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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에 스며있는 통도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B020101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봉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사찰로 더 유명한 통도사는 우리나라에서 불법을 전하는 중심이 되어 왔다. 통도사의 의미와 규모를 굳이 정치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 사찰인 셈이다. 영축산 자락의 남쪽 기슭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들이 골짜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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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지산리영축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여러 능선 중 산박등(큰 산 바깥의 등) 능선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이 능선을 사이에 두고 통도사 소유의 장밭들과 경계한다. 마을과 통도사를 잇는 조그만 도로는 지산리통도사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지산마을이 위치한 곳은 통도사의 산문과 대웅전에서 한참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사찰 아래에 형성된 마을인 ‘사하촌’이 아니라 ‘사상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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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촌

지산리는 행정적으로 지산, 평산, 서리로 구성된다. 이들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형태는 삼각형의 모습이다. 어디 한군데로 기울어진 것 없이 세 마을이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도란도란 정겹다. 이들 마을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모른다. 아마 통도사가 창건되면서부터 마을도 같이 생겨났을 것이다.

어찌 보면 속세일 수밖에 없는 마을이 절과 가까이 붙어 함께 생겨났다는 것이 의아해 보일지 모르나, 스님들이 추구하는 성스러움(聖)의 세계도 속세와 대비되어야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과 속세는 비교 대상이자 동지인지도 모른다.

통도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마을이 지금의 크기로 형성된 것은 50여 년 전부터라고 주민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통도사의 명성과 함께 마을로 이사를 온 사람도, 또 관광 차 지나쳐간 사람들도 많았다. 통도사를 방문하는 사람들과 등산객들이 많아지면서 마을에는 식당과 민박집들도 하나 둘씩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지산마을을 겉으로 보고 지나쳐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등산객들이 다니고 식당과 민박집들이 들어선 마을의 모습이 다른 관광촌과 다를 바가 없는 마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걸음 다가서면 마을 사람들에게 통도사는 단순한 생계의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다. 지산리의 마을 사람들에게 통도사는 일상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생활이요, 의지하며 살아온 친구요, 또는 티격태격하며 함께 지내온 친구요, 역사이다. 마음을 조금만 열고 마을에 다가가 보면 지산마을의 이러한 이야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생활 속의 스님들과 불교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가 자리잡고 있는 지산리에는 교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촌에는 마을 당 한두 개 정도 교회가 들어와 있지만 이곳에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 거의 전부가 통도사를 다니면서 불심(佛心)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월 초파일(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지산, 평산, 서리 마을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절로 향한다. 마을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쌀밥이 너무 귀한 시절이어서 쌀밥을 먹기 위해 스님이 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이 되는 길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절에 들어가면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4시에 아침 예불을 올리는 등 힘든 과정을 견뎌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몇 달 뒤에 다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산리의 마을 주민들은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겪고 스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산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집에는 스님들의 글귀나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 중에는 무척 유명한 스님들의 글귀들도 적지 않다. 친척 분 중에 스님이 계신 한 주민의 집에는 우리나라 불교 종정을 하셨던 승려 월하의 글씨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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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나 그림들

절과 가까운 곳에서 역사를 함께한 지산리이기에 스님에 대한 일화도 마을 곳곳에서 전해진다. 예전에 통도사에 승려 경봉이 있었다. 경봉이 있을 때에 비가 한동안 오지 않아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승려 경봉이 죽고 나서 다비(불교에서의 화장)를 하고 나니, 하늘에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은 그때 다들 모를 심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마을 주민들에게 통도사가 얼마나 많은 종교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통도사는 마을에 있어서 종교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통도사 사찰 내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본래 그 자리는 학교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이렇게 지산리의 주민들에게 통도사라는 절은 단순히 신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배움의 장소, 생활의 장소로서 마을 사람들의 삶에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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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박물관

▶ 삶의 터전으로서의 사찰

서리, 지산, 평산 3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지산리는 그렇게 넓은 농토를 가진 지역은 아니다. 지산리통도사와 많은 인연을 가지면서 통도사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통도사를 배경으로 먹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 사찰 아래 형성된 마을인 여러 사하촌들이 그러하듯 지산리도 마찬가지이다.

지산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은 논농사를 일구고, 일부 콩을 중심으로 밭농사를 경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넓은 지역을 농사짓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이마저도 자신의 땅도 아닌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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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농사와 밭농사

이곳 지산리의 땅 대부분은 통도사의 소유이고, 개인 소유의 땅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통도사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다. 게다가 이곳 일부 사람들은 농지뿐만 아니라 집마저도 그 땅의 주인은 통도사이고 집의 소유권만 가진 채 생활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지산의 마을 사람들은 항상 통도사와 관계하여, 때로는 갈등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지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통도사와 함께 살아온 삶의 모습은 농사가 중시되었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지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함께하고 있다. 과거에 지산마을 사람들은 집부터 농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통도사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산마을 사람들도 점차 독립적인 생활 모습을 가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통도사 땅을 빌려 절에 경작을 하는 분들이 많았으나, 해방을 전후로 하여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동네 노인들의 경우에는 산나물을 캐서 관광객이나 등산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시기 시작하였고 젊은 사람들은 더욱더 독립적으로 통도사에서 벗어나 외지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통도사와는 어떻게든 그 끈을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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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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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장사

노인들은 통도사에서 조금은 벗어나 빌린 농지가 아닌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통도사가 문화재법으로 들어오면서 이곳 주민들의 주 생업이 되어버린 장사에 장애물들이 많다고 한다. 통도사 측에서 제제를 가하게 되면, 통도사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곳 주민들의 타격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통도사라는 사찰이 마을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직 마을이 통도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속세의 때를 덜 받으며 살아왔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찰의 터울 안에서 사찰을 터전으로 하고 살아온 사람들인 만큼 이들이 앞으로도 이러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터전으로 하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 문화재의 보호와 주민의 삶

이곳 마을 사람들은 통도사와 오랜 세월을 함께 숨 쉬며 살아왔다. 그 세월 동안 마을사람들은 통도사를 통해 도움을 받는 측면도 있지만, 그로 인해 불편한 점도 많이 있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통도사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개발을 하려고 하면 많은 제제가 따른다는 것이다.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고도제한이 있어서 2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통도사 옆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통도환타지아라는 놀이공원이 있다. 이 역시 쉽게 건설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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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환타지아

통도환타지아를 건설할 때 통도사의 승려들은 매우 반발하였다. 그러한 갈등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이제는 고도제한이 없어져 통도사 일대 지역에 아파트도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직은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고 하면 통도사와의 마찰을 피할 수가 없다. 결국 건물 높이를 낮추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다고 한다.

건물을 짓는 업주들뿐만 아니라 지산리에 포함된 지산, 평산, 서리 세 마을의 주민들도 통도사와의 마찰을 피할 수가 없다. 지산, 평산, 서리 세 마을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집을 하나 지으려고 하면 언제나 통도사에 가서 도장을 받아와야 한다.

매번 이러한 수고로움과 개발의 어려움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통도사에 찾아가 도립공원에도 집을 짓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리하여 통도사에서도 산이 아닌 농지 같은 곳에는 집을 짓게 허가를 좀 더 수월하게 내주어 집을 짓는 것이 좀 더 쉽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통도사와 마찰을 겪었던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2007년에는 지산, 평산, 서리의 세 마을이 환경보존지역으로 묶여 또 한 번 개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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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존지역

이에 마을주민들은 취락지역이 환경보존지역으로 묶여버리면 살아가기가 힘들다며 통도사와 시청 등에 찾아가 풀어줄 것을 요청을 하여 전체 지역에서 60% 정도를 환경보존지역에서 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풀었던 지역 중 20% 정도를 더 환경보존지역으로 묶어 개발을 제한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통도사는 마을에 있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통도사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통도사라는 절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부에서도 통도사에 있어서는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지산리의 마을 사람들은 통도사를 배경으로 하여 장사도 하고 종교적으로 의지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통도사에 의해 누구보다도 불편을 겪고 사는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8.24 공휴일 명칭 변경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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