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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놀이의 정열이 담긴 2.7그램의 탁구공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D030204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원대

김종순(55) 씨는 농청장원놀이가 1998년 제30회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할 때 부녀회장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감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내 누구한테 맞아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을 기다.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드라.(김종순, 명동마을 주민, 55세. 2008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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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순씨

그녀는 명동에서 6년 째 웅상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도 각고의 노력 끝에 늦은 나이에 생활체육지도자자격을 취득한 순수 노력파이다. 김 관장이 운영하는 웅상탁구교실은 7번 국도 서창 삼거리 부근에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이장님의 배려로 마을부녀회관을 빌려 1년 정도 운영하다가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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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탁구교실

▶ 13살에 맺은 탁구와의 인연

탁구는 좁은 공간에서 치는 테니스로 table tennis라고 한다. 좁은 공간에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다보니 정확한 룰과 판정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폭 1.525m, 길이 2.74m의 직사각형의 테이블에서 지름 40㎜, 무게 2.7g의 탁구공으로 현란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이다.

과거 수차례나 세계정상에 도전하면서, 승리의 문턱 일보 직전에서 눈물을 머금고 물러서곤 했던 우리나라 탁구 대표팀은 1956년 도쿄 세계대회에 출전한 이래 17년만인 1973년,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체 우승을 따내며 구기 종목 사상 첫 세계제패의 국민적 염원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당시 우승의 주역인 이에리사·정현숙·박미라·김순옥 선수는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고, 그 후 전국적으로 탁구 붐이 일기도 했다.

최근 들어 우리 주위에는 탁구장 내지는 탁구교실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으며, 동호회나 클럽들이 생겨 교류나 대회를 통해 그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우리 고장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김 관장이 맨 처음 탁구와의 인연은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중학교 1학년 때로 친구와 국화빵을 함께 먹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친구가 탁구를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따라가서 배웠어예. 지금 생각하니 그 친구가 정식으로 배웠던 것 같네예. 레슨하고 교육받고 하는 과정이 그 때 그 과정이더라고요. 참 잘 배웠다.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처음 라켓을 잡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 후에도 취미로 계속 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탁구에 몰입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쯤인 30대 후반부터이다. “한 마디로 너무 좋아요. 옛날에는 애기 낳고 산후조리 못해서 몸이 쑤시고 신경통으로 고생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없어지고 비 온다고 해도 쑤시는 게 없어요. 그래서 저는 헬스도 좋고 모든 운동이 다 좋지만 우리 여성들에게는 탁구가 좋다고 생각합니더. 실내에서 하면서 무겁지도 않은 라켓 들고 전신운동을 한다는 게 좋거든예.”라며 첫 마디부터 탁구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 늦깎이 지도자, 무료 강습도 자처하는 탁구에 대한 정열

김종순 관장은 2005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입학하여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지금은 휴학 중이다. 넉넉잡아 60세가 될 때까지는 대학을 졸업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내친 김에 대학원 진학까지도 생각 중이다. “애들 공부는 거의 다 했으니까 이젠 내 차례라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싶은 마음입니더. 그 쪽으로 꼭 가고 싶습니더.”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힌다.

그가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탁구 때문인 것 같단다. 탁구를 좋아해서 42세에 처음으로 탁구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탁구대가 2개뿐인 곳에서 연습하다가 48개의 탁구대가 놓인 사직체육관에서 경기를 펼치게 되었는데 주눅이 든 탓인지 게임이 안 될 정도로 박살나고 왔단다. “다음에 꼭 우승하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 후, 하루에 6시간씩 꼬박 3개월을 맹훈련 한 끝에 결국 우승을 이루고 말았다.

“늦은 나이에 뭔가 하려고 하니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성취감도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자 1부라면 대단한 거거든요. 그 때부터 대회에 나가면 그냥은 안 돌아오고 상 하나씩은 꼭 안고 왔지예.” 실제 탁구장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상장과 트로피가 이를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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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과 트로피

김 관장은 그런 성적에 안주하지 않았다. “탁구장을 운영하면서 그냥 막연하게 자리만 지키는 것보다 지도를 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고 사람들 보는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으로 자격증을 꼭 따야겠다고 마음먹고 신라대학교 생활체육지도자 연수 과정을 이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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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지도자 연수 과정을 이수

“지금 주부교실 6년째 레슨하고 있거든요. 그 이전에도 자격증은 없었지만 제가 나름대로 했는데 실기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예요. 수십 년 동안 탁구를 쳤기 때문에 구력이라는 게 있어서 그렇게 힘든 거는 아니었는데 8과목의 이론이 힘들었어요. 또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해야 하니 부담되기도 했고예. 결국 한 과목 성적이 좋지 않아서 첫 해 떨어지고 다음해 재도전해서 자격증을 땄지예. 2년 걸린 셈이지예. 시간 투자 안하면 답이 없거든요. 시간을 투자해야 답이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주부들에게도 늘 이야기 합니더.”라는 말을 들으며 그의 도전 정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김종순 관장이 지금의 자리에서 탁구교실을 열게 된 과정이 재미있다. “지금 이곳이 우리 건물이거든요. 우리 땅이예요. 제가 웅상체육회 탁구분과위원장을 맡으면서 대회를 한 번 치러야 하는데 장소가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사실 그 이전에도 웅상에서 대회를 치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처음 탁구교실 열 때 장소가 없어서 마을회관 빌려서 1년 정도 운영 중이었는데, 반강제적으로 남편을 설득해서 이 건물을 대회만 치르고 비켜주겠다고 해놓고 그냥 눌러 앉아 지금까지 6년째 버티고 있어요. 당시 남편은 반대했지예. ‘선수 출신도 웅상에서 탁구장을 하면서 문을 닫고 가는데 당신이 무슨 특별한 존재라고 탁구장을 운영하려 하느냐’라고 했지요. 하지만 저는 목적이 하나 있었거든요.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지역에서는 여성이 운동한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지예. 여기 사는 사람들은 고학력자 아니고는 취미로 탁구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겁니더.” 그래서 여성을 탁구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해보자고 나름대로 계획을 꾸미게 되었단다.

“운동이 너무 좋거든요. 순발력에서부터 엄청나거든요. 제가 55살이지만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운동이 좋다는 것을 느끼면서 시작을 했지예.”라며 다시 탁구 예찬을 한다.

6년 동안 탁구장을 운영하면서 김 관장의 생각과 엄청난 차이가 있고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움도 많지만 그래도 무료 레슨을 하며 계속 밀고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탁구의 활성화를 위해 ‘대운탁구동호회’의 고문을 맡아 지원을 하고 있으며, ‘주부탁구교실’을 열어 매주 월·수·금요일,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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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탁구동호회

“사실 수입 생각하면 하루라도 일찍 문을 닫고 싶지만 제가 탁구를 좋아하고 제가 할 일이 주부클럽 창단하는 것이 꿈이거든요. 6월 20일 경에 ‘서창주부탁구클럽’ 창단식을 할 거예요.”라며 그의 꿈 하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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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주부탁구클럽

김 관장은 학생들에게도 무료로 강습을 하고 있다. 효암고등학교개운중학교 학생들이 클럽활동을 위해 토요일마다 탁구장을 찾아오고 있다. 김 관장은 그들에게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레슨을 해 주고 있다.

“2,3년 전인데, 2년간 방학 때 초등학생 대상으로 무료 특강 했어요. 그 때 지도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서 이곳을 다시 찾는 경우도 있어예. 한 아이는 자세가 너무 좋아 ‘어디서 배웠노?’하고 물으니 ‘여기서 배웠잖아요.’라고 하는데 그 때는 보람이랄까 그런 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걸 보고 올해(2008)부터 다시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초등학생 무료 특강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일화를 소개한다. 기본에 충실하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그는 “우리 구장은 딴 데 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예요. 초등학생 무조건 무료 이용, 중고생 하루 3천원이면 하루 종일 칠 수 있거든요.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면서 나름대로 활성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예. 다들 바보라도 하거든요. 남들은 바보라고 하지만 그래도 상관 안합니더. 어떻게 보면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이 구장을 다시 올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더. 하- 하- 하-”하며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운다.

▶ “행복은 건강에서, 건강은 탁구로”, 오늘도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읊으며

김종순 관장은 금정구 남산동이 친정으로 25살에 되던 해 1월 29일에 결혼하여 명동으로 시집왔는데, 명동(명곡)이라는 동네도 모르고 시집을 왔다고 한다. 중매결혼으로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남편 서동욱(59) 씨는 이곳 유지로 지금은 농사만 짓고 있지만 4년간 명동마을 이장을 했으며, 마을금고 이사장 7년, 8년 정도 농협 이사를 지냈다. “제가 시집오니까 시어머니는 16살에 결혼해서 20살에 되던 해에 시아버지가 6·25에 전사하셨더라고요. 아들 하나 데리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오신 특별한 집안이예요. 32년간 저희가 모시고 살고 있어예.”라며 가족사를 언급한다.

큰아들은 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전공 졸업 후 임용고시 준비 중이다. 라켓볼 선수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바 있으며, 현재는 울산시 생활체육회 라켓볼 사무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작은아들은 울산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졸업 후, 3년 전에 미국 뉴욕의 플랫대학에 유학하여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독일 건축회사에 인턴 디자이너로 근무가 확정된 상태인데, 얼마 전 입국하여 결혼식을 올린 후 다시 출국했다. 며느리 또한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유학길에 올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오랜 세월을 지내오신 79세의 시어머니는 정정하신단다. “제가 시집올 때 어머님이 48살이셨어예. 제가 55살에 며느리를 봤는데 어떻게 보면 젊은 시어머니에 철없는 며느리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과거는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악조건이라도 상황이 그런데 어떡하겠습니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지요. 남편이 외아들이어서 인간관계에는 힘든 부분이 있지만 이렇게 탁구장하라고 배려해 주는 것 생각하면 고맙고 그렇습니더.” 그러면서, “남편이 굉장히 성실하거든예. 정말로 여태까지 아이들 공부 그렇게 많이 시키면서도 땅 한자리 안 팔고 버티어 왔다는 게 대단한 거 아닙니까? 한편으로는 존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그래예. 하지만 많이 배려해 주셨죠 뭐. 제가 봉사활동한답시고 밖으로 많이 나다녔는데, 어머님도 고맙고예. 남편도 고맙지예.”라며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는 안으로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외며느리, 밖으로는 탁구장 관장에다 탁구 관련단체 임원을 맡고 있다. 30대 후반부터 마을 부녀회 총무 11년, 부녀회장 4년, 웅상읍 총무 4년을 했고, 지금은 웅상생활개선회 회장을 맡고 있다. 또 각종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5년 정도 계속하고 있다.

김종순 관장은 양산탁구협회 수석 부회장, 탁구분과위원장을 4년간 지냈고 지금은 서창동체육회 탁구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말 운동으로서는 최고의 운동인데 제가 몸이 안 아픈 이상 구장을 운영하면서 활성화 시켜야 되겠지예.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좋아서 하고 있으니 좋은 걸 자꾸 활성화 시켜야 안 되겠습니꺼.”라며 그의 남다른 탁구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 보인다.

김 관장은 “탁구는 승패를 겨루는 운동이어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고 건강 쪽으로 봐서는 엄청나게 좋아예.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시력에서부터 모든 게 좋아예. 저는 지금 말도 못할 정도로 건강하지만 거기서 플러스 알파가 또 있어예.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 이상 더 말씀을 못 드리겠는데 그런 쪽으로 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진짜 좋아예.”라며 탁구의 장점을 재차 강조한다.

김종순 관장이 운영하는 웅상탁구교실 간판의 앞부분에는 “행복은 건강에서, 건강은 탁구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뒤집어 보면 탁구를 통해 건강해지면 저절로 행복해진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보았다. 그가 추구하고자 방향, 목표를 집약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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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탁구교실 간판의 문구

또 출입문 유리에는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로 시작하는 ‘마음이 맑아지는 글’이 붙어있다. 그뿐 아니라 공간 곳곳에 시와 서각작품, 좋은 글들이 붙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애쓴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강인한 육신을 뜻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하나니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중략〉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라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이 글은 사무실 벽면에 코팅을 해서 붙여 놓았는데 매일 읽고 있단다.

그는 남편에게 “당신과 30년을 살았지만 앞으로 30년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탁구와 결혼해서 살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했단다. “그 정도로 탁구 쪽으로 애착을 가지고 있고 운영을 하고 싶어요. 내가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꺼. 그래서 탁구장을 계속 운영하고 싶어예.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말입니더.”라며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탁구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들려주었다.

웅상탁구교실 김종순 관장, 2.7그램에 쏟는 그의 열정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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