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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711
한자 -信仰
영어의미역 Village Worship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집필자 김승룡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행하는 제의.

[개설]

양산 지역의 민간신앙에서 특히 당산제는 특기할 만하다. 당산은 수호신이 있다고 여겨지는 마을 가까운 산이나 언덕을 가리키는데, 이는 옛날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마을 근처의 산과 언덕에 외경심으로 가졌고, 자연 현상은 나 자신은 물론 마을사람들의 평안을 지켜주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신념에서 나온 풍습이다. 여기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당산제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제를 지내면서 그들의 무병과 평화를 기원한다. 대체로 마을 입구에 있는 제단이나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사당에서 제를 올린다.

[당산제 과정]

당산제는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아니면 3~5년에 한 번씩 베풀어진다.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당산제가 가장 많고, 제사와 굿의 성격을 이중적으로 갖는다. 부정이 없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마을 원로들이 선정하여 제주로 뽑고, 제주를 중심으로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끝내고 나면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음복 행사를 진행한다.

양산에서는 당산제라는 이름 이외에 당제, 용왕제, 풍어제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당신, 골매기, 서낭신, 당산할매, 당산할배 등을 섬겨왔다. 그 절차는 지역마다 약간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다.

제일은 1년에 한 번 지낼 경우, 음력 정월 보름, 3월 3일 등에 지내며, 두 번 지낼 경우 6월 6일, 9월 9일 등을 택하여 한다. 제관의 선출은 동제 1개월 전, 14일 전, 10일 전에 동회를 열어서 마을 사람들의 합의에 의하여 제관을 선출한다. 나이가 많은 원로로서 덕망이 있고 정결한 사람으로 생기 복덕에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관의 수는 대체로 제주, 축관, 집사 각 한 사람씩으로 하여 도합 세 사람이나 사정에 따라 한 명이 담당하기도 한다.

[제관의 선정]

제관이 결정되면 그날부터 제사를 모시는 제일까지 금기에 들어간다. 제관으로 선출된 사람은 동제를 모시는 신당에 가서 주위를 청소하여 티끌이나 검불 등속을 모아 불을 놓고, 신당 주위에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친 뒤 황토를 펴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킨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 금기를 시작한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음식을 가려 생선과 육류를 먹지 않으며, 부부가 한 방에 들어가지 않고 언행을 삼간다. 특히 당주의 집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마을 입구에도 금줄과 황토를 펴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

제물은 주로 술, 과일, 포, 탕이 중심이 된다. 비용은 마을에서 추렴한 공동 비용으로 충당하며 제물을 살 때 값은 깎지 않는다. 제주(祭酒)로 쓰는 술은 신당 부근에 땅을 파고 그 안에 두었다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동제의 특징 및 의의]

동제를 지내는 날이 되면 제주 집에서 장만한 제물을 지게에 지고 그것을 신당에 진설한다. 자정이 되면 초헌, 아헌, 종헌을 하고, 초헌한 뒤 독축을 하며, 제가 끝나고 축문을 사른다. 축문의 내용은 마을의 태평, 풍요를 기원, 삼재의 소멸, 만병의 퇴치, 가축의 번성, 영재의 배출, 국태민안 등이다.

제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제물을 거두어 제주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제주의 집으로 모여 회의하며 제의 비용을 결산하고 마을 일을 상의한다. 이 절차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던지는 고시레를 하기도 하고, 농악을 울리며 사당 주위와 공동 우물, 골매기당, 장승 주변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당산제는 성황제나 서낭제 등으로 일컬어지며 다양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마을의 안녕과 무사, 풍농을 기원하면서 공동체의 단결을 꾀하자는 마을 공동의 의식의 소산이었다. 양산 지역에는 주로 정월 대보름을 기해 정성을 다해 당산제를 지냈다.

성역의 표시로 왼새끼를 당목이 당집에 두르고 잡귀를 쫒기 위해 붉은 흙은 뿌리고 제주는 여러 가지 금기 사항을 지켰다. 제일을 결정하고 제관을 선출하고 금기 사항을 지키고 제물을 마련하고 제의를 행하고 음복을 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공동체 의식을 결집시켜 나갔다. 즉 마을 사람들의 지연적인 대동 단결을 굳히고 풍년에의 의욕을 다지며 농민다운 경건한 심성을 길러주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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