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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 용당 제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825
한자 伽倻津龍堂題詠
영어의미역 Attaches a Subject, Poem Recite in Gayajin Yongdang Shrin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
작가 김종직|정사룡|홍성민|허적|윤순지|황호|권만|정범조|이만도
창작연도/발표연도 15세기[조선 전기] 이후

[정의]

조선 전기 이후 김종직 등이 가야진 용당의 풍광과 그에 대한 감회를 읊은 한시.

[개설]

「가야진 용당 제영(伽倻津 龍堂 題詠)」의 대상이 되는 가야진 용당은 삼국시대부터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면서 시작된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사당으로 국가에서 해마다 봄과 가을에 향과 칙사를 보내어 국가의식으로 제사를 올려 장병의 무운과 낙동강의 순조로운 수운과 범람을 막고자 하였다. 가야진 용당은 가뭄이 심할 때에 기우제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제영(題詠)이란 산천이나 누정 등을 대상으로 주변의 풍광과 이를 보는 감흥을 읊은 것이다. 「가야진 용당 제영」이란 가야진 용당 주변의 풍광과 가야진 용당에서 느낀 작자의 감흥을 읊은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 제영과는 달리 「가야진 용당 제영」에는 의례적 성격이 강한 한시들이 많이 있는데, 가야진 용당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기 때문에 「가야진 용당 제영」의 상당수는 제사의식과 관련이 있다. 가야진 용당은 문헌에 따라 양산용당(梁山龍堂)·가야진사(伽倻津祠)·가야진(伽倻津)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모두 가야진 용당을 의미한다.

가야진 용당에서의 가야진 용신제는 그 유래가 오랜 만큼 이를 노래한 「가야진 용당 제영」의 수도 적지 않다. 현재 문헌으로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양산용당(梁山龍堂)」, 정사룡(鄭士龍)[1491~1570]의 「상용당양산지(上龍堂梁山地)」와 「하용당양산지(下龍堂梁山地)」, 홍성민(洪聖民)[1536~1594]의 「제양산용당(題梁山龍堂)」, 허적[1563~1641]의 「야범가야진용전운(夜泛伽倻津用前韻)」, 윤순지(尹順之)[1591~1666]의 「용당제주가(龍堂題主家)」, 황호[1604~1656]의 「자용당범주이하구점오수(自龍塘泛舟而下口占五首)」, 권만(權萬)[1688~1749]의 「용당주중차세청판상운(龍堂舟中次歲廳板上韻)」과 「상원야가야진제소구점(上元夜伽倻津祭所口占)」, 정범조(丁範祖)[1723~1801]의 「봉어강향축제가야진용신(奉御降香祝祭伽倻津龍神)」,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제가야진(祭伽倻津)」과 「자남창승주상용당치제(自南倉乘舟上龍堂致齊)」 등이 있다.

[구성]

김종직의 「양산용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시들이 칠언율시이다. 칠언절구로는 정사룡의 「상용당양산지」와 홍성민의 「제양산용당」, 권만의 「상원야가야진제소구점」 등이 있으며, 오언고시로는 허적의 「야범가야진용전운」과 이만도의 「제가야진」 등이 있다.

[내용]

「가야진 용당 제영」가야진 용당 주변의 풍광과 그에 대한 작자의 소회를 담은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홍성민의 「제양산용당」처럼 친구를 떠나보내는 작별의 아쉬움을 읊은 것과 정범조의 「봉어강향축제가야진용신」처럼 가야진 용신제를 올리면서 임금에 대한 송축(頌祝)과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있다.

[의의와 평가]

제영의 대상인 가야진 용당은 현재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인 가야진 용신제가 행해지는 곳이다. 가야진 용신제는 국가 지원 용신제 제의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노래한 「가야진 용당 제영」 한시 역시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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