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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양산군거민등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033
한자 慶尙道梁山郡居民等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인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등장|진정서
관련인물 양산 군민
용도 구포의 관할권을 양산군으로 돌리기 위한 진정서
발급자 양산 군민
수급자 군수|순상|의정부
발급일시 1874년연표보기
발행처 양산 군민
소장처 안종석
소장처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정의]

1874년 양산군민이 동래부로 넘어간 구포의 관할권을 양산군에 돌려달라고 의정부에 올린 진정서.

[제작발급경위]

1873년 양산군이 담당했던 구포 관할권이 동래부로 넘어가자 1874년 양산 군민은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하여 의정부에 진정서를 올렸다. 의정부는 내용을 심리하고 결정 내용을 기록하여 양산 군민에게 돌려주었다.

[형태]

1장이며 양산 군민이 집단으로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한 ‘등장(等狀)’이라는 형식의 고문서이다. 정해진 등장 서식에 따라 기록되었으며, 등장 끝부분 상단에 의정부의 수결이 기록되었고, 끝부분 아래에는 의정부의 처분 내용이 초서로 기록되었다. 고문서 첫줄이 결락되어 진정서 작성 대표자를 파악할 수 없다.

[구성/내용]

「경상도양산군거민등장」은 갑술년에 작성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구포의 관할권이 양산군에서 동래부로 넘어간 시기가 1873년이므로 등장을 작성한 갑술년은 1874년으로 추정된다. 등장의 내용은 규모가 큰 동래부가 작은 읍에 불과한 양산군의 구포를 편입시킴으로써 민폐가 커져 각 면 각 리에 유민이 많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민간의 폐단은 두 가지로 언급되었다. 첫째, 당시 구포는 감동포구가 설치된 곳으로서 양산군 거민이 춘추로 환곡을 납부하던 곳인데, 구포가 동래부에 편입됨으로써 수송 거리가 크게 늘어 민간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구포가 동래부로 편입됨으로써 호역 자원이 크게 줄었는데 그 부담을 남아 있는 양산 군민이 감당하게 되므로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본 고문서는 조선 후기 양산군 거민이 집단 연서하여 작성한 등장이다. 따라서 양산군 거민의 등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이 등장으로 말미암아 구포의 동래부 편입이 당시 양산군의 조세와 부역체계 속에 복잡한 민폐를 일으키는 문제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구포의 동래 편입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양산군의 1차 사료라는 점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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