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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외세를 배척하고 수교를 거부하는 의지를 나타내고자 흥선 대원군이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세운 비. 경산리 척화비(京山里斥和碑)는 1871년(고종 8) 4월 신미양요를 겪은 후,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이 서울 종로를 비롯 전국 주요 도로변에 약 200여 개 건립한 비석 중 하나로, 비의 앞면에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입을 경계하는 내용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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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관왕묘지에 세워진 비석. 하마비(下馬碑)는 조선 시대 종묘, 서원, 향교, 궐문 등 입구에 세운 비석을 지칭한다. 하마(下馬)를 직역하면 ‘말에서 내려라’라는 명령어로, 신분, 지위를 떠나 하마비가 세워진 곳을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선열에 대한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에서 전국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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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희맹을 기리기 위해 1564년에 세운 비. 권희맹(權希孟)[1475~1525]은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으로 성품이 굳세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하였고 관직에 오른 후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쳐 후일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직무를 수행함에 막힘이 없고 능력이 탁월하여 관리자로서 유능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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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창집을 기리기 위해 1750년에 세운 비. 조선 후기 문신인 김창집(金昌集)[1648~1722]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여성(汝成), 호는 몽와(夢窩)이다. 1684년(숙종 10) 정시 문과에 급제하고 정언, 병조 참의 등을 지냈다. 1712년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1717년 영의정이 되었다. 1721년(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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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도형을 기리기 위해 1917년에 세운 비. 도형(都衡)[1480~1547]은 본관이 성주, 자가 국전(國銓), 호가 행정(杏亭)이다. 성주군 운곡리(雲谷里)에서 태어났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문인이다. 용암(龍巖) 박운(朴雲)[1493~1562]·묵재(墨齋) 노필(盧▼玉+筆)[1464~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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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학자인 김우옹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신도비(神道碑)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을 말한다. 김우옹(金宇顒)[1540~1603]은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으로, 1567년(명종 22)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병조 참판, 대사성(大司成)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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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문명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성주에 정착한 시문용을 기리기 위하여 1847년에 세운 비. 시문용(施文用)[1572~1643]은 중국 절강성 출신으로 자가 종록(宗祿), 호가 풍천(風泉)이다. 우리나라 절강 시씨(浙江施氏)의 시조이다. 정유재란 때 조선에 들어왔다가 귀화하여 성주 지역에 정착했다. 아버지 시윤제(施允濟)의 명으로 정유재란 때 제독 마귀(麻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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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박구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35년에 세운 비. 정려(旌閭)란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집 앞에 정문(旌門)을 세워 기리던 것으로, 이 비는 조선시대 사람인 박구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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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대황리에 있는 배극렴의 사묘와 신도비. 주금당(晝錦堂) 배극렴(裵克廉)[1325~1392]의 사적으로, 배극렴의 시조와 조상, 배극렴의 가계, 배극렴을 기리는 명(銘), 배극렴을 칭송하는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시가 새겨져 있다. 배극렴은 본관이 성산(星山), 자가 양가(量可), 호가 주금당(晝錦堂)·필암(筆菴), 시호가 정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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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서 활약한 배덕문을 기리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에 세운 비. 배덕문(裵德文)[1525~1603]의 본관은 성산이고, 자는 숙회(叔晦), 호는 서암(書巖)이다. 조부는 배맹성(裵孟成), 아버지는 배주(裵綢), 어머니는 농서이씨(隴西李氏)로 이세무(李世茂)의 딸이다. 부인은 백거추(白巨鰍)의 딸 정부인(貞夫人) 선산백씨(善山白氏)이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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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무관 배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4년에 세운 비. 임진왜란 당시 무장인 배설(裵楔)[1551~1599]의 자는 중한(仲閑), 호는 서강(西岡), 본관은 성주이다. 아버지는 영덕군수, 고부군수를 역임하고 의병장으로 활약한 배덕문(裵德文)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장인은 좌의정 송렴(宋濂)의 6대손인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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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성주 출신 대중 가수 백년설의 업적과 노래를 기념하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세운 2기의 비. 백년설(白年雪)[1915~1980]은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대중 가수이자 영화 제작자, 사업가로 1915년 성주에서 태어나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였다. 본명은 이갑룡이고, 나중에 이창민으로 개명하였다.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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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에 있는 성주목사 이보혁의 공을 기리리 위해 1784년에 세운 비. 성주목사를 역임했던 이보혁(李普赫)[1684~1762]이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을 진압한 내력과 그의 공을 기리는 시가 새겨져 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다. 당시 이보혁은 성주목사였다. 그는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 양정에 군사를 집결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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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에 있는 밀양 박씨 가문의 효자 세 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66년 건립한 정려각. 성주 도성리 삼효각(星州道成里三孝閣)에 정려된 세 명 가운데 사헌부 감찰에 증직된 박안연(朴安連)[1566~1619]은 부친이 병든 지 6년에 의원이 ‘인육(人肉)이 효험이 있다’고 하자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몰래 드려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그 후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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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도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18년에 세운 정려각. 성주 도형 정려각은 조선 전기 학자인 도형(都衡)[1480~1547]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과 정려각이다. 도형의 본관은 성주, 자는 국전(國銓), 호는 행정(杏亭)이다. 할아버지는 도이경(都以敬), 아버지는 진사 양진당(養眞堂) 도맹녕(都孟寧), 어머니는 단양 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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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에 있는 16기의 비. 성주 역사 테마 공원 내 비석군은 원래 성주 읍내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온 것이다. 기공비(紀功碑), 선정비(善政碑) 등 16기가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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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리에 있는 이경환과 그의 부인 성산 배씨를 기리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세운 비각. 이경환(李慶煥)[1902~1929] 의사(義士)는 1928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교토[京都]를 방문했을 때 한국 침략의 부당성과 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 철폐를 요구하는 직소장(直訴狀)을 제출하려다가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고, 옥고를 치르며 온갖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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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동포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희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65년에 세운 비. 송희규(宋希奎)[1494~1558]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천장(天章), 호는 야계(倻溪)·야계산옹(倻溪山翁),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원래 시조 때부터 합천 야로(冶爐)를 중심으로 살았으나, 9세손 송구(宋構)[?~?]가 경상감사(慶尙監司)로 부임하면서 경상북도 성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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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제말 장군과 조카인 제홍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792년 세운 비. 제말(諸沫)[?~1592]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으며 성주성 싸움에서 전사했다. 조카인 제홍록(諸弘祿)[1558~1597]은 제말과 더불어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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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염농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염농산(廉隴山)[1859~1947]의 초명은 경은(敬恩)이며 1913년 농산(隴山)으로 개명하였다. 기명은 앵무(鸚鵡)이며, 호로 농산(隴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염농산은 경상 감영(慶尙監營) 교방(敎坊)의 관기 출신으로 기예가 뛰어나 명기(名妓)로 이름을 떨쳤다. 대구기생조합, 달성권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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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의롭게 죽은 이사룡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1900년에 세운 비. 이사룡(李士龍)[1612~1640]의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임중(任中), 호는 괴정(槐亭)이다. 1640년(인조 18) 청나라가 명나라와의 전쟁을 위해 조선에 군사를 요청하였을 때 포수(砲手)로 징발되었다. 금주(錦州)의 전투에서 명나라의 은혜를 생각하여 탄환을 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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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사도 세자의 호위 무관이었던 이석문을 기리기 위해 1909년에 세운 비. 이석문(李碩文)[1713~177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자는 사실(士實), 호는 돈재(遯齋), 별호는 북비공(北扉公)이다. 1713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 마을에서 태어났다. 한개 마을은 성산 이씨 집성촌으로 아버지는 이이신(李爾紳), 어머니는 야성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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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 있는 고려 말 문신인 이숭인을 기리기 위해 1922년에 세운 비.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본관은 성주이고,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다. 1368년(공민왕 17) 문과에 급제한 후 예의산랑(禮義散郞)·예문응교(藝文應敎)·문하사인(門下舍人) 등을 역임했다. 고려 문사(文士)를 뽑아 명나라로 보낼 때 1등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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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이승을 기리기 위하여 19세기에 세운 비. 이승(李承)[1552~1598]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가 선술(善述), 호가 청휘당(晴暉堂)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에 들어갔고,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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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원조를 기리기 위해 1907년에 세운 비. 이원조(李源祚)[1792~1871]의 본관은 성산(星山), 초명은 영조(永祚)였으나 세자의 이름을 휘하여 고쳤다. 자는 주현(周賢), 호는 호우(毫宇)·응와(凝窩)이며, 시호는 정헌(定憲)이다. 1809년(순조 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을 두루 거쳐 정승의 반열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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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에 있는 성주 이씨 중시조 이장경을 기리기 위해 1855년에 세운 비. 이장경(李長庚)은 고려 시대 중기의 호족으로, 본관은 성주이며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성주 이씨(星州李氏)는 신라 말 이순유(李純由)가 시조로 이후 5대부터 이범(李凡)·이정거(李廷居)·이충경(李冲京)·이영(李瑩)·이효삼(李孝參)·이돈문(李敦文)·이득희(李得喜)·이장경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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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위한 문신 전룡을 기리기 위해 1936년에 세운 비. 조선 전기 문신인 전룡[1559~?]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36년에 세운 신도비이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난 전룡의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여견(汝見), 호는 석천(石泉)이다. 아버지는 호조 판서 전응조(全應祖)이다. 천성적으로 성품이 올곧고 어릴 때부터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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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용신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석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37년에 세운 비. 정석견(鄭錫堅)[?~1500]은 본관이 해주(海州), 자가 자건(子健), 호가 한벽재(寒碧齋)이다. 사림파 학자 신당(新堂) 정붕(鄭鵬)[1467~1512]의 작은아버지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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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 있는 의병장 박이현과 그의 아들 박영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25년에 세운 정각. 박이현(朴而絢)[1544~1592] 의병장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김면(金沔)의 의병진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성주 가천의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그 공으로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이후 그의 아들 박영서(朴永緖)[?~1624]가 이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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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학자인 한강 정구를 기리기 위해 1633년에 세운 신도비. 한강 정구 신도비(寒岡鄭逑神道碑)는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조선 성리학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1633년(인조 11)에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갓말 마을 뒷산인 창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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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에 있는 일제에 저항하다 순절한 장기석을 기리기 위해 1937년에 세운 비. 장기석(張基奭)[1860~1911]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다가 39세의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여 43세에 학문을 두루 통달하였다. 그 뒤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에 힘썼다. 일제 때 경찰서장으로부터 경축식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