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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의열단(三朝義烈壇)은 어디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E020101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향토사연구회

양산향교는 1396년(태조 6)에는 양산초등학교 주위에 있었으며 『조선환여승람』 원사편에 보면 성안의 현 양산문화원 뒤편 느티나무 동쪽에 충렬사가 있었다고 되어있다. 이곳에 충신, 공신의 신주를 이만도 군수가 모셔왔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충렬사 주위에 60여개의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19년에 발생한 양산 독립만세운동 때문에 일본 헌병이 충렬사를 파괴하였다. 그 정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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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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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

1919년 3월 4일, 경성에서 3·1독립만세운동 때 활약했던 불교경성중앙학림의 오택언이 만해 한용운의 지시에 따라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통도사로 내려왔다. 만해 한용운은 33인 민족대표의 일원 가운데 불교계를 대표자로서 양산 하북리 신평 장터에서 3월 17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한편 양산읍 내 시장에서는 엄주태, 전병건, 박삼도, 이귀수 등이 주동하여 3월 27일 3,000여명으로 추산되는 장꾼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니 일본군경이 총칼을 마구 휘두르며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하는 사태가 있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헌병과 경찰은 충렬사를 파괴하였다. 이때 일제로부터의 훼손을 염려한 주민들이 비석들을 땅속에 파묻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고 그해 10월 24일 초대 양산군수에 지영진 씨가 부임했다. 그는 김철수, 최학선, 이경모, 정진근, 서장주, 임기태 등 애국지사들과 함께 비석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장소 선정은 당시에 유명했던 한 풍수장이의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화물차가 귀한 시절이라 당시 김철수 경남도지사의 지원을 받아 춘추원 아래까지는 차량으로 옮긴 뒤 찻길이 없는 의열단 자리까지는 길을 만든 뒤 사람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옮겼다고 한다.

그 당시 삼조의열단에는 신라의 박제상, 고려의 김원현, 조선의 조영규 세 분의 비석만을 모셨다. 박제상 비는 헌종 11년(1845) 4월에 157대 한긍인 군수가 비문을 썼고, 김원현 양주방어사 승전비는 고종 14년(1877) 7월에 179대 이만도 군수가 썼으며, 조영규 증 호조참판 군수비는 고종 7년(1870)에 176대 손상일 군수가 썼다. 그 후 1970년도까지 양산군수가 헌관을 맡아 제향을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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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의열단

1971년 4월 광주안씨 문중에서 당시 황정복 군수와 김영달 춘추계 회장을 포섭하여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깊은 밤중에 임진왜란 때의 삼등공신인 구암 안근 의사와 독립운동 윤현진 의사의 비를 옮겨다 세웠다. 그 후 군민이 인증하지 않는 부당한 비석이므로 철거하라는 강한 여론에 의해 1977년 5월 장춘단비정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정경모(양산내부과장) 씨가 맡아 그 달 30일 광주안씨 문중대표 안종구(전 상북면장) 씨를 출석시켜 안근 의사의 비 이건을 협의하자 안 대표가 1977년 7월 30일까지 이건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차일피일하다 안종구 씨는 고인이 되고 약 20여 년간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7년 3월경 양산향교 유림총회에서 안씨문중 대표의 입회하에 춘추원 삼조의열단 제향은 박제상, 김원현, 조영규 세 분의 제향만을 모시기로 가결하고 이후 안근윤현진의 제향은 않기로 가결하였다. 현재 안근 의사의 제향은 광주안씨의 사당인 소계사에서 모시고 있으며, 윤현진 의사는 충혼탑 내에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고 있다. 삼조의열단 표석에 적힌 ‘장충단 삼조의열단 만년춘추’란 글씨는 통도사 구하스님의 필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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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의열단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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