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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이어가는 사람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D020103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향토사연구회

웅상은 지역적으로 회야강 상류 유역의 풍부한 수원과 비옥한 땅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농경사회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경작지의 확대로 가족단위 노동에서 마을단위 협업 노동력의 필요성에 의해 후대에 와서 ‘농청’이라고 하는 조직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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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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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청

장원놀이는 조선 후기 소농경영(小農經營)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을단위로 두레형식으로 조직된 농민단체에서 공동 김 메기의 작업 과정에서 생겨난 농경문화이다. 농청은 이 농민단체를 수용하는 기관으로 구성요원은 좌상(座 上), 행수(行首), 수총각(首總角), 령각수(令角首), 방목감독(放牧監督), 보감독(洑監督)으로 조직하고 있다.

두레는 조선 후기 벼농사에서 행해지는 모내기와 김매기에서 효율적인 노동관리 체계를 조직화하여 운영하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김매기는 일 년 농사일 중 가장 힘겨운 일이고 집중적인 노동력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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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로 만든 고동

대나무로 만든 고동(고동은 손가락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대나무를 5㎝간격으로 잘라 밑쪽은 뾰족하게 만들어 10손가락에 끼고 논의 풀을 메는 기구로, 양철로도 만들었다)을 10손가락 끝마디에 끼고 벼 포기 사이의 흙을 이게고 풀을 매는 섬세한 작업으로 힘이 많이 들어야 한다.

제초작업은 초벌, 두벌, 망시매기의 3번을 거쳐야하며 대개 7월 7석경에야 겨우 마치게 된다. 두레의 최대 축제라 할 수 있는‘고동 씻기’가 7월 중순경을 전후하여 시행되었다. 웅상농청장원놀이는 조선 후기로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웅상 지역의 촌락에서 형성된 두레형식의 농청(農廳)이 조직되어 농가마다 성인 남자 1명이 참가하여 벼농사에서 가장 힘겨운 김매기 작업에 공동 참여하여 능률성을 제고하고 독특한 농촌문화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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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 씻기

그 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을 선정하여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놀이가 시작된다. 장원놀이 행사의 문헌자료는 명곡리 교동부락 『농청초기(農廳抄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자료는 옛날부터 있어왔으나 실제적으로 정리한 것은 1969년부터 1987년간의 자료가 정리되고 있다. 교동마을의 농청에는 좌상, 행수, 들임사, 방목감독, 보 감독, 수총각 등의 소 임자가 있고 적임자는 추대형식으로 선출하여 운영하였다. 좌상(座上)은 농청의 고문역으로 마을에서 가장 덕망이 높은 어른이고, 행수(行首)는 농청의 대표자로 영농과 통솔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들 임사는 영각수로서 영각을 불어 농사일의 시작과 마침, 참 때와 점심시각을 알리고 영농에 관한 모든 일을 알린다. 수총각은 공동 작업을 통솔하고 진행하는 작업을 총괄하여 유능한 농사꾼으로 대개 나이가 들어도 장가를 가지 못한 총각이 맡는다. 방목감독은 가축의 방목을 감독하고 방목으로 피해가 있을 때는 피해의 조정판결을 담당한다. 보 감독은 저수지인 보의 보수 및 물의 쓰임을 책임진다. 명곡 농청의 우두머리인 좌상은 조선 말에는 이종필[1861~1925] 님이었고 일제 때는 박정호[1875~1935] 님이었다. 그 이후 현재까지는 박철수 님과 박장식 옹이 좌상 역을 맡고 오다가 지금은 김진태 님이 맡아 장원놀이를 계승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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