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면 온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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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곽창영(郭昌榮)[1878~1950]은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현 아산시 송악면]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곽창영은 1878년(고종 15) 9월 21일 아산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상민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송악면 거산리 55번지에 거주하였으며, 그 밖의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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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신치공(申致公)[1878~1932]은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일어난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신치공은 1878년(고종 15) 아산군 송악면 동화리 44번지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31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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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남선 개통과 온양온천의 개발에 따른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의 근대적 신시가지로의 환경 변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에 존재했던 온양면(溫陽面)은 지금의 아산시 온양1~6동 일원이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아산, 온양, 신창 3개 군(郡)이 아산군으로 통합되었고, 온양면에 아산군청·온양경찰서·공주지방법원 온양출장소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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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형평사에서 활동하며 사회운동을 전개한 인권운동가. 1929년 4월 형평사(衡平社) 본부 중앙집행위원, 지방순회위원에 선임되면서 형평사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32년 11월부터 조선중앙일보 아산지국장으로도 활동하였다. 이한용(李漢容)[1904~?]은 백정(白丁) 출신으로 중류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충청남도 온양면 읍내리[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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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의 행정구역, 인구 추이, 도시와 촌락, 산업, 교통 등의 인문 지리적 조건. 아산군은 조선시대 3개 군현[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1914년 통합되어 생겨났으며, 온양온천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1986년 온양시가 분리 독립하였는데, 온양시는 충청남도에서는 천안시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된 시(市)로 온양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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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교육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문인이자 교육자. 임경재(任璟宰)[1876~1955]는 본관이 풍천(豊川)이며, 호는 원인(圓人)이다. 1876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으며, 휘문고등보통학교장을 역임하였고 조선어연구회 창립 멤버였다. 충청남도 아산의 문인이자 교육자이다. 임경재(任璟宰)[1876~1955]는 1876년 경기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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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 충청남도 아산시는 남한의 중서부 지역에 입지해 있고, 충청남도의 북동부 아산만 연안에 면하여 있다. 아산시는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 서쪽으로는 충청남도 당진시와 예산군, 동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 그리고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공주시와 각각 접하고 있다. 아산시는 북쪽에서 아산만과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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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한양수(韓良秀)[1876~1950]는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일어난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한양수는 1876년(고종 13) 아산군 송악면 거산리[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