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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565
한자 趙通
영어음역 Jo Tong
이칭/별칭 역락(亦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종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성별
본관 옥과(玉果)
대표관직 대사성

[정의]

고려 후기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문신.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명환(名宦) 조에 “역락(亦樂)이 양주(지금의 양산)의 원으로 부임한다고 하여 아들 조진(趙眞)과 종들이 새벽부터 천수사 문에서 기다렸으나 역락은 친구에게 이끌려 점심때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조통(趙通)이 양산수령으로 부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활동사항]

경전과 역사, 백가(百家)에 뛰어나 여러 차례 명종의 부름을 받았다. 1197년(신종 즉위년) 금나라에 원외랑(員外郞)으로서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두 나라 간의 시비로 3년간 구금을 당하였으나 금나라 사람들이 조통의 재주를 아깝게 여겨 돌려보냈다. 또한 지서북면유수사(知西北面留守事)로 재임할 때 신의로써 백성을 다스려 명성이 높았다.

1199년(신종 2) 2월 경주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을 무마하였다. 1200년(신종 3) 5월 소부감(小府監)으로서 중랑장 이당적(李唐績)과 함께 진주(晉州)에 파견되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에게서 칭송을 받았다. 이후 조정으로 돌아와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와 교유하면서 학문을 더욱 넓혔으며 이인로가 『파한집(破閑集)』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기로회(耆老會)를 결성하여 평장사 최당, 백광신과 더불어 소요하니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지상선(地上仙)이라고 하였다. 조통오세재(吳世才), 이인로, 임춘(林椿),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李湛之) 등과 함께 강좌칠현으로 불렸다.

[저술 및 작품]

『동문선』 권8에 오언율시 「작약(芍藥)」이라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꽃이 주인 없다고 누가 이르는고, 용안이 날마다 친히 와 보아 주시거늘, 철따라 첫 여름을 맞으면서, 저 홀로 남은 봄을 치다꺼리하는 듯, 바람이 불어서 낮잠을 깨우는 양, 새벽 단장을 비가 씻어 새롭다. 궁녀들 혹시나 시샘하지 마소, 예쁠사 비슷하여도 필경 참은 아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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