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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서사에 얽힌 김해김씨의 정착 내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B010201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지산마을 취서사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향토사연구회

지산마을의 광장 입구에 취서사(鷲棲祠)가 있다. 가락국의 왕자 신라 각간 김무력(金武力)과 신라 삽량주 도독 김서현(金舒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이 두 분은 그 유명한 김유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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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서사

취서사는 김해김씨 종친회에서 재실건립을 결의한 후에 1986년 10월 12일 착공하여 그해 12월 20일에 재실(취산재)만 완공하여 준공하였다가 1992년 양산군 종친회에서 사우 건립을 계획하여 1993년 사당(취서사)으로 격을 높여 유림과 후손들이 제사를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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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산재

김서현의 영정은 양산 북정리의 성황사에서, 김무력의 영정은 김해김씨 종친회에서 옮겨와 모시고 있다. 한적한 지산마을김해김씨의 중요인물을 모신 사당이 세워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산리 영축산 아래에 속칭 ‘장군등’이 있는데, 확실한 고증은 없지만 이곳이 가야 김무력 장군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취서사 사당 문 옆에 세워져 있는 김서현의 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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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의 비

김무력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둘째 아들로 신라에 귀화하였다. 김무력은 이후 신라의 지방관인 군주로, 관산성 싸움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케 하는 공을 세워 관직이 대각간에 이르렀고, 그의 아들 김서현도 진천태수로 대야성(지금의 합천) 전투에서 백제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김서현은 이 공으로 진천태수에서 대양주도독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양주는 지금의 양산으로 황산강(낙동강)의 건너에 가락국이 인접한 지역이므로 멸망한 조국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김서현은 아버지인 김무력의 무덤을 영취산 아래에 안장하였을 것이며, 자신의 무덤도 북정리 고분군이 있는 현 북부동에 있는 곳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양산지역에는 김해김씨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무력김서현과 관련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김서현은 금관가야가 멸망하고 신라에 들어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야반도주를 하는 로맨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김서현이 대양주도독으로 부임하자 사라져간 가야에 대한 진한 향수를 이길 수 없어 아버지 김무력의 무덤을 이곳 지산마을에 만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연유가 되어 김해김씨 문중에서는 양 인물을 제사하는 사당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전하는 설에 의하면 장군등에 있는 김무력의 묘에 사람들이 손을 대면 천둥과 번개와 함께 하늘에서 황토물이 쏟아진다고 하며, 장군묘에 벌초를 하면 소원성취한다고 하여 한 때 어느새 누가 와서 몰래 벌초를 하곤 하였다고 한다.

취서사에서는 매년 김서현 장군의 서제가 열린다. 서제는 김해김씨 종친회에서 추진하는 행사로 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열리는데, 춘계서제는 양산향교에서 주최를 하여 유림들이 참석하고 추계서제는 김해김씨 종친회에서 주최를 해서 전국에서 300여명의 문중 사람들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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