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가뭄 극복에 도움을 준 시명골 저수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D010108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혁

명동의 푸르고 넓은 논에는 한창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도시화가 되어 땅값이 올라도 이곳에서 농사가 계속 될 수 있는 이유는 관개시설이 잘 되어서 농사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동이 처음부터 관개 시설이 완벽하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관개 시설이 되기 전에는 이곳에서도 물이 없어 가뭄으로 인해 고생이 매우 많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명곡마을 이자무 이장님을 만나 명동이 가뭄을 극복한 역사를 들어보았다.

“옛날에는 가뭄 때문에 고생 억수로 했습니더. 논에 물 댈 적에도 한 시간, 두 시간씩 시간을 재서 물을 대주고 그래 했습니더. 한 마지기에 한 시간씩, 다섯 마지기 같으면 다섯 시간 이런 식으로 나중에는 하다가 삼십분씩 이십분씩 그래 시간 나눠가메 했다 아인교. 그렇게 안하면 물이 골고루 분배가 안되가꼬 한 집으로 집중될 수 있기 때문에, 물이 가는 사람한테만 가고 안가는 사람한테는 안갈 수도 있었기 때문인기라. 옛날에 구획정리하기 전에는 그랬습니더. 구획정리하는 경지가 전부다 들판이니까 물이 엄청스레 많이 들었습니더. 구획정리를 하게 된 거는 지금 덕계에 가면 봉우아파트, 태원아파트가 있거든예. 저 아파트를 허가를 내서 짓기는 지었는데 물이 없드라 안 카나. 물 생각도 안하고 무턱대고 지은거지예. 물이 없으니까 생활이 안 돼가 그래가 시명골 저수지에 있는 물을 태원아파트·봉우아파트 식수로 했다아입니꺼. 그렇게 물을 식수로 주고 나니까 농사를 지을 물이 없는기라요. 그래가 이거를 우째했냐믄 구획정리 한 거를 풀어서 다시 정하게 해줄테니까, 시명골 저수지 물을 아파트에 좀 주라 이렇게 마을 사람들하고 합의를 본 겁니더. 그래가 그 바람에 우리 마을은 구획정리가 풀렸다아입니꺼.”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구획정리

이와 같이 우여곡절을 거친 덕분에 농사의 물대기가 아주 수월해졌다고 한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농사는 저수지 물로 짓습니더. 마을에 저수지가 시명저수지, 남락골 저수지, 소맥골 저수지 이렇게 세 곳이 있습니더. 이제는 마 우리 마을사람들은 암만 가물어도 물 걱정은 없습니더. 옛날에 구획정리하기 전에는 저수지가 있어도 여기 전체가 다 들판이었니까 물이 귀했지예. 그런데 구획정리가 되니까 그 논이 많이 줄어들고 해가꼬 물이 남아돕니더. 모내기철에 모내기해도 그냥 뭐 다른 마을에는 큰 비오는 날하고, 날짜까지 정해가꼬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습니더. 내가 심고 싶으면 언제든지 물이 있으니까 그냥 심는다 아인교. 우리 마을이 그때도 부유한 마을이었습니더. 농토가 많다보니까 그때는 저수지 세 군데에다가 한 여섯 군데 정도 보가 있었습니더. 그래도 그때는 물이 부족했습니더.”고 하시며 이장님은 가뭄에 시달리던 명동마을이 구획정리를 계기로 들판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줄어들어 물이 남아 물 걱정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이자무, 명동마을 이장, 62세)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시명 저수지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남락골 저수지

마을에 저수지가 3개나 되고 보가 6개 정도가 될 정도로 물이 풍족했던 명동. 구획정리로 단순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줄어든 것이 아닌 효과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어 마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명동의 논에는 벼가 보란 듯이 힘을 주고 고개를 들고, 푸른빛을 뽐내고 있는가보다.

▶ 시명저수지를 만들기까지: 고난의 극복

시명저수지(時鳴貯水池)는 명곡마을 동편에 우뚝 솟은 대운산의 남서쪽으로 내려 뻗은 함박산(含博山)에서 시작하여 흐르는 계곡을 막아서 만든 저수지이다. 저수지 앞 둑의 길이는 약 70여m이고 저수량은 195,000톤으로 굉장히 규모가 큰 저수지이다. 뒷들, 새엣들, 덕골, 난숫들 등의 관개용 농업용수로 먼 옛날부터 이용되어 왔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대운산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함박산(含博山)

시명저수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이야기를 보면 지금의 저수지가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경, 수차례에 걸쳐 막았으나 저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번번이 홍수가 일어나 저수지 완성에 실패하여 오다가, 해방 후 1950년경 그 해 농사의 관개가 시급하다하여 저수지의 물을 가두었다. 저수지에 물은 가득차고 바다를 이루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들뜨고 다들 축제를 연 마냥 함께 즐거워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즐거워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명곡에 터를 잡고 삼한시대로부터 수천 년 동안 시명골짜기의 개울물에 홈(椧)에서 홈을 이우고, 다시 이우고, 수없이 이어서 명곡들판을 적시며 농사를 지어온 홈골 사람들. 이곳 명곡에서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고생이 그들의 가슴 한구석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성된 저수지를 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환희는 얼마나 컸을까. 홈은 마을 사람들의 핏줄이며 개울물은 피(血)와 같았다. 그래서 생명과도 같이 중히 여겨온 홈골 물이다.

기쁨도 잠시뿐, 그해 여름 긴 장마에 폭우가 내려 시명골에 일어난 홍수는 저수지의 둑을 밀어제치고 삽시간에 마을을 삼켰다. 명곡 사람들은 실망과 좌절로 하늘을 원망하고 실의에 잠겼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의 순간일 뿐, 그대로 그런 결과를 방치하고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실패를 새로운 도전의 발판을 삼아 다시 일어섰다. 관개시설을 위한 건의와 진정으로 1960년경 정부의 지원과 저수지를 짓기 위한 농민들의 의지로 끊어진 제방을 다시 이우고 다시 완성하게 되었다.

1995년, 웅상읍에는 도시기반 조성이 잘 안 된 상태에서 많은 아파트 건립허가가 난발되어 약 5천여 세대가 건립되었으나 식수와 생활용수의 상수원이 없어 응급조치로 지하수를 개발하여 살았으나, 한정된 지하수는 곧 고갈되어 주민들의 큰 소동이 일어났다. 여러 방안을 모색하다가 시명골 저수지의 물을 식수로 이용해야겠다고 결정 내려 저수지 일대의 토지용도를 주거지역으로 변경해 줄 것을 당국에 요청하기로 하였다.

건설부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였으나 당시 그 지역은 도시계획상 전체가 생산녹지 지역이며, 전 농지가 절대농지에 속한 관계로 농림수산부에서는 웅상읍 식수 공급을 위한 평산리 장흥에 정수장이 완공되는 시점까지 시명저수지 물을 아파트 식수로 공급하고 그 동안 저수지 일대는 휴경을 하자고 하였다. 물론 휴경 기간 동안의 보상은 수확량 전체로 정하고, 휴경으로 인한 농지훼손은 경지정리를 해주기로 하였으나 주민들이 반발하여 수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이 일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와 중앙 각 부처를 수 없이 드나들며 물심양면의 헌신으로 노력한 결과 저수지 일대의 용도를 주거지역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한편, 농림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절대농지(어떠한 경우에도 농지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정하여 고시한 땅) 면적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자 이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경상남도 전체 절대 농지 면적을 감소시키지 않고 유지하고자 서부경남 모지역의 상대 농지(경우에 따라 농지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한 땅)를 경지 정리하여 절대농지로 전환하고 저수지 지역의 용도변경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명곡저수지를 상수원으로 한 웅상 정수장이 완성되어 아파트로 물을 공급하고, 이와 함께 웅상 비상식수 공급을 위한 시명저수지 확장공사(사업기간 1996.12.24~1998.10.23)를 소요 예산 20억 380만원으로 확장하여 과거 저수량 195,000톤에서 300,000톤으로 늘렸다.

이와 같이 시명저수지는 수천 년 동안 명곡마을의 농사를 지어오는 관개용수로 사용되어 오면서 명곡 사람들의 부(富)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어 왔고 1980년경에는 웅상의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수천 세대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되고 1998년에는 저수지를 확장하여 저수량을 300,00톤 늘려서 농경의 관개용과 웅상읍민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몽리구역은 절대농지에서 주거지역으로 변하여 명곡마을에 부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