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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수 영세불망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139
한자 張泰秀永世不忘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Jang Taesu
이칭/별칭 행군수 장공태수 영세불망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한태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석각류|영세불망비
건립시기/일시 1875년 1월연표보기
관련인물 장태수
재질 화강암
높이 134㎝
너비 51.5㎝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지도보기
소유자 양산시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에 있는 조선 말기 양산군수 장태수(張泰秀)의 덕치를 기리는 영세불망비.

[건립경위]

1869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한 장태수는 곡식을 내어 묵정밭을 일구었고, 창고를 열어 세금을 덜어주었으며, 군기를 정비하고 별포군을 기르는 등 국방에 힘썼다. 이에 따라 양산 지역이 완전한 모습이 갖추어가던 1870년 갑자기 장태수가 헌납(獻納)의 벼슬을 제수받아 자리를 옮긴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비석을 세웠다. 장태수는 경술국치 때 단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위치]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오른쪽 비석군의 앞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2번째에 놓여 있다.

[형태]

비두와 비신 및 비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비두는 높이 61.5㎝, 너비 89㎝, 두께 33㎝로 용이 새겨진 이수(螭首) 모양을 하고 있다. 비신은 높이 134㎝, 너비 51.5㎝, 두께 20.8㎝이며, 비좌는 가로 89㎝, 세로 59㎝, 높이 5㎝인데, 비좌는 오른쪽이 약간 훼손되어 있다. 비문은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 중앙에 큰 글씨로 ‘행군수장공태수영세불망비(行郡守張公泰秀永世不忘碑)’라 적었고, 양쪽에 작은 글씨로 4언시를 썼다. 오른쪽에는 ‘아, 공께서 이 곳에 부임하심에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살아나게 하셨도다. 곡식을 내어 재앙을 구하셨고 창고의 곡식을 꺼내어 조세 부담을 줄이셨다네(猗公涖玆 俾我民蘇 出粟捄菑 捐廩蠲租)’라고 쓰여 있으며, 왼쪽에는 ‘읍을 돌아보니 완전하게 되었고, 적에 대한 준비를 다하였네. 긴급한 공무로 급히 떠나니 우리 고을을 흥성케 할 이 짝이 없다네(邑觀就完 戎備殫竭 繄公遽歸 疇莫興旺)’라고 새겼다. 비의 뒷면에는 중앙에 큰 글씨로 ‘을해정월일립(乙亥正月日立)’이라 적어 1875년에 건립했음을 밝히고 있다.

[현황]

1985년 당시 양산군수였던 이두연이 장태수 영세불망비를 비롯하여 양산 지역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양산향교의 정문인 풍영루(風詠樓) 앞에 모아두었다. 이들은 대부분 옛날 관아 터(현 양산문화원)에 있던 것으로, 비석군은 왼쪽과 오른쪽 비석군으로 나뉜다. 장태수 영세불망비가 속한 오른쪽 비석군은 길이 15m 53㎝, 높이 50㎝의 철제 보호 난간으로 둘러져 있고, 폭은 5m 60㎝이다. 주변에는 유림회관을 비롯하여, 양산여자고등학교, 춘추공원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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