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94
한자 慶州 李氏
이칭/별칭 경주 이씨 익재공파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문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519년연표보기 - 이전 입향
입향 시기/일시 1547년연표보기 - 이몽규 입향
입향지 경주 이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이몽규 묘 -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 독정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이몽규 신도비 -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 지도보기
성씨 시조 이알평(李謁平)
입향 시조 이전(李筌)|이몽규(李夢奎)

[정의]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전과 이몽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연원]

경주 이씨는 신라 건국의 주축을 담당한 6촌 중 하나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알려진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고려 시대 좌정승(左政丞)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을 중시조로 한다. 이후 이전(李筌)과 이몽규(李夢奎)[1510~1563]가 충청남도 보령으로 입향하게 되었다.

[입향 경위]

이제현의 현손(玄孫)인 이숙지(李俶祉)가 1454년(단종 2) 음서(陰敍)로 석성현감(石城縣監)이 되었지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다음 해 홍산(鴻山)[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쪽 마전곡(麻田谷)에 은거하였다. 이숙지의 아들 이손수(李孫秀)는 이인도찰방(利仁道察訪)에 임명되었지만 출사하지 않았고, 손자 이구령(李龜齡)은 생원이 되었지만 연산군 대 관직에 출사하지 않았다. 이숙지의 증손자 이전이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서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출사하지 않고 남포현 내동(內洞)에 은거하면서 세거를 시작하였다. 입향 이후 풍천 임씨 임효손(任孝孫)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또한 이몽규는 1540년(중종 35) 사마시에 합격하고 1547년(명종 2) 보령의 유력 가문인 광산 김씨 김극성(金克成)의 사위가 되면서 처가 별장이 있는 보령현으로 입향하였다. 이렇게 입향한 뒤에 경주 이씨는 보령 지역의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 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경주 이씨는 4,026명으로 파악된다.

[관련 유적]

신안서원(新安書院)은 1797년(정조 21) 창건된 서원이다. 하지만 창건된 해에 서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철폐되었다가 이후 1807년(순조 7)에 다시 설립되면서, 주자(朱子)·송시열(宋時烈)·한원진(韓元震)·권상하(權尙夏)·백이정(白頤正)·이제현을 제향하였다. 이후 이정영·이학영 등의 학자와 이규덕 등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지만,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 서원 위치는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신흥리 70번지 일대에 있었다. 이몽규 묘는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 독정에 있으며, 이몽규 신도비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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