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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819
한자 錦山里
영어음역 Geum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동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7.311㎢
총인구(남, 여) 3,911명[남 1,892명, 여 2,119명]
가구수 1,537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금산리금산리(琴山里)·금진(琴津)·금호(琴湖) 등으로 불려져 왔다. 금정산 장군봉에서 뻗어 내려 하단 부에 산맥을 좌우로 하여 금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좌우에 냉정천과 고천천의 두 개울이 흘러 마을이 형성된 부분에 용추폭포와 금호폭포가 있어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폭포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고요한 밤이면 거문고 소리와 같이 들린다고 하여 거문고 ‘금(琴)’자가 붙게 되었다. 지금의 금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산이 많아 살기 좋은 비단 같은 곳이란 뜻으로 비단 ‘금(錦)’자가 붙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마을의 형성은 금봉사란 절의 유적으로 보아 고려 말, 조선 초라는 설도 있고, 동래 범어사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는 말도 있다. 또한 금진호 등으로 기재된 것으로 보면 항구로서 배가 드나들었던 구포~양산 간 중요한 지점으로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설에는 역촌으로 출발했다고 하는 데 1940년까지만 해도 역마가 3~4필 남아 있었다.

미루어 보면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고증이 없고,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처음 입촌자는 곡부공씨라고 전해지는데 흔적은 없다. 고증되는 씨족은 1500년대 단종 복위 때 주역이었던 충의공 김문기의 후손인 국기공이 화를 피해 이곳에 입촌하였다는 기록과 같은 시기 연안이씨가 입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1700년대 김녕김씨 21대손 문희공이 냉정에 입촌하였고, 180년 전에 동래정씨 방인공과 밀양박씨 치형공 그리고 의성김씨 등이 입촌하였고, 본격적인 형성은 1922년 양산 수리 공사가 끝나면서 가구 수가 늘어났다. 1914년 이후에는 금산리(琴山里)에서 금산리(錦山里)로 명칭이 변하였다.

[자연환경]

동쪽으로는 금정산이 위치해 있어 높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북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서쪽으로 갈수록 구릉지에서 평지로 변한다.

[현황]

금산리동면의 남동부에 있는 지역으로 2009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311㎢이며, 2011년 8월 31일 현재 총 1,537세대에 3,911명(남 1,892명, 여 2,11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지명으로는 냉정골·고당대·대몽만딩이·세검탄·경모대 등이 있으며, 독립유공자 김상현의 고향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금정산을 넘으면 노포동이 있고, 범어사와도 가깝다. 주요 기관으로는 동산초등학교와 솔밭공원 등이 있다. 개발이 되지 않아 앞으로 개발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금산리의 남쪽은 가산리, 북쪽은 석산리, 동쪽은 사송리, 서쪽은 물금읍과 각각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국도 35호선이 금산리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국도 35호선이 낙동강의 동쪽을 따라 대부분 평행하게 이어져 있고, 금산리 남서쪽에 호포고가교와 호포대교가 있어 낙동강을 건너기가 수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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