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목조삼존불좌상이 있고, 관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