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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의 이모저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D010301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명환

마을의 내면의 알기 위해서는 그 마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마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마을의 역사가 된다. 명동마을은 60세대 정도의 식구들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 일까? “우리 마을에는 박씨가 30세대 정도 됩니더. 옛날에는 박씨가 더 많았는데 나가는 사람도 있고 해서 세대가 많이 줄었습니더. 그래도 아직까지는 박씨가 많은 편입니더. 박씨 외에 학성이씨도 많습니더.”(박장식, 명동마을 노인회장,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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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가 많은 마을

우리나라 농촌 마을의 상당수는 같은 성씨끼리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양산도 집성촌이 매우 많다. 이곳 명동에도 박씨와 이씨가 마을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집성촌은 공동체의식이 강하다. 하지만 자신의 집단이 아닌 외부 집단들에게는 그만큼 경계심도 강하다. 하지만 명동마을은 그런 배타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해마다 웅상농청장원놀이를 하면서 성씨집단끼리의 뭉침에서 벗어나 다 같이 놀이를 즐기는 식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만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 마을은 거의 모두 대대로 있었던 사람이고 외지 사람은 거의 없습니더. 예전에 다 같이 농사짓고 살던 순 농민들 아인교. 지금은 마을 주민 중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반 정도밖에 안 됩니더. 젊은 사람도 없고 주민들 중에 나이가 적은 사람이 50살 정돕니더.”(박장식, 명동마을 노인회장,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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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농청장원놀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도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마을에서는 일어난다. 50대는 “내가 이 마을에서 제일 어립니더.”라는 말을 하고 노인회관에서는 “밥은 70정도 된 젊은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더.”라는 말이 나온다. 마을은 제2의 인생을 느끼게 해주는 곳인 것 같다. 하지만 마을이 유지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마을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마을에 학생들은 얼마나 있는 걸까? “여기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크다보니까 그래도 학생들이 많은 편에 속합니더. 그런데 초등학생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더. 우리 마을은 아파트가 없으니까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꾸 줄어듭니더. 아파트 있는 그런데는 새 초등학교도 많이 늘어나는데 여기는 새 초등학교는 없고 오래된 초등학교가 좀 있습니더. 100년이 다 되어 가니까 오래되긴 했지예.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를 막 지어가 아파트가 빽빽하이 들어선 그런 곳에는 초등학교가 많이 생겼는데, 옛날에는 초등학교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거든예. 옛날에 요 근방에는 부산서 올라오다 보면 영천초등학교,, 웅상초등학교, 검단초등학교 세 개 밖에 없었습니더. 검단초등학교도 구십 몇 년 됐을 겁니더. 영천초등학교가 제일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검단초등학교가 생기고 셋 중에는 마지막에 웅상이 생기고 그랬거든예. 영천초등학교웅상초등학교보다 3년 빨리 생긴 걸로 압니더. 3학년 다닐 때 여기 웅상초등학교가 1회 졸업을 했으니까 3년 빠를 겁니더.”(이자무, 명동마을 이장, 6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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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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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초등학교

옛 마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계신 이장님은 옛날을 회상하신다. 이장님은 어떻게 이 마을에 오게 되셨을까? “여기는 학성이씨가 많은 마을입니더. 나는 이씨긴 한데 경주이씹니더. 학성이씨는 아입니더. 윗대 할아버지가 이리로 와가지고 정착이 된기라예. 그렇게 들어온 지 한 200년이 다 돼 갑니더.”(이자무, 명동마을 이장, 62세)

마을의 처음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사람을 부르고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또 다시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명동마을에는 이장님처럼 온 분도 계시고 결혼을 통해 온 할머니들도 많이 계신다. “나는 결혼하고 마을에 와서 43년 째 마을에 살고 있습니더. 우리 남편이 학성이씨거든예. 마을에는 학성이씨뿐만 아니라 흥려박씨도 있고 여러 각성받이들이 살고 있습니더. 나는 시집을 학성 이가로 와서 이래 여기 살게 됐다아입니꺼.”(우외분, 명동마을 농민, 65세)

여러 사연을 안고 온 마을 사람들은 각자 생계를 꾸리며 살아간다. 예전에는 모두 농사꾼이었지만 지금은 마을 구획정리로 주택단지도 들어오면서 농사지을 땅도 많이 사라져버렸다. 그 옛날 농사꾼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회사 다니는 사람도 있고 자기 농사짓는 사람도 있습니더. 농사도 농사지만 요새는 거의 다 딴 일해서 돈 벌이러 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더.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니까 아파트 같은 데 증축하는데 가고 그래 합니더. 그런데는 일이 힘들잖아예. 그래도 먹고 살라고 하니까 안 나가면 되나, 나가야 합니더. 여기는 공장 들어올 데가 없어서 나가서 일합니더.”(우외분, 명동마을 농민, 65세)

모두 다 농사일하던 농사꾼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조금씩 변했지만 살아가는 터전만큼은 여전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세월이 지나 어떤 형태로 마을이 변해가더라도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을은 영원히 마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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