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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074
한자 金世鎬-孫相馹永世不忘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Gim Seho and Son Sangil
이칭/별칭 순상국 김공세호·군수 손공상일 영세불망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통도사로 10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태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석각류|영세불망비
건립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관련인물 김세호|손상일
재질 화강암
높이 157.5㎝
너비 68㎝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통도사로 108]지도보기
소유자 통도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세호(金世鎬)손상일(孫相馹)의 선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개설]

1869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김세호(金世鎬)와 1870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한 손상일(孫相馹)이 각각 6년과 3년의 치세 동안 외적을 물리치고 오랜 폐단을 없애는 등 선정을 베풀어 그 혜택이 승려들에게까지 미친 것을 통도사의 승려들이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1872년 비를 세웠다.

[형태]

비두 없이 비신과 비좌로 이루어져 있고, 비신은 상부 모서리가 접힌 규수(圭首) 모양이다. 비석의 재질은 백색 화강암으로, 비신은 높이 157.5㎝, 너비 68㎝, 두께 22㎝이고, 비좌는 가로 109㎝, 세로 70㎝, 두께 10㎝이다. 비문은 대체로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을 두 부분으로 분할하여 오른쪽 부분에는 굵은 글씨로 ‘순상국김공세호영세불망비(巡相國金公世鎬永世不忘碑)’라 기록하고, 작은 글씨로 양쪽에 ‘정사를 베푼 지 6년, 교화는 더욱 아름다워졌다네. 지혜로 적을 파하였고 도움으로 궁역에 응하였다네. 고을의 풍속은 용감하고 공평하며 백성들은 사는 데 편안하다네. 한결같이 남은 힘으로 돌보는 은택은 잔약한 중들에게까지 되돌렸다네(涖政六載 宣化益奕 智罷賊戈 助應宮役 邑俗勇公 居民安宅 一視餘力 澤反殘釋)’라는 4언시를 새겼다.

왼쪽 부분에는 ‘군수손공상일영세불망비(郡守孫公相馹永世不忘碑)’라 기록하고, 양쪽에 ‘정사를 다스린 지 3년 만에 오래된 폐단이 점차로 신원되었다네 녹봉을 감하여 재앙을 보충하고 힘을 다하여 향교를 새로 지었네. 공무를 집행함에는 용감하였고 일을 당해서는 인을 먼저 생각하였다네. 사찰의 폐해를 영원히 향기롭게 하였으니 궁벽한 산골에서 봄을 맞은 격이라네(涖政三年 久獘漸伸 俸減浦灾 力盡刱新 奉公能勇 臨事先仁 永葷寺瘼 窮山逢春)’라는 4언시를 적었다. 뒷면에는 중앙에 ‘동치십일년임신십이월일립(同治十一年壬申十二月日立)이라 적고 있어, 이 비석이 1872년(고종 9)에 세워진 것임을 보여준다.

[현황]

통도사 부도원은 1993년 월하(月下) 방장의 교시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통도사 역대 고승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를 새롭게 봉안한 곳이다. 부도원은 통도사 입구를 지나 ‘영취총림(靈鷲叢林)’이란 현판이 보이는 일주문 바로 앞에 있는데,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 있다.

하단의 앞면엔 ‘통도사(通度寺) 부도원(浮屠園)’이라는 안내판이 석벽에 붙어 있다. 특히 하단의 둘째 줄에는 승려는 아니지만 통도사와 관련된 공적이 있는 인물들을 기리는 공덕비도 함께 안치되어 있는데, 김세호·손상일 영세불망비는 둘째 줄 왼쪽으로부터 7번째에 놓여 있다.

[의의와 평가]

오랜 폐단을 없애어 그 혜택이 궁벽한 산사(山寺)에까지 두루 미쳤던 김세호손상일의 치적을 통해 오늘날 위정자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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