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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189
한자 金麟圭
영어음역 Gim Ingy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우정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성별
생년 1922년 8월 22일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인규(金麟圭)가 동래중학교 5학년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부산 제2상업학교 및 동래중학교의 학생 1,000여 명이 참가했는데, 일본인 심판진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일본인 학교가 우승을 차지하자 분노가 폭발하여 당시 금지곡이었던 「아리랑」, 「도라지」 등의 노래를 부르고, “조선 독립 만세”, “일본놈 죽여라”, “너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한편 경남지구 위수사령관(衛戍司令官)으로서 대회 심판장을 맡았던 일본군 대좌(大佐) 노다이의 관사(官舍)를 습격한 뒤 구타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과 헌병이 출동하여 200여 명의 학생이 체포되었고, 주동자로 지목된 11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당시의 항일 시위는 일제의 군국적인 파시즘적 탄압에 짓눌려 있던 민족혼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때 김인규도 체포되었으며, 1941년 8월 25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이 확정되어 1년 3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김인규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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