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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큰길인 영남대로의 길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A010204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기혁

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통로가 발달되지는 않았으나 교통로들 중에 사람들의 이동이 많고, 중요한 길들인 ‘대로’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7대로’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영남에서 한양(서울)으로 가기 위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바로 영남대로이다.

영남대로는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길로 오늘날의 부산~양산~삼랑진~상주~문경~충주를 연결한다. 또한 영남대로는 단순히 교통로로서의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교통로의 중심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소백산맥을 경계로 나누어지는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은 자연환경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자원 분포 상으로도 다른 점이 많고 문화·역사적 배경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지역 간 교통로 발달에 어려움이 많았다.

영남대로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생명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영남대로 중 용당은 삼한시대부터 황산강(낙동강) 수로를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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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의 용당

물금에는 지금 물금취수장이 있는데 이곳은 당시 16개 역을 관장하던 황산찰방역(黃山察訪驛)이 있던 자리이다. 이후 용화사·임경대·토교마을·뻘 등을 지나면 원동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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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 취수장

원동을 벗어나 철길 굴다리를 건너면 푸른 초원처럼 드넓은 낙동강이 나타난다. 낙동강 한편에 인적이 드문 곳에 사당이 하나 있다. 이것이 바로 용신제를 모시는 사당인 가야진사(伽倻津祠)이다. 가야진사가 있는 낙동강 변에는 나루가 있어 뱃길도 이용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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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굴다리

가야진사를 뒤로 하고 낙동강 변을 따라 놓인 영남대로를 걸으면 오늘날의 상주에 도착한다. 상주를 지나면 날아가는 새도 쉬어간다는 높고 험준한 문경새재가 가는 이로 하여금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힘겹게 문경새재를 넘으면 영남대로의 종착지, 한강 유역의 출발지이며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충주에 도착하게 된다.

▶ 양산에서 사라진 나그네들의 쉼터, 밀양 작원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 세상을 보고 느끼면서 경험을 쌓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오늘날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게 된 까닭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서 자연을 느낄 수 있으며, 자기개발을 위함이다.

교통시설이나 숙박시설의 발달은 여행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옛날은 어땠을까? 교통시설이나 숙박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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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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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원관

과거의 숙박시설을 생각하면 먼저 주막이 떠오른다. 마을 근처의 작원관은 바로 이런 주막이었다. 작원관은 관리들이 쉬어가기도 하는 곳이었으며, 낙동강을 건너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검문소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작원관은 예전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 낙동강 변에 위치한 작원관낙동강을 굽어보는 형태와 소나무 언덕에 좁은 다리 길[잔도(棧道)]이 매우 위험하고, 또 계곡 밑은 수심이 깊고 푸르렀으며 돌벼랑 사닥다리에 지나는 사람이 발을 모아 겨우 통과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땅이 매우 험난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또한 밀양의 관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로 영남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항상 거주하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작원관 주위에는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모여 살게 되어 생겨난 마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일제에 의해 철로가 개설된 이후 옛길의 흔적은 사라졌고 현재 양산이 아닌 밀양에 복원되어 그 옛 모습을 다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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