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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청년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2004
한자 大同靑年團
영어의미역 Korea Young Men´s Associa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홍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단체
설립연도/일시 1909년 10월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20년대 중반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었던 독립 운동 단체.

[개설]

1910년대는 비밀 결사 운동과 자본가 계급이 앞장선 국권 회복 운동이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1909년 10월 경상도의 계몽적인 지식인 청년 80명이 대동청년단을 결성하였다. 결성 당시는 대부분 학생이었고, 이후 자본가 계급이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설립목적]

학생 및 자본가 계급이 중심이 된 비밀 결사 운동 단체로서 항일 민족 해방 운동을 위해 결성하였다.

[변천]

처음 결성했을 때에는 학생과 계몽적 지식인이 중심이 된 단체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910년 10월 양산을 비롯하여 경상남도에 뿌리를 둔 단체들이 항구가 있는 부산에서 무역업에 진출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갔다. 특히 백산무역주식회사는 대동청년단의 활동 거점이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인사로는 안희제(安熙濟), 윤병호(尹炳浩), 윤현진(尹顯振), 김갑(金甲), 윤상태(尹相泰), 이우식(李祐植), 최완(崔浣) 등을 들 수 있다. 이후 대동청년단은 경찰에 노출되지 않은 채 1920년대 중반까지 활동을 이어 갔다.

[주요사업과 업무]

일제강점기에 국권 회복을 위해 계몽 활동을 한 단체로서 무역업을 통해 민족 기업을 육성하고 독립 자금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또한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권 회복의 당위성을 일깨우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활동사항]

대동청년단의 구체적인 활동상은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결성 당시 학생 및 자본가 계급이 중심이었고, 1910년대 중·후반에 무역업에 진출하여 사회적·경제적 위상을 높이게 되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힘을 바탕으로 민족 기업 육성과 독립 자금 조성에 공헌하는 한편,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했다.

[의의와 평가]

대동청년단은 1910년대 양산을 포함한 경상도의 청년 학생 및 민족 자본가 계급이 결성한 단체로서 무역업의 활성화에 따른 경제적 변화에 부응하여 양산 지역의 비밀 결사 운동의 주체로 성장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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