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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148
한자 開谷-
영어의미역 Gaegok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 개곡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규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217명[남 111명, 여 106명]
가구수 88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개곡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적·유물들을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이나 고려 전기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古)기왓장·주춧돌·구들장 등이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대밭골에는 도자기를 구운 흔적이 있다. 대밭등위 쇠실래기에는 쇠를 구워서 만든 쇠붙이 흔적도 있다. 쇠실래기와 관련된 전설로 보아 이곳이 창칼을 만들던 제조원이었고, 창기(昌基)에 창칼을 보관했던 것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동쪽에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서쪽에는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처음 정착하여 의좋게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개곡리는 임진왜란 후 동래현에 속해 있었다가 1877년(고종 14) 양산군으로 편입되면서 상동방(上東坊)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시 동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개곡마을은 산세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풍수가 아름답고 좋은 곳이다. 부산~울산 간 국도 7호선 상에 있고, 동면지역 중에 최상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주민 다섯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울산으로 가는 방향에서 왼쪽으로 약 400m 들어오면 수령을 알 수 없는 큰 소나무(일명 왕소나무)가 길 쪽으로 늘어져 있는데, 이 왕소나무를 돌아가면 우리나라 지도 모양을 한 마을이 남북으로 자리하고 있다. 국도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외에는 사방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현황]

2007년 12월 31일 현재 총 88가구에 2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천성산 동남쪽 줄기의 끝에 위치한 개곡마을은 마을 앞 하천수가 부산광역시의 상수도 공급원인 회동수원지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수원 보호 구역과 녹지 구역 등으로 묶여 개발 제한을 많이 받고 있다. 개곡마을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국도와 멀리 떨어져 있어 차량의 소음이 전혀 없다. 사방에 울창한 산림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질 및 대기 등의 오염이 전혀 없어 최고의 주거환경을 지녔다.

1930년에 지은 약 15평 규모의 마을회관(동회, 청년회 회의장 및 야학장으로 이용)을 1971년 30평 규모로, 1991년에는 2층으로 증·개축하여, 마을금고·구판장·동사무소·경로당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근 마을로는 서쪽 산 넘어로 법기리가 있으며, 남쪽은 창기마을, 동쪽은 기장군 정관의 임곡마을, 북쪽은 정관의 월평마을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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