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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A020103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이종봉

그 옛날 삼국시대에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많은 전투가 일어났다. 많은 병사와 사람들이 보고픈 가족들을 뒤로 하고 전장에 나가서 죽음을 맞이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슬픔을 뒤로 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용소에 제를 올렸다.

용소는 신라와 가야국 사이의 강을 중심으로 한 접전지로 보인다. ‘용’은 물의 신으로 청룡, 황룡, 백룡, 인룡이 있는데, 수장된 군사들을 인룡(人龍)이라고 해서 군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위령제의 발단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용신제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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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세월이 흘러 전쟁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이 용신제는 백성들 기억 속 저편으로 점점 잊혀 갔다. 전쟁이 사라지자 평온한 삶을 살아가며 사람들은 농사를 많이 짓게 되었다. 이후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논농사를 많이 짓게 되어, 물에 대한 관리가 백성들의 삶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백성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용신제는 민속신앙과 만나 백성들에 의해 기우제 형태로 재탄생하였다. 이에 세종대에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국가에서 용신제를 주관하여 용당의 가야진에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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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 형태

이후 일제강점기에 백성들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면서 국가제사인 용신제가 금지되자, 마을사람들은 일제의 탄압의 눈을 피해 밤에 제사를 지내면서 명맥을 이어온 것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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