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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854
한자 石山里
영어음역 Seok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미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5.407㎢
총인구(남, 여) 7,739명[남 3,918명, 여 3,821명]
가구수 2,714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석산의 고명(古名)은 ‘야무라기’로서 ‘야물’은 작다는 의미이다. 야무락지다라는 말에서 ‘석(石)’ 자를 가져온 듯 하며, ‘산(山)’ 자는 이두로서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 석산(石山)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는 계석마을에서의 ‘석(石)’ 자와 죽산마을에서의 ‘산(山)’ 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주위 일대가 ‘양산 문화유적 분포지’로 고시되어 있는 걸로 보아 삼한시대 이전에 설촌(設村)된 것으로 짐작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 마을의 가장 오래된 씨족으로 알려져 있는 청도김씨(淸道金氏)는 1504년 갑자사화를 피해 15세손이 입향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50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김씨 이전에 최씨가 먼저 입향했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가 불분명하다.

1806년까지 양산군 동면에 속하여 계석당리와 죽산리로 존재하였으며, 동면이 상동방(上東坊)과 하동방(下東坊)으로 분리되면서 계석당리는 계석리로 개명되어 상동방에, 죽산리는 죽리로 개명되어 하동방에 각각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동쪽 뒷산인 금정산 북쪽 끝단 고지에 우뚝 솟아 있는 달따방구(달뜨는바위)에서 시작된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주변의 작은 지류들을 수용하면서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마을 앞의 메기들은 퇴적층의 비옥한 옥답이며, 양산천이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현황]

동면의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9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407㎢이며, 2011년 8월 31일 현재 총 2,714세대에 인구 7,739명(남 3,918명, 여 3,82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내송리, 서쪽은 남부동, 북쪽은 우송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1923년부터 약 4년에 걸친 양산천 개수 공사 이후 메기들이 농경지로 탈바꿈하면서 지역 발전이 시작되었다. 메기들은 곡포(현재의 교리)에서 호포 사이에 펼쳐져 있는 평야인데, 본래는 지면이 낮고 습하여 경작지로는 부적합하여 자라와 메기의 서식처로 방치되었던 들로서 타어평(鼉魚坪)이라고도 불렀다.

1951년 ‘농지개혁법’과 1969년 이후 시행된 새마을운동으로 반기계화 영농이 가능해졌다. 1996년 이후 메기들이 양산 신도시 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대단위 주거 단지로 개발됨으로써 생활 형태가 벼농사 위주의 농촌 양식에서 도시 양식으로 변화되고 있다. 서쪽 지역에는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양산시 농업기술센터와 양산지방노동사무소, 부산국제우체국, 한국도로공사 경남지역본부 양산지사 등과 몇 개의 기업체가 있다. 국도 35호선이 양산과 구포를 연결하고 있으며, 1987년 개통된 남양산IC로 인하여 호포역을 비롯한 지하철이나 고속국도 등 교통 수단의 연계성이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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