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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속 아버지들의 행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D030203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원대

명동에 위치한 양산가정폭력상담소(소장 홍혜숙)에서는 ‘아버지학교’를 개설하고 4월 29일부터 5월 27일까지 매주 화요일 5회에 걸쳐 교육을 실시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야 자녀가 행복해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이 교육은 아버지의 자아 이해, 배우자 이해, 자녀 이해, 가족체계 이해, 아버지 사명과 리더십 훈련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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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가정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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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학교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성격 검사를 통한 자신의 성격유형 이해, 성격의 장점과 단점 발견, 남성과 여성의 차이 이해, 아내의 이해, 자녀의 발달심리 이해, 행복한 자녀 만들어 주기, 가계도 그리기, 가족 이미지 그리기,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아버지 리더십, 진정한 아버지의 실천 서약서 작성 등이었다.

▶ 가정을 세우는 사람들, 웅상 아버지학교

양산가정폭력상담소는 이번 웅상 아버지학교를 열면서, ‘결혼해서 자녀를 낳으면 저절로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나 막상 자녀를 갖게 되면 아버지 노릇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다운 아버지, 그리고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면서도 동시에 큰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라며 가정에서의 아버지 역할과 책임에 대해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자녀가 있으면 모두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그들을 좋은 자녀로 양육하고 아버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해도 자격증이 필요한데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자녀양육이라는 ‘직업’을 가지는데 어떻게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부모는 교육을 통해서 배출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부모도 없고 교육을 안 받아도 되는 부모도 없습니다. 성공적인 좋은 부모의 역할은 교육을 통해서 배양됩니다.’라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양산시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예비 아버지를 대상으로 한 이 교육에서는 12명의 정원을 초과하여 13명이 수강을 했다. 명동에 살고 있는 젊은 아버지 박성훈(34) 씨도 수강생 중의 한 사람이다.

▶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 9년째인 세 아이의 아버지

박성훈 씨는 전북 부안에서 고교 졸업 후, 실내디자인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광주에 있는 대학에 지원을 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비싼 등록금을 보고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돈이면 어려운 집안의 1년 생활비를 하고도 남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뒷받침이 안 되면 안 되잖아예. 집안사정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못 가겠더라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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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씨

박성훈 씨는 실내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돈을 벌기로 했다. 시작은 무전여행부터였다. 강원도를 거쳐 충청도, 경상북도까지 다니면서 일해서 돈 받으면 다시 다니고, 6개월 정도 길 위에서 먹고, 자는 그런 생활을 했다. 그 후, 친척 중에 공사장 책임자가 있어서 무턱대고 거기로 들어갔다. 일당 4만 5천원 받으며 일하면서도 그는 오로지 빨리 목수 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4년 뒤에는 하루에 12만원, 1급 목수들이나 받는 최고의 대우를 받기에 이르게 된다. 단기간에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는 “목표가 생기니까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박성훈 씨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전주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했다. 의경에 지원한 이유도 간단했다. “지원을 해야 빨리 군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제대한 다음날부터 곧바로 주유소에서 일했다. 주임으로 3개월 정도 일했을 때 사장으로부터 “잘 하면 소장으로 임명해 주겠다.”는 제의도 있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 또 한 곳에 매이는 게 싫어 이를 거절하고 나오게 된다. 장차 장사를 해보고자 밑천 마련을 위해 다시 노동일을 시작했다. 목표액을 마련하기까지의 기간을 4,5년 정도로 잡은 뒤, 땅을 파서 기반부터 다져보리라 각오로 밑바닥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생활이 4년 째 접어들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그런 일만 할 만하냐?”는 질문에 그는 “계속은 안하고 제가 생각한 목표의 액수만 모이면 그만두고 장사 할 겁니더.”라고 했더니, “그라지 말고 이쪽(당시 현대자동차서비스)으로 와라.”면서 직장을 옮길 것을 권했다. 사실, 노동은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또 사람들 인식이 좋지 않은데다 당시 ‘화이트칼라’가 굉장히 좋게 보일 때여서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게 되었다. 게다가 일을 하면서 사고도 몇 번 있었고, 또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라 과감하게 전직하기로 결정하고 양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직장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부모님도 어디 가서 아들이 속칭 ‘노가다’ 일을 한다는 말을 못하셨단다.

그의 신조는 ‘후회하지 말자.’이다. 이에 대해 “그것이 의외로 편하고 간단한 하거든예. 하고나서 후회를 하기도 하고, 안 해서도 후회를 하는데, 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하는 편입니더. 왜냐하면 후회를 안해야 하니까예. 그래도 일단 결정되면 후회는 안합니더. 그런 저를 두고 집사람은 너무 생각이 많다고 하긴도 합니더.”라며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그의 일면을 알려준다.

그가 일하는 곳은 현대모비스 부산부품사업소 물류팀으로 올해(2008)로 10년째이다. 처음에는 물류 한 분야를 맡아 담당업무가 생소하여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총괄 팀장을 보좌하면서 물건이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물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박성훈 씨는 의경에 입대하여 자대 배치를 받은 한 달쯤에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인연’을 만났다. 바로 아내 김은아(34) 씨를 만난 것이다. “처음 보는 순간 광채가 난다고 그러지예. 눈이 부셔서 똑바로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더.”라며 처음 본 그때의 감동을 회상한다. 당시 김은아 씨는 파출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막 의경생활을 시작한 박성훈 씨가 “많이 불쌍해 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이 사귄 지 6년 째 되던 해에 김은아 씨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을 때, 박성훈 씨는 “결혼하려면 전세방은 하나 있어야 되지 않느냐.”면서 “좀 더 기다렸다가 돈 벌어서 하자.”고 했단다. 그런데 “알았어요. 기다려 줄게예. 대신 제가 6년을 기다렸는데 성훈 씨도 나만큼 기다려야 합니더.”라는 은아 씨의 폭탄 발언에 “안 되겠다.” 싶어 처가에 가서 “제가 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혼자 다녔고, 이제는 안정적인 직장 구했으니 집에서 빨리 결혼하기를 원합니더.”라고 말씀드리고, 본가에 가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여 결혼에 이르게 된 일화를 공개했다.

그들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지 6년 째 되는 해인 1999년 10월 17일 일요일에 결혼했다. 그전부터 “우리 만난 날 결혼하고 남들처럼 궁합을 본다든지 하는 건 없다.”고 얘기 했는데 그 말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해가 딱 운이 좋았던 게 음력으로 9월 9일이어서 같은 숫자가 들어있는 길일(吉日)이라고 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예. 인연이란 게 참 묘해서 우리가 날짜도 안 보고 말했던 게 딱 맞아 떨어졌어예.”라며 천생연분임을 자랑했다. 부부는 동갑내기로 25살에 결혼하여 지금은 두 딸 예봄(9), 예령(5)과 아들 현빈(3)을 두었다. 출산을 꺼리는 젊은 부부들에 비하면 국가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애국자 부부인데, “솔직히 저는 넷 낳자고 했습니더.”며 아직도 진행 중임을 암시했다.

▶ 항상 당신이 있어 행복한 나

아버지학교에서는 수강생 모두에게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주라.’는 과제를 냈다. 박성훈 씨도 예외 없이 숙제를 해야 하므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홍혜숙 소장은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과제 수행 여부와 쓸 때의 느낌, 또 그 편지를 받은 아내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물어 보았다. 맨 먼저 성훈 씨가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편지 쓴다는 자체도 좀 서먹했고요. 예전에는 메일도 보내고, 생각해보니까 얼마 전에는 문자 메시지도 자주 했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문자 메시지보다도 전화만 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예. 편지란 걸 다시 써 보니까 군대에서 집 사람하고 사귈 때 생각이 났지예. 그때는 다섯 통 받으면 저는 겨우 한 통 답장하고 그런 식이다보니까 쓰는 게 꺼칠하더라구요. 어떻게 쓸까 막막했는데 두 장 채우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정리가 잘 안되었는데 의외로 반장쯤 쓰고 나니까 슬슬 나오데예. 두 장 다 채워 가지고 출근할 때 주고 갔거든요. 퇴근 후 내심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아직 못 읽었다.’ 그라데예. 그 다음날 다시 퇴근해서 물었는데 아내는 ‘괜찮았다.’라는 한 마디 뿐이었어요. 제가 기대를 너무 크게 해서 그런지 실망감도 있었지만 그 말 하는 표정을 봤거든요.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라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홍혜숙 소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과제로 편지 써서 아내에게 전할 때 마음이 어땠어요?”

“콩닥콩닥 뛰었지예.”

“콩닥콩닥 뛴다는 게 무슨 의미예요?”

“글쎄요. 예를 들자면 집사람과의 첫 데이트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설레고 기쁘고 흥분되었다는 뜻이예요?”

“예.”

박성훈 씨가 연애시절을 떠올리면 썼던 편지 내용은 이렇다.

당신이 있어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웃는 모습이 예뻐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따듯한 마음이 날 행복하게 합니다.

당신의 포근한 가슴으로 날 안아주어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눈이 날 행복하게 합니다. 당신의 맑고 고운 눈을 바라보며 내일의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어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고운 손이 있어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곱고 따스한 손으로 차가워진 내 마음을 감싸주어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앵두 같은 입술이 날 행복하게 합니다. 당신의 입술로 나에게 사랑 고백을 하며 키스해줘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내 아이를 낳아주어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아이들은 예쁘고, 사랑으로 키워줘 난 행복합니다.

당신의 고운 목소리로 나에게 노래를 들려줘서 난 행복합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날 용서해줘 난 행복합니다.

당신이 아름다워 난 행복합니다.

당신이 나와 결혼해줘 난 행복합니다.

난! 당신과 같이해서 행복합니다.

못 쓰는 글씨 끝까지 읽어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많이 힘들지? 니 생각하며 편지를 쓰려니 나 갑자기 눈물이 나려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감기에 걸리고도 아침, 아니 새벽에 우유며 신문 배달하랴 아이들 뒷바라지에, 철없는 남편 사랑해주고 뒤치다꺼리에 많이 힘들 텐데 내색도 않는(약간은 하지?) 당신의 그 모습이 날 더 채찍질하는 것 같아. 더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어. 더 당신과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있어. 내가 더 사랑하고 더 아끼고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당신과 아이들을 사랑할게.

그저 사랑한다는 표현만 어색하게 하고 살았던 것 같아. 그 이상의 다른 게 있을 법도 한데 무지한 내가 표현하기엔 그저 어두운 들판을 헤매는 것 같네.

은아야.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마음으로 진심으로 널 사랑해. 가끔 철없이 보여도 내 마음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자주 편지 쓰도록 할게.

- 항상 당신이 있어 행복한 나

때로는 글이 말보다 더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것은 글이 말보다 솔직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편지가 세 아이를 키우면서 새벽에 일어나서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느라 심신이 지쳐있는 성훈 씨의 아내 은아 씨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는 “요즈음 대부분 표현을 잘 안 하잖습니까. 저도 편지는 결혼하고 손꼽을 정도인데 과제로 한 거지만 좋았습니더. 아내의 표정이 달라졌어예. 제가 가서 웃어주면 힘든 표정이 싹없어져예.”라는 성훈 씨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참 행복한 부부이다.

▶ 깜깜한 바다 저 먼 곳, 불빛 깜박이는 등대 하나

박성훈 씨가 아버지학교 수강 신청을 하게 된 동기는 “내가 아버지로서 잘 하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고 싶어서.”였단다. “솔직히 배운다고 하기보다는 자만 아닌 자만이 있었지요. 아버지로서 만점은 아니지만 상위권에 들 정도라고 생각하고 갔습니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고 아직은 어리지만 비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나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이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하고 있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예를 들어서 농사지을 때 퇴비를 하고 땅을 파고 뒤엎는 기본 작업이었던 것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그에게 아버지라는 의미는 어떤 지를 물었다. “아버지……”라며 한참을 망설인다. 그런 뒤, “아버지학교 교육 전에는 아버지는 항상 올발라야 되고 항상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아야 되며, 아이들이 표현을 안 해도 마음을 어느 정도는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더. 아이들을 위해서는 모든 걸 희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예. 저의 아버지가 그러셨기 때문에 그런 마음만 있었습니더. 그런데 교육 후에는 그것은 기본이고, 그 아이들이 투정부리는 것 하나에도 그 말속에 담긴 것을 느껴야 되며, 그때 내가 아이를 어떻게 어루만져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더.”라고 말한다.

박성훈 씨는 이어서, “교육을 받은 후에 시야가 확 넓어지고, ‘좋은 아버지란 이거다.’라는 답을 솔직히 못 내겠습니더. 지금까지는 별 하나 없고 달도 없는 깜깜한 밤바다 위에서 오로지 돛만 하나 걸어놓고 그냥 엔진에 시동만 걸고 무조건 앞으로만 가는 거였습니더. 배를 타고 가 보면 진짜 깜깜합니더. 그런 바다에서처럼 제 자신 솔직히 앞으로 가는 것인지 제자리 돌고 있는 것인지 몰랐습니더. 그냥 가는 것에 불과했는데 이 교육을 받으면서 저 먼 곳에 불빛 깜박이는 등대 하나를 보았다고나 할까예. 무조건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 마음의 목표 지점을 본 것입니더. ‘저쪽으로 가야 한다.’ 그것만 잡아진 거지예. 가는 동안에 여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거는 제가 파도를 넘어야 하고 암초를 만나면 비켜 가든지 뚫고 가든지 그것은 제가 해야 할 일인 만큼 숙제로 남은 거지예.”라며 교육 후의 소감에 대해 말한다.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으면서 점점 생각난 건데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일단은 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더. 제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내가 난데, 내가 아빠인데’라는 권위의식보다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거거든요. 또 아이들이 지금 우물 속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곳을 나갈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 주는 몫을 해 주어야 하는 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더. 제 무릎과 어깨와 머리를 밟고 올라가야 그 담을 넘을 수 있듯이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게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더.”라며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이어서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솔직히 집사람 일을 많이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예. 제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나 쉬는 날이면 무조건 집안일을 제가 다 합니더. 평일에도 집에 가면 기본적인 청소나 빨래도 하고, 아이들 목욕도 시켜주면서 집사람의 일을 거들어주고 있고예. 옛날에는 ‘남자가 부엌 들어오면 안 되네.’했는데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아내도 집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그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벽돌 한 장을 덜어서 제 짐에 놔 주는 거지예. 제가 집사람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그겁니더.”라고 한다.

젊은 아버지 박성훈 씨. 그는 “저 자신이 많이 바뀌려고 합니더. ‘내가 변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변화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교육을 받으면서 나를 변화시켜 나갈겁니더.”라며 스스로의 다짐을 말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 될 것이 분명하다.

‘좋은 아버지가 있는 가정은 행복하고, 좋은 아버지가 있는 자녀는 든든하며 좋은 아버지가 있는 가정은 어려움을 이기는 힘이 강하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이름은 어머니이지만, 가장 든든한 이름은 아버지입니다.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향기가 날 수 있는, 거기에 마음까지 통하는 아버지가 그리운 시절입니다.’라는 아버지학교의 교재에서 본 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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