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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235
한자 忠孝烈
영어의미역 Loyalty, Filial Piety and Fedelity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송봉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충과 효와 열을 행했던 사람들.

[개설]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효충사의 효충계 서문에는 충효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릇 충효열(忠孝烈) 세 가지는 천성에서 나오는데, 사람의 도리 가운데 큰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성인을 내리시어 군주로 만들고 스승으로 삼아서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집집마다 깨우쳐서, 왕궁과 도성에서부터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자애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군주는 의롭고 신하는 충성하며, 남편은 온화하고 부인은 순종하는 것이 이것이다.”

즉, 삼강오륜을 모든 사람에게 실천하는 것이 충효열이라고 한 것이다. 다음에서 양산 지역에 충효를 맹렬하게 실천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언급되는 사람은 효충사에 모시고 있는 박제상이다. 박제상은 왜적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왕자를 구하고 결국은 적지에서 순국하였다. 다음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잡혀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정호인과 백수회를 언급하고 있다.

정호인은 “차라리 머리 없는 귀신이 될지언정, 무릎 꿇은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했고, 백수회는 “차라리 이씨의 귀신이 될지언정 야만족의 신하는 되지 않으리라” 하였다. 이 세 사람 외에 나라에 충성을 다한 자로 고려의 김원현이 있다. 고려 문종 때 양주방어사로 있다가 왜적이 군선 190여 척을 이끌고 양주에 쳐들어오자 맞서 싸워 수만 급을 참수시켰다. 이에 김원현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주민들이 전승비를 건립하였다.

[충신]

양산의 충신으로 임진왜란 때 동래성 전투에 참가한 양산군수 조영규가 있다. 155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했는데, 왜적이 쳐들어오자 모두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다. 조영규도 어찌할 수 없어서 동래에 가서 부사 송상현을 만나 말하기를 “방금 국사가 이같이 위급하니 공께서는 장차 어찌 하오리까” 하니 송상현이 대답하기를 “마땅히 성을 사수하리라” 하였다.

이에 조영규는 국록을 먹는 관원이라면 이러한 국난을 당하여 당연히 더불어 성을 사수하다가 나라를 위하여 방패가 되리라 한즉 송상현조영규의 손을 잡고 크게 감탄하였다. 조영규가 “나는 이미 죽기를 결심하였으나 노모께서 양산에 계시니 청하옵건대 잠시 돌아가서 결별을 고한 연후에 다시 와서 결사분전하겠습니다” 하였다.

조영규는 급히 양산으로 돌아와서 모친께 눈물로 이별을 고하고 아들 조정노에게 병화를 피할 방책을 지도해 놓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싸우다 죽었다 한다. 이를 보면 양산군수 조영규는 충신이자 효자임을 알 수 있다. 충과 효는 다 같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나눌 수 없을 것이다.

[효자]

효자로 언급되는 사람은 금호 이다. “금호 선생 이공은 나이 겨우 열 한 살이었는데 사서(四書)에 능통하고, 시묘살이 3년을 하는데 맹수가 와서 지켜주었다” 고 한다. 또 효로 유명한 웅상읍의 김려택이 있다. 김려택은 고령인으로 웅촌에서 살았는데 효성이 돈독하여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시묘할 때 범과 개와 쥐가 3년 동안 김려택을 도와 시묘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호조좌랑을 내려주었다. 양산시 상북면김칠득(金七得)황산역의 역리로 있으면서 효성으로 눈먼 어머니를 눈뜨게 했다 한다.

[열녀]

열녀로는 엄자산의 처 경주이씨와엄규석의 처 밀양박씨가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손** 별로... 박재상이 아니고, 박제상? 201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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