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성흔의 묘.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자 성흔(成炘)[1555~1626]은 벼슬을 버리고 양주로 낙향하였다. 이후 증조할아버지 성희옹의 처가인 대흥군 원동면 가좌울[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로 낙향하였다. 귀곡리에 정착한 성흔은 ‘모든 재앙을 추방하고 덕을 심는다.’라는 뜻으로 집...
조선 후기 예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윤봉구(尹鳳九)[1683~1767]는 예산군 덕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인물로, 한원진(韓元震)과 함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을 주장하였으며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이다.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가야산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아홉 곳[관어대·옥병계·습운천·석문담·영화담·탁석천·와룡담·고운벽·옥량폭]을...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정치방(鄭治邦)[?~?]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宗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참판에 증직된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공산정씨가 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기묘사화 이후 정빈(鄭濱)[?~?]이 고덕면으로 입향한 이후이다.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정빈의 아들 정치방(鄭治邦)[?~?]이 인조반정 이후 공주에서 이...
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흔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시조는 고려 때 호장중윤을 역임했던 성인보(成仁輔)이다. 호장부정을 지낸 성숙창(成淑昌)의 아들이다. 당나라의 학사 성경(成鏡)이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정착하였는데, 성경의 후손이 번성하여 창녕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창녕성씨는 고려 때 성공필(成公弼)과 성한필(成漢...
현덕유를 시조로 하고 현석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창원현씨(昌原玄氏)는 연주현씨(延州玄氏)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이다. 시조 현덕유(玄德裕)는 연주현씨의 시조 현담윤(玄覃胤) 셋째 아들로 1186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이부(吏部)와 예부(禮部)의 시랑(侍郞)을 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로 나갔다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