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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은 영세불망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073
한자 權重殷永世不忘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Gwon Jungeun
이칭/별칭 행군수 권공중은 영세불망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한태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석각류|영세불망비
건립시기/일시 1906년 7월 20일연표보기
관련인물 권중은
재질 화강암
높이 141㎝
너비 48.5㎝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2[교동1길 10]지도보기
소유자 양산시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양산향교 앞에 있는 조선 말기 양산군수 권중은(權重殷)의 치적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건립경위]

1906년 양산군수로 부임한 권중은이 첫해부터 교화에 힘써 민속이 검소해졌고, 봉급을 덜어 학문을 장려하였으며, 세금을 감해주는 등 백성의 피폐함을 구해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비를 세웠다.

[위치]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오른쪽 비석군의 앞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7번째에 놓여 있다.

[형태]

비두와 비신, 비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비두는 높이 52㎝, 너비 80㎝, 두께 29.5㎝로 꽃과 구름이 새겨진 관석(冠石)의 모양을 띠고 있다. 비신은 높이 141㎝, 너비 48.5㎝, 두께 19㎝이며, 비좌는 가로 92㎝, 세로 61㎝, 높이 7㎝의 시멘트로 되어 있다. 비문은 대체로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 중앙에 큰 글씨로 ‘행양산군수권공중은영세불망비(行梁山郡守權公重殷永世不忘碑)’라 적었고, 작은 글씨로 오른쪽에 ‘군수로 부임하신 첫 해에 교화가 넘치어 고을 풍속이 순박하였고 호구의 급한 부역을 줄이고 녹봉을 출연하여 학자금을 대었다네(涖郡初載 化溢俗朴 蠲戶水火 損俸堰學)’라고 쓰여 있으며, 왼쪽에는 ‘관례였던 서리들의 납품을 없애고 폐단이었던 백성들의 결가(結價)를 바로 잡았다네. 한 조각 빗돌에 새긴 말 송덕은 끊이지를 않는다네(例減吏納 弊捄民結 一片石語 頌德不絶)’라는 4언시가 적혀 있다. 뒷면에는 중앙에 큰 글씨로 ‘병오칠월이십일립(丙午七月二十日立)’이라 적었는데, 『역간 양산읍지초』에 의하면 권중은이 1906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해 왔으므로 1906년 7월 20일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1985년 당시 양산군수였던 이두연이 권중은 영세불망비를 비롯하여 양산 지역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양산향교의 정문인 풍영루(風詠樓)앞에 모아 두었다. 이들은 대부분 옛날 관아 터(현 양산문화원)에 있었던 것으로, 비석군은 왼쪽과 오른쪽 비석군으로 나뉜다. 권중은 영세불망비가 속한 오른쪽 비석군은 길이 15m 53㎝, 높이 50㎝의 철제 보호 난간으로 둘러져 있고, 폭은 5m 60㎝이다. 주변에는 유림회관을 비롯하여, 양산여자고등학교, 춘추공원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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