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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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이후부터 고려 멸망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3개 군현이 있었다. 인주(仁州), 온수군(溫水郡), 신창현(新昌縣)이 그것이다. 지금의 아산시 중심을 통과하는 곡교천을 기준으로 이북에 인주가 있었고, 이남 동편에 온수군, 서편에 신창현이 있었다. 3개 군현은 고려시대에 천안부(天安府)[현재 충청남도 천안시]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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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기량현(祁梁縣)은 신라시대 웅주(熊州) 탕정군(湯井郡) 영현(領縣)의 하나로, 백제시대 굴직현(屈直縣)을 757년(경덕왕 16) 기량현으로 변경하였다.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일대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권36 잡지5 지리3에 "탕정군은 본래 백제의 군이었는데, 문무왕 11년 당나라 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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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신창현(新昌縣)은 백제시대 굴직현(屈直縣)으로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 기량현(祁梁縣)으로 고쳐 탕정군(湯井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신창현으로 개칭하였으며,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일대에 해당한다. ‘신창(新昌)’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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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도 위치해 1년에 3차례씩 돌림병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여러 신에게 여제를 지내던 제단. 여단(厲壇)은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해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나 지방의 군현에서 제사를 지내주던 토석단(土石壇)을 말한다. 조선시대 아산현, 신창현, 온수현[온양군으로 승격]에는 각각 여단이 있었다. 조선 전기의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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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의 역사에 대한 개관. 충청남도 아산은 조선 초에 온양군·신창현·아산현으로 편제되어 충청도관찰사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아산현은 고려 때 아주를 1413년(태종 13)에 개칭한 것이다. 1459년(세조 5)에 현을 줄여서 온양·평택·신창 등 세 고을에 나누어 붙였다가 1465년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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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에 있었던 조선시대에 축조된 옛 저수지. 연방제(蓮防堤)는 아산시 배방읍 공수4리 삼거리 동쪽에 있던 옛 방죽이다. 5,000평[16,528㎡]가량 되는 연못에 연이 많이 자라서 ‘연방제’라고 하였다.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연방제를 축조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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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년(고려 고종 43)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몽골군과 싸워서 크게 이긴 승리.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기 시작하여 수십 년간 전쟁이 지속되었는데 아산 일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256년 6월에 온수현(溫水縣)[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장군 이천(李阡)이 지휘한 고려군이 몽골군을 크게 격퇴시킨 대첩이 온수대첩이다. 13세기 칭기즈칸(Chingiz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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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온수군(溫水郡)은 고려 전기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관내에 있었던 행정구역 중 하나이다. 온양온천이 있는 아산시 중심부 일대, 구 읍내 및 곡교천 남쪽 지대가 당시 온수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936년(태조 19) 9월에 후백제의 항복을 받아 통일을 완성하였다. 왕건은 통일을 완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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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3동(溫陽三洞)은 권곡동(權谷洞), 모종동(毛宗洞), 신동(新洞)의 3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지며, 아산시 중심 시가지의 동북부에 있는 주거단지, 농경지가 복합된 시내권의 신흥 주거지역이다. 면적 기준으로 주거 및 상업 지역과 주로 논으로 이루어진 들판이 대략 절반씩이다. 북쪽은 곡교천을 경계로 염치읍과 마주보고, 동쪽은 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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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4동(溫陽四洞)은 실옥동(實玉里), 방축동(防築洞), 점량동(点梁洞), 득산동(得山洞), 배미동(培美洞)의 5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진다. 옛 온양시의 서부 지역에 해당하며, 동쪽은 아산로와 남산 줄기를 경계로 온양1동과 온양2동, 온양5동의 용화동, 신인동과 접하고, 남쪽은 온양5동의 신인동, 기산동과 맞닿아 있다. 서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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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5동(溫陽五洞)은 용화동(龍禾洞), 신인동(信仁洞), 초사동(草沙洞), 기산동(岐山洞)의 4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진다. 옛 온양시의 서남부 지역에 해당하며 북쪽으로는 아산시 중심지역인 온양1동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온양6동과 길게 맞닿아 있다. 남쪽은 황산 줄기를 기준으로 송악면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남산 줄기와 황산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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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6동(溫陽六洞)은 읍내동(邑內洞), 좌부동(左部洞), 장존동(長存洞), 법곡동(法谷洞), 풍기동(豊基洞), 남동(南洞)의 6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시대 온양의 중심지인 읍내동이 포함되어 있는 곳으로 아산시의 전통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설화산 산줄기를 경계로 배방읍 공수리, 신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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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 일대와 탕정면, 배방면, 송악면 일부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온양의 온천은 옛날부터 병에 효험이 있기로 유명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200여 리[약 78.5㎞]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실의 일원이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자주 찾았다. 왕의 잦은 온양행은 현(縣)에 불과했던 온양이 군(郡)으로 승격되는 결정적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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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활약하였던 수군 장수.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항전할 때 온수현(溫水縣)[현재 충청남도 아산시]에 몽골병이 난입하였다. 이에 장군 이천(李阡)이 온수현에서 몽골군과 싸워 승리하였다. 이천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아들은 이자원(李子蒝), 손자는 이언충(李彦冲), 증손자는 이광기(李光起)이다. 고려 고종 대에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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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유지되던 시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아산시는 조선시대 때에 아산현(牙山縣), 신창현(新昌縣), 온양군(溫陽郡)으로 각각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모두 인접 지역이었던 만큼 행정구역 설정부터 군사제도, 교통 및 통신 등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았다. 또한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호구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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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탕정군(湯井郡)은 백제시대 아산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조직이다. 아산 지역이 탕정군으로 편제된 시기는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지만, 사비기(泗沘期)에 지방통치조직으로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되었으므로 이때 탕정군으로 편제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영현(領縣)으로 아술현(牙述縣)과 굴직현(屈直縣)을 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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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초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인 671년(문무왕 11) 탕정군(湯井郡)을 탕정주(湯井州)로 승격시켜 총관(摠管)을 임명하였다가 681년(신문왕 1) 다시 탕정군으로 격하시켜 웅주(熊州)에 예속시켰다. 통일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이르러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9주5소경제(九州五小京制)로 정비하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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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서 공공 문제의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의 제반 활동과 상호작용 과정. 행정의 수행은 정치 권력을 배경으로 하지만 공공 서비스의 생산 및 공급은 정부가 독점하지 않는다. 즉, 준정부기관 및 민간 부문과의 상호작용 및 협력적 관계를 통해 공공 서비스를 생산, 공급, 분배한다. 넓은 의미의 정부는 국가 통치기구를 의미하며 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