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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알뜰한 여성 이장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C040101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율리마을·효충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락

소토리율리마을효충마을의 최영애 이장과 안경자 이장은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이장들이다. 상북면 26개 마을 중 여자 이장은 모두 5명이다. 이것은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처음 여성이장은 율리마을의 최영애 혼자였는데, 이후에 효충마을의 안경자 이장을 비롯하여 내전마을, 장재마을, 외석마을이 추가되어 5개 마을로 늘었다고 한다.

▶ 율리마을 이장 최영애(55세)

최영애(55)는 1997년 1월부터 현재까지 햇수로 12년째 마을 일을 맡아보고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 법도 한데, 그는 “작은 동네이다 보니 별다른 일이 없다 아입니꺼.”라며 겸손한 대답을 한다.

율리마을은 총 77세대가 사는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 면사무소에서 내려오는 일들을 처리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 이장은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26살 되던 해 같은 공무원이었단 당시 서른 살의 김용호(59)와 결혼했다. 친정은 하북면 순지리이다. 할머니가 예비 사돈집을 직접 방문한 뒤,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사성(四星)을 돌려보내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단다.

어떻게 해서 이장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무슨 계기가 있어야 되거든요. 제가 1996년도에 가계부를 중앙에 출품해가지고 최우수상 받았거든요. 그 때 IMF사태 때라 여자들 근검절약 실천하는 것과 맞아 떨어져서 모범 사례로 매스컴을 탔어요. 텔레비전 인터뷰도 하고, 신문에도 나고, 여성단체 모이는 데도 강의도 하고, 책자에도 나오고 했어요.” 시쳇말로 “많이 떴다.”고 했다.

“제가 시집왔을 때 40대, 50대의 남자 분들이 적었어요. 그러던 차에 ‘우리 마을에 여자 이장 한 번 만들자. 우리 동네 남자들보다 못할 것 없다.’면서 안영호 씨가 나를 추천했어요. 나는 ‘안한다.’ 했거든요. 그런데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천 서류 만들어서 엉겁결에 이장 됐어요. 굳이 당사자가 하려하면 여자도 이장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감히 여자에게 내줄 자리는 아니었는데 그런 조건이 되니까 ‘맡기자.’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능력을 마을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여 이장으로 추대한 것인데, 그는 마을부녀회장을 맡은 적이 있었으므로 준비된 이장이었던 셈이다.

최영애 이장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작은 동네는 여성이 해도 무난한 일이라 여성이 하면 더 섬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 이장은 공지사항이 있어도 웬만해서는 방송을 하지 않는다. 율리마을은 주택가 깊숙이 공장이 들어서다보니 주변의 공장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세대 절반가량이 세입자들인데 대부분 인근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다보니 야간근무를 하고 낮에는 자야 하는데 방송으로 인해 잠을 방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이유로 최 이장은 주민 대부분이 알아야 할 사항은 방송을 하되 몇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방송을 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전달하고 있다. 이런 것이 여성만이 발휘할 수 있는 섬세함이며 주민을 위한 배려인 것 같다.

그는 여자 이장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와 같다.”고 말한다. “맞벌이 부부는 남자가 안 거들어 주면 밥하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다 해야 하고, 또 아무리 남자가 도와준다고 해도 여자가 일을 많이 해야 하듯이 남자가 이장을 할 때보다 일이 많다.”고 말한다. 그만큼 사소한 일들을 다 챙겨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전에 남자 이장할 때 마을에 초상이 나면 발인제 음식 생각도 안했거든요. 제가 맡은 뒤, 발인제 음식까지 장만해서 산소에까지 나르고 있어요. 바깥일, 안일 다 해줘야 되지요. 그래서 ‘이제는 못해주겠다.’ 했어요. ‘역대 남자 이장 발인제 음식 해 주는 것 있었나. 형편대로 하자.’고 했어요.

맞벌이 부부의 주부가 피곤하듯이 여자 이장도 그래요. 한국사회에서는 인식이 안 바뀝니다.”라며 우리 사회의 단면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12년 경력의 율리마을 최영애 이장은 “여자든 남자든 동네일을 맡아 보면 일일이 주민들 비유를 다 맞춰줄 수 없다. 한 가지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수월하게 하려면 안 되고 밀고 나갈 때는 과감히 밀고 나가야 한다. 어떤 때는 욕을 얻어먹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다만 누구든지 자신이 지닌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분명할 것이므로 일을 하는 데 있어 남녀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 이장은 농촌의 현실에 대해, “어느 동네 없이 촌마을에 노인뿐입니다. 실제 노인 돌아가시면 집을 다 팔지 자식들이 들어와 살지 않을 겁니다. 도시와 비교해서 의료분야가 제대로 좋습니까. 교통이 편합니까. 학교도 안 좋지요. 그렇게 되면 농촌이 다 붕괴됩니다.”며 닥쳐올 농촌의 현실에 대해 걱정은 한다.

아울러 “도시의 아파트처럼 앞·뒷집 살아도 잘 모르는 현상이 촌에서도 나타난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며 세입자들이 애향심을 가지며 잘 어울려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 3년째 이장을 하고 있는 효충마을 안경자

효충마을 이장 안경자(57)는 24살 되던 해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박성준(60)과 결혼했다. 친정은 상북면 석계리 위천마을이다. 효충마을은 총 34가구인데 동래정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신라 충신 박제상의 생가가 있던 곳이라 전하고 있으며 박제상과 그의 아들 박문량(백결)의 초상화와 위패를 모신 효충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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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충마을 이장 안경자(57) 씨

안 이장은 2006년 이장으로 선출되어 3년 째 마을일을 맡아보고 있다. 전임자가 10년 넘게 이장을 맡아 해 오고 있던 중 변화를 원하는 주민들의 추천으로 여성 이장이 되었다. 자연마을의 경우 유교적인 관습의 틀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 특징인데 여성이 이장이 된 건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안경자 씨는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이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다. 남편의 말 한 마디가 발단이었다. 동회(洞會)가 다가오고 주민들 사이에서 ‘이제는 이장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오가고 있었다.

그는 당시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을 때인데 남편이 “부녀회장 그거 말라꼬(무엇하러) 하노. 할라면 이장해라.”는 그 말을 듣고 농담 삼아 마을 주민 한 명에게 이야기 한 것이 ‘이장 선임’이라는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그 때의 일화를 이렇게 들려준다.

“동회가 있던 날, 부녀회장 전부 영덕으로 놀러 가고 없었는데 갔다 오니까 나를 이장 시켜 놓았다고 하는 기라. 나는 저녁에 늦게 와가지고 몰랐지. 이장을 바꾸어야 된다는 말이 나왔는데, ‘부녀회장을 이장 시켜라. 신랑이 그칸단다(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이래 말이 나와 가지고 이장이 된 기라. 아침 일찍 남자 4명이 ‘이장 뽑아 놨다.’고 하면서 왔는 기라. ‘절대로 안하다. 남자들 놔두고 난 안한다. 뒤에 잘했다 잘못했다 소리 안 들을란다. 전임자 한 해만 더 하도록 놔두소.’했는데도 ‘안 된다.’는 기라. 할 수 없다. ‘내가 해 보께요.’ 그래가지고 이장 됐다니까요. 안 한다는 사람 억지로 시키가지고. 하는 거는 하면 되지요.” 다소 의외의 상황이어서 당황했지만 주민들의 의견과 동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라 받아들이게 되었단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어쨌든 그렇게 그는 이장이 되었다.

효충마을 또한 여성 이장의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당제(堂祭) 지낼 때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딴 거는 없는데 당제 지낼 때 제일 어렵습니더. 여자니까 음식도 직접 만들어야 되고요. 그전에는 남자 이장할 때는 제사 지내려면 이장이 시장 봐 와서 부녀회장 보고 ‘음식 해라.’하면 마을회관에서 음식 만들고, 남자들이 제사 지내고 했는데 지금은 여자가 이장을 맡고 있으니 당제 장도 내가 봐야 하고, 음식도 내가 해야 되고, 제사도 지내야 되거든요.”라며 어려운 점을 토로한다.

안경자 이장이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또 있다. 그것은 당제를 앞두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궂은일 보는 것은 삼가는 것이 그것이다. “당제는 몇 년 없이 몇 달 궂은 일 안 보고 했다 아입니꺼. 클 때 보니 그래 하더라고요. 이 동네도 늘 그렇게 해 왔는데, 요즈음은 ‘3일이다. 3일만 궂은일 보지 마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할매들은 ‘석 달은 안 봐야 한다.’해서 석 달은 가립니더.” 해서 문상 갈 일이 생겨도 사정을 이야기 하고 조의금을 대신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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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제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가려야 되는데 혹시라도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장 책임으로 돌아올까봐 석 달은 꼭 가립니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강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읽을 수 있다.

효충마을은 그가 여성 이장이니까 부녀회장 겸해야 한단다. “안 할 수가 없잖아요. ‘내가 이장인데’ 이렇게 못하고요. 할머니들도 ‘여자니까 다 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 음식 하고 설거지, 전체를 내가 다 해야 되니 너무 힘들더라. 다 나이 많은 노인인데 젊은 내가 안 할 수도 없고, 그런 점이 힘들다. 책임지고 있으니 안 할 수도 없고……” 그러고 보면 여성 이장은 1인 몇 역을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과 체력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 마을 이장, 여자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최영애 이장과 안경자 이장의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마을 부녀회장을 역임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작은 마을에서는 “특별히 잘 나서 하는 게 아니라 돌아가면서 부녀회장을 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마을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장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남편이 옆에서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편의 배려와 도움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최 이장과 안 이장의 남편은 공무원 출신이어서 문서 작성과 처리 절차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남편들의 외조가 빛을 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율리마을 최영애 이장은 “서류 갖다놓으면 남편이 알아서 다 해 준다. 면사무소나 시청에 있었기 때문에 서류 작성하는 것은 나보다 훤하니까 다 봐준다.”면서, “전국에서 이장 보좌관 있는 사람 나 밖에 없다.”는 우스갯말도 한단다. 또 수도가 고장 났을 때는 직접 재료를 사다가 함께 고치기도 했단다.

효충마을 안경자 이장은 이장으로 선출된 후에 ‘일을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했을 때, “못할 것 없다. 내가 봐 줄게 해라.”하는 남편의 말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남편 박성준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되던 해의 9월에 국가공무원 시험 1등으로 합격하여 23년간 근무했다고 한다.

최 이장이 “앞으로 봐서는 이제 여성 이장이 많아야 한다.”면서, “여자라서 못할 것 없어요. 자기가 능력 있으면 하면 됩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어서 “여성 이장은 남자보다 통은 작지만 마을 살림도 영 야무지게 살고 10원이라도 속이는 것 없다. 꼼꼼히 챙기고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필요 없는 지출을 줄여 나간다.”며 주부 특유의 알뜰한 살림 솜씨를 그대로 마을 살림살이에도 발휘하고 있음을 내 보인다.

안 이장도 “내가 해보니까 여자가 해야 되겠더라. 마을 살림을 너무 알뜰히 살게 되어 좋다.”면서, “내가 맡아서 알뜰히 하니까 ‘잘한다.’ 합니다. 10원도 필요 없는 돈 안 쓰거든요.”라며 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음을 자랑한다.

여성 이장,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공공의 일을 보려면 10원 한 장이라도 투명해야 합니다. 10원이라도 돈에서 투명하지 못하면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이장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일이라도 금전관계는 깨끗해야 합니다.” 어디 마을일에만 국한된 말이겠는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모르는 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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