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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450
한자 安昞遠
영어음역 An Byeongwon
이칭/별칭 순장(舜章),율농(栗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종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성별
생년 1882년 3월 6일연표보기
몰년 1910년 5월 29일연표보기
본관 광주(廣州)
대표관직 상북면장

[정의]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순장(舜章), 호는 율농(栗儂). 계산 안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만성재(晩惺齋) 안평중(安平重)이며, 아버지는 안효필(安孝弼)이다. 부인은 동래정씨이며, 아들은 안종석(安鍾石)이다.

[활동사항]

안병원은 1882년(고종 19)에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서 출생하였다. 안병원은 효자로 이름난 인물로 4년 동안 병든 부모를 곁에서 모시면서 옷의 허리띠를 풀지 않았고, 아버지의 병이 심해지자 변을 맛보려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모의 상을 당하자 예를 다하여 장사와 제사를 지냈고, 아침·저녁으로 묘지에서 통곡하였는데, 무릎을 꿇었던 곳은 구덩이가 되었고, 묘지 옆에는 촛불을 두었는데 비바람이 그것을 끄지 못했다고 할 만큼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안병원은 부모에 대한 효뿐만 아니라 나라와 임금에 충(忠)을 다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이를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을 때 동지 김욱권(金昱權)·윤현태(尹顯泰) 외 21명 등과 효충계(孝忠契)를 조직하여 국권 회복을 꾀하는 한편 양산향교 도유사와 상북면장을 하면서 의병장 서영호(徐榮浩)에게 자금 조달의 역할을 하였다.

대구에서 교남교육회 창설에 참가하여 독립지사인 장지연·김시현·안종락 등 국내의 많은 의병 동지들과 접촉하였다. 안병원은 진목정과 이천리 전투에 직접 가담한 것이 일본 경찰에 알려져 피신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았다. 요행이 화를 면하였으나, 분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병이 발병하여 1910년 5월 29일 28세 나이로 별세하였다.

[저술 및 작품]

안병원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보고, 개탄한 나머지 「토왜가(討倭歌)」를 지었다. 『상북면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군주폐하(君主陛下) 반대하고 중신등도 거절이요/ 이천만이 한사(限死)해야 분사자(憤死者)도 속출인대/ 명의(名義)됴현 동양평화 추모 등의 수작이며/ 불온한 보호조약 가면인줄 불식인가/ 권신배야 아부말고 간간(奸干)등아 드러보라/ 임의대로 이 강토를 왜노배(倭奴輩)야 허급(許給)함이/ 수천년래 이섯시며 천심인들 허락할가/ 여의등(汝矣等)의 두상은 정의철추(正義鐵椎) 소덕인다/ 여아(汝我)모도 단군자손 오천년의 묘궁(苗窮)로다/ 이천만을 사지투척 여의등(汝矣等) 현달하면/ 기종자가 무성할것가 결실인들 실할것가/ 대대손손 나릴 선물 천벌인줄 예지하라/ 이천만이 전사(全死)라도 천도(天道)만은 생존해야/ 우뢰처럼 나릴 화복 우리먼첨 당할지니/ 왜노배(倭奴輩)에 양자간들 기화근(其禍根) 면할것가/ 년년세세 바들 복(福)이 후회될 줄 예지하라/ 백성등의 혈한(血汗)으로 당대세도 다부리고/ 무엇다시 여한되야 이 지경을 저지러노/ 여의등의 조상들도 지하에서 통곡한다/ 토왜통분 의검(義劍)들어 이천만아 행군하자/ 오적선참(五賊先斬) 보수(報讐)연후 국근기반 정립커늘/ 오호통분 이원수들 하여지행(何如之行) 보복하가/ 의병들이 봉기하여 우리 원수 갑고 있다/ 이천만아 합심용력 뒤를 따라 분기하자.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병원의 추모는 율리정사(栗里精舍)에서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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