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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379
한자 朴文良
영어음역 Bak Munryang
이칭/별칭 백결선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백승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악인(樂人)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영해
대표관직 이작찬예부시랑|대령군

[정의]

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악인(樂人).

[개설]

박문량은 세칭 백결선생(百結先生)이라고 하는데, 방아타령을 지어 그 아내를 위로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야사(野史)와 『영해박씨대동보(寧海朴氏大同譜)』에 따르면 ‘박문량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아들이고, 이름이 효원(孝元)이며, 호는 백결(百結)이다.’라고 전한다.

또한 ‘신라 실성왕 13년에 출생하여 5세 때 누님에 의하여 성장하였다.’고도 전한다. 또 ‘자비왕 때 이작찬예부시랑(伊勺飡禮部侍郞)에서 대령군(大寧君)으로 책봉되었으나 나라가 어지러워 이를 사양하고 오직 놀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빈곤하게 살았다.’고 전한다.

[활동사항]

박문량, 즉 백결선생은 음악에 능하여 3대 악성으로 칭하여졌다. 백결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 백결선생전에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백결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그 내력을 알 수 없다. 낭산(狼山) 아래에 살았는데 집이 대단히 가난하여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 마치 비둘기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너덜너덜하였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릇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마음에 편치 않은 일들을 모두 거문고로 폈다.

어느 해 연말에 이웃 동네에서 방아에 곡식을 찧었는데 아내가 절구공이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방아질을 하는데 우리만이 곡식이 없으니 어떻게 해를 넘길까?’ 하였다. 선생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대저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라! 오는 것은 거절할 수 없고, 가는 것은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마음 상해하시오? 내 그대를 위하여 절구공이 소리를 지어서 위로해 주리다.’ 하였다. 이에 거문고를 뜯어 절구공이 소리를 내었다. 세상에 전하여져서 그 이름을 ‘방아타령[碓樂]’이라고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문량이 지은 거문고 곡조로「방아타령(碓樂)」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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