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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325
한자 金舒玄
영어음역 Gim Seohyeon
이칭/별칭 서운,소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백승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장군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김해
대표관직 각간(角干)

[정의]

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개설]

『삼국사기』김유신전과는 달리『삼국유사』가락국기조에 인용된 문무왕의 제서(制書)에는 김서현이 구형왕의 손자인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 잡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김유신비」에는 김소연(金逍衍)으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할아버지는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며, 아버지는 김무력이다. 부인은 신라 왕족인 숙흘종의 딸 만명이다. 아들은 김유신이며, 딸 문희는 후에 태종무열왕비가 되는 문명왕후이다. 김서현은 신라 왕실과 독특하게 인연을 맺고 있는데, 그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김서현은 가락국의 후예로 「김유신비」에 그 성명이 김소연(金逍衍)으로 전하는데, 신라 조정이 고구려 멸망 후 귀족 안승(安勝)을 받아들여 김성(金姓)을 사성(賜姓)한 예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그의 대에 김씨 성을 취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자손으로는 흥무대왕 대각간 김유신, 각간 김흠순, 태종무열왕의 왕비 문명왕후 김문희 등을 두었다. 특히 그의 외손 문무대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김유신전에 따르면, 김서현은 길에서 갈문왕 입종(立宗)의 아들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을 보고, 마음에 들어 눈짓으로 꾀어 야합했다. 김서현이 만노군(萬弩郡)[충청북도 진천군] 태수(太守)가 되어 만명과 함께 떠나려 하니 숙흘종이 딸을 별채에 가두었으나, 만명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김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그 후 595년 만명은 그곳에서 임신하여 20개월 만에 김유신을 낳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김서현의 혼인담에서 볼 때, 신라 왕실의 숙흘종이 자신의 딸과 김서현의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김서현이 진골의 신분이기는 해도 가야계였기 때문이다. 김서현도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신라계 진골과 혼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만명을 유혹한 것으로 보인다.

[활동사항]

김서현은 관등이 각찬(角飡: 17관등 중 제1위)에까지 이르렀으며, 관직은 소판(蘇判)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 안무대량주제군사(安撫大梁州諸軍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양주(良州)의 총관(摠管)이 되어 여러 번 백제와 싸워 그 예봉을 꺾어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변방의 백성들은 편안히 농사짓고 누에를 쳤으며, 군신은 국가의 일에 골몰하는 근심을 없게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대량주는 대야주와 음이 통하므로 합천일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삼국사기』 김유신전에서는 ‘양주총관’으로 나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양산군 명환조(名宦條)에 ‘양주총관 김서현(良州摠管 金舒玄)’으로 나오므로 삽량주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595년에는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충청북도 청주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를 통해 신라는 진흥왕대 이후에 잃어버렸던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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