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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430
한자 金宗權
영어음역 Gim Jonggwon
이칭/별칭 시몬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천주교 순교자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867년 1월 10일연표보기
본관 김녕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가계]

본관은 김녕. 세례명은 시몬.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의공(忠毅公)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24세손이다. 부인은 지씨(池氏)이고, 아들은 김형조(金炯祚)이다. 김종권의 직계 후손들은 김해, 부산, 서울 등지로 흩어져 현재까지 신앙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활동사항]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김종권양산군 동면 금산리(현 양산시 동면 금산리) 자택에 공소를 세우고, 공소 회장으로서 금산리 지역의 천주교 전파에 앞장섰다고 한다. 1866년(고종 3)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포졸들은 당시 천주교 전도의 중심인물이었던 김종권의 집에 들이닥쳐 김종권을 체포하였다.

당시 일곱 살 된 아들 김형조는 붙잡혀 가던 김종권에게, “저도 아버지를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하며 울부짖자 김종권은 “너는 안 된다. 네가 그러면 내가 좋은 데(천당) 못 간다. 그러니 돌아가서 후손을 이어라”라고 당부하였다. 이에 부인 지씨가 아들을 집에 두고, 김종권의 뒤를 밟아 대구감영까지 뒤따라갔다.

1867년(고종 4) 1월 10일 김종권이 대구 관덕정에서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참수되자, 부인 지씨는 남편의 머리를 치마폭에 고이 싸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가친척들 몰래 문중 선산에 묻었다. 이후 지씨는 가족들을 이끌고 밀양 명례에 있던 교우촌으로 이주하였다.

[묘소]

1998년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문중 선산인 양산시 동면 금산리 금정산 뒤편에 있는 냉정사 입구 중미등을 찾아보려 했으나, 원래 머리만 묻혔던 작은 무덤이었고, 또한 130여 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러 그 흔적은 찾지 못하였다.

[상훈과 추모]

현재까지 밝혀진 양산 지역의 첫 순교자인 김종권을 추모하여 2000년 4월 23일 양산성당에 순교자김종권시몬단비(殉敎者金宗權시몬壇碑)가 건립되었다. 2005년 5월 양산성당 증축으로 인해, 순교자김종권시몬단비를 부산에 있는 오륜대한국순교자기념관으로 이관하였다. 이로써 김종권은 오륜대한국순교자기념관을 찾는 천주교도들과 참배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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