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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527
한자 梁山孝子里碑
영어의미역 Monuments to Filial Piety
이칭/별칭 박창·이공미 효자비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153-3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한태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양산 효자리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양산 효자리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금석각류|효자비
건립시기/일시 고려 우왕
관련인물 박창|이공미
재질 화강암
높이 박창 83㎝|이공미 94㎝
너비 박창 76㎝|이공미 66㎝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153-3 지도보기
소유자 양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박창과 이공미의 효자비.

[건립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2, 양산군 효자조에 의하면 박창(朴暢)은 부모상을 당해 깊은 골짜기에 여막을 짓고 밤낮으로 애통해 하니 왜적도 감동하여 해치지 않아 무사히 3년상을 마쳤다. 이공미(李公美)는 어미의 무덤을 3년 동안 지켜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내리고 세금을 면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박창과 이공미가 살았던 마을이 어딘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큰 글씨 외에는 비석이 워낙 심하게 마모되어 건립 연대를 추정하기 힘들다. 다만 이들이 고려 시대 사람임을 고려하면 고려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153-3번지 예전 양산시 교육청(지금의 양산교회 주차장) 왼쪽 정원의 잔디밭에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형태]

이공미(李公美)의 효자비는 비두와 비좌 없이 비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비신은 윗부분 모서리가 접힌 규수(圭首) 모양으로 높이 94㎝, 너비 66㎝, 두께 24㎝이다. 박창(朴暢)의 효자비 역시 비두와 비좌 없이 비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비신은 윗부분 모서리가 각이 있는 직수(直首) 모양으로 높이 83㎝, 너비 76㎝, 두께 15㎝이다.

[금석문]

박창의 효자비에는 비신 상단부에 ‘효자리(孝子里)’라고 횡서(橫書)되어 있고,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지만 마멸이 심하여 읽을 수 없다. 이공미의 효자비도 상단 부분에 2단 종서(縱書)로 ‘효자/지리(孝子/之里)’라 표기하였고, 아래에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해 읽을 수 없다. 두 비석 모두 작은 글씨 부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확인을 적은 것으로 짐작된다.

[현황]

양산시 교육청이 이전하면서 지금은 양산교회 주차장 잔디밭에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안내 현판을 뒤로 하고 왼쪽에는 이공미의 효자비가, 오른쪽에는 박창의 효자비가 놓여 있는데, 새로 이전한 양산시 교육청으로 옮겨가는 것이 교육적 차원에서나 관리 보존의 차원에서 마땅하다고 본다. 1976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박창과 이공미의 효자비는 양산 지역의 효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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