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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포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085
한자 狐浦院
영어의미역 Hopowon Accommod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삼국시대
시행연도/일시 삼국시대
폐지연도/일시 조선 전기

[정의]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호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주부 역원(驛院)조에 ‘경주부 남쪽 6리쯤 되는 곳에 대로원(大櫓院)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신라의 김생(金生)이 대로원 글자를 크게 썼다.(大櫓院在府南六里 有新羅金生大櫓院三大字)’라는 기록으로 보아 통일신라 원성왕 이전부터 원이 설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 중앙 집권을 위한 행정 편의를 도모하고 군사적으로 국방의 강화를 위해 많은 역이 설치되었으며, 역원(驛院)을 보조하는 차원에서 관(關)·진(鎭)·도(渡)·관(館) 등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본격적인 역원제가 정비 활성화되어 전국적으로 많은 역과 원이 설치되었다.

[관련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양산역원조에 따르면 "호포원은 호포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하고 없다(狐浦院在狐浦東岸今廢)"라고 전하고 있으며, 『대동지지』의 양산군에 진도(津渡)조에 "호포진은 큰 길옆 작은 진이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호포는 고을 남쪽 20리에 있는데, 두 개의 근원이 있다. 하나는 원적산에서 나오고, 또 하나는 취서산에서 나오는데, 물줄기를 합하여 황산강으로 흘러들어 간다(在郡南十里 源出圓寂山及鷲棲山 合流黃山江)."고 되어 있다.

[내용]

호포는 양산천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나루였다. 이곳은 황산역과 가까운 곳이었고, 윤산역과도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변천]

호포원의 정확한 폐원 시일은 알 수 없으나, 원 자체의 중요성이 약화되어 폐원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낙동강변의 양산천 하류에 있어 잦은 홍수로 말미암은 범람도 폐원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원(院)은 북정원(北亭院), 안정원(安井院), 동원(東院), 범어원(凡魚院), 내포원(內浦院), 성천원(省川院), 호포원(狐浦院) 등 7개이며, 그 당시에 북정원호포역은 폐원(廢院)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나머지 5개의 원은 1895년(고종 32)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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