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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천을 내려다 보았던 쌍벽루의 위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E010205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종봉

양산읍성은 우리의 기억 저편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양산읍성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려졌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중 아름다운 영남의 모습을 자라하던 8루 중의 하나인 쌍벽루양산읍성의 마을에 있었다. 쌍벽루(雙碧樓)양산읍성 내의 관청의 부속건물, 즉 객사의 서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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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벽루

객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누각 아래에는 푸른 물과 푸른 대나무가 서로 비추어 줌으로써 쌍벽루라 하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던 쌍벽루 또한 양산읍성과 함께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쌍벽루는 영남 8루중의 하나로 본래의 이름은 쌍벽루가 아닌, 쌍계루(雙磎樓)였으며, 벽계루라고 기록되어 있다.

쌍계루에 현재 불려지는 쌍벽루로 이름이 바뀌게 된 일화가 있다. 그때는 고려시대 말인 1381년(우왕 7)이었다. 왜적이 양산에 침입하여, 불을 질러 양산 백성들이 땅을 잃고 동평(오늘날의 당감동 일대)에 성을 세우고 옮겨가서 살았다. 이후 1392년(임신년) 10월에 양산으로 임명된 진평원이 다시 오늘날의 양산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다시 양산으로 돌아온 양산읍성을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진평원은 양산부의 어른신들과 의논하여, 이 루를 새롭게 하기로 하였다.

그 옛터를 살펴보고 조금 북쪽으로 옮겨서 더욱 높게 하였고, 일을 제때 시키고,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며, 오직 노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켰다. 공사가 끝나자 왕실에서 보내온 사신이 루에 올라가 풍경을 보고 푸른 물과 푸른 대나무가 서로 비추어 준다고 이름을 쌍벽이라 고쳤다고 전해진다. (이상 『양산읍지초』 누정 쌍벽루조)

쌍벽루는 황산강과 대나무, 그리고 누각의 웅장함과 어울려 화려한 경관을 가졌고, 고려 조선시대에 지식인들이 이곳에 올라가면 자연과 루의 흥취에 졌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것이 고려말과 조선시대 많은 인물들이 시를 남긴 이유였다. 쌍벽루의 현재 위치는 양산호텔 서편쪽, 즉 조선시대 양산천과 연결된 곳으로 현재 중앙동사무소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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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의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쌍벽루

18세기 혹은 19세기 초에 제작된 양산군 지도에는 쌍벽루는 모두 그려져 있다. 그 시기 쌍벽루는 동헌과 객사의 모습보다 웅장하였다. 하지만 지금 쌍벽루가 있던 자리는 도시화로 인해 완전히 그 흔적이 사려졌고, 그나마 양산천과 멀어져 옛날의 그 영화로운 모습은 전혀 간직하고 있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다만 쌍벽루는 영남 8루의 하나로서 기억되고, 양산 읍내의 아름다운 자연 조화만을 생각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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