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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259
한자 鄭鎭永
영어음역 Jeong Jin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강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
성별
생년 1908년연표보기
몰년 1982년연표보기
본관 동래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진영(鄭鎭永)은 1916년 아버지 정원모(鄭原謨)와 어머니 박인수(朴因洙)의 아들로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서 태어났다. 1931년 정순임(丁順任)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으며, 1982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서 타계했다.

[활동사항]

정진영은 1931년 4월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한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고율 소작료 착취에 항거했다. 1932년 2월 20일 양산 사회단체회관에서 열린 양산농민조합 제3회 정기총회에서 소작권 영구 확립, 지세공과금(地稅公課金)의 지주 부담, 소작료 4할 납부 등을 결의하자 일본 경찰이 신영업(申榮業)을 비롯한 16명의 조합 간부들을 체포하였다.

이에 정진영김장호(金章浩)와 함께 체포된 조합 간부들을 구출할 것을 결의하고, 같은 해 3월 16일 양산경찰서에서 최학윤(崔學潤)·최해금(崔海金)·최달수(崔達守)·김태근(金泰根) 등 3백여 명의 조합원들과 조합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총격으로 해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농민조합 간부 윤복이(尹福伊)와 이만줄이 양산경찰서장이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후 양산협동조합 사무소로 피신한 조합원들이 다시 체포된 조합 간부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웠으나, 일본 경찰의 급습으로 정진영을 비롯한 170여 명의 조합원이 체포되면서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정진영은 1932년 10월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요죄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2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16 정원모의 姓을 鄭으로 바로잡음 국가보훈처 및 일제시대 판결문 확인 결과, 정진영의 성이 鄭으로 확임됨. 이에 아버지인 정원모의 성을 丁에서 鄭으로 바로잡음.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인 결과 국가보훈처 및 일제시대 梁山農民組合騷擾事件判決에는 정진영의 성이 정(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정진영의 아버지 성을 鄭으로 바로잡습니다. 2011.09.16
- 鄭이 아닌 丁입니다. 오타 수정하세요. 201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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