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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양산, 몸은 울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D010105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기혁

우리나라의 특징은 각기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방언, 즉 사투리이다. 지역마다 문화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지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사람의 이동이나, 물자,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명동마을도 지형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명동마을은 행정구역상 양산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양산시가 아닌 울산, 부산 생활권이다. 그 이유는 마을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명동마을은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에 속했고, 신라시대 들어와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 초기에 잠시 흥려부(興麗府)라고 불리었다가 다시 울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양산군이 아니라 울산부의 서쪽 면에 속하였다. 그 후 이름을 웅촌면(熊村面)으로 명명했다가 한말(1896) 웅하면(熊下面)과 웅상면(熊上面)을 분할할 때에 양산군(梁山郡) 웅상면으로 편입되었다. 1917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명곡마을(명동, 명계 또는 홈실이라고 불렀다가 명곡으로 명명함), 외홈마을, 소정마을, 남천동을 병합하여 명곡리라 하였다. 이후 1986년에 외홈마을이 분동되었다.

지형적으로는 양산시와 예전 웅상읍 사이에 천성산이 가로막고 있어, 마을이 양산시와 동떨어져 있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사람이나 물자의 교류가 힘들었다. 또한 마을이 행정구역상으로 양산시에 속해 있어 마을의 행정업무를 처리하려고 하면 천성산을 넘어 양산시청까지 가야 했다. 하지만 2007년 4월에 웅상출장소가 생겨나고 행정구역이 웅상읍에서 4개동으로 분할되면서 각 동에 동사무소가 생겨남에 따라 행정적인 절차에 대한 문제점은 해소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시간을 들여 양산까지 가지 않아도 되어, 이곳 주민들의 생활권은 양산과 거의 분리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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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명동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회야강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북향으로 흐르는 강 중 하나이다. 회야강이 마을을 지나 울산으로 흘러 들어가 울산 사람들과 같은 물을 먹는 다는 생각에 생활권이 울산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역사적, 지형적인 이유로 양산으로 가는 것보다 울산, 부산으로 가는 것이 더 가까워 이 지역 대다수의 사람들은 울산, 부산 생활권에 속할 수밖에 없고 명동마을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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