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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485
한자 廣州安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율리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남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율리
집성촌 경남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율리
입향시기/연도 조선 중종
성씨시조 안방걸(安邦傑)
입향시조 안우(安宇)

[정의]

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의 세거 성씨.

[개설]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으로 광주군에 봉해진 안방걸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판사공 안몽득의 손자 안우(安宇)가 입향하여 형성된 봉사공파이다.

[연원]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大將軍)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광주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였으므로 그 공적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오르고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져 광주를 본관(本貫)으로 하게 되었다.

[입향경위]

광주안씨율리에 터를 잡게 된 것은 광주안씨 판사공파 양산문중의 파조 안몽득(安夢得德)의 손자 계산 안우(安宇)공이다. 안우는 조선 초기 함안(咸安)에서 출생하여 1524년(중중 19)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개성 및 밀양, 선산, 평산 등지의 부사를 역임하고 재임 시에는 청백리로 청빈하였다. 이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에 거주지를 옮겨왔다.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기는 약 50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현황]

광주안씨는 현재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율리에 일부 살고 있고 그 외에 물금, 양산시내, 웅상지역 등 전 지역에 흩어져 있다.

[관련유적]

율리에는 광주안씨 사당인 소계서원이 있다. 이곳에는 광주안씨의 3명의 현인과 5명의 충신 위패와 비를 안치하고 있다. 조선 태종 때 유학자인 안몽득(安夢得)과 후손인 안우(安宇), 안주(安宙), 안택(安宅) 3형제와 임진왜란 공신 안근(安瑾), 안수(安琇), 안시명(安諟命), 안이명(安以命), 안신명(安信命)을 가리킨다. 안우의 손자 안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들과 집의 노비를 모아 군량과 병기를 정비하여 이웃사람들과 일어나 의병을 모집하니 수백 명이 되었다. 안근은 양산을 지키기 위하여 낙동강 하구를 거슬러 오르는 왜적을 구포와 금정산에서 맞아 수십 명을 베었고, 그의 종제 안수(安琇)는 동래 출신 김정서(金廷瑞)와 함께 동래전투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이 종료되고 안근과 아들 안시명은 선무원종 공신 3등에 서훈되고 셋째아들 안이명은 선무원종 공신 1등에 서훈되었다. 이후 광주 안씨들은 율리에 대대로 거주하면서 마을 한가운데에 소계사를 세워 그들 가문의 정신을 올곧게 하는 등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율리정사(栗里精舍)가 있는데 율리정사는 1672년(현종 13)에 죽산 안희청이 진사 안효필의 생가에서 학문을 익히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삼강행실도』, 『격몽요결』 등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현대에 재건했다. 이곳은 현재 율리안종석씨의 저택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3.23 [입향경위] 수정 [입향경위] 이후 양산군 북면 소토리에 거주지를 옮겨왔다. -> 이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에 거주지를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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