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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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경에 간행된 청송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서활의 시문집과 책판. 청송 출신의 학자 서활(徐活)[1761~1838]의 시문집으로 1850년경에 간행되었다. 목판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책판은 달성서씨(達城徐氏) 석간정 종택에 소장되어 있다. 서활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청여(淸如), 호는 매야(邁埜)이다. 권렴(權濂)을 따라 배웠고, 권렴이 죽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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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청송 출신 서활의 저서와 책판. 청송 출신의 학자 서활(徐活)[1761~1838]이 경전에 격훈을 붙인 저서와 책판으로, 1843년에 아들 서원모가 간행하였다. 서활의 본관은 달성, 자는 청여(淸如), 호는 매야(邁埜)이다. 권렴(權濂)의 문인으로 성장하여 김종덕(金宗德)에게 수학하였다. 관직에는 뜻이 없어 오로지 위기지학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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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원모가 주왕산에 관련된 문헌 기록을 수집하여 편찬한 도서. 『주왕산지(周王山志)』는 청송 출신의 학자인 서원모(徐元模)[1787~1858]가 주왕산의 기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책의 항목은 주왕 설화와 기행문, 시, 읍지로 편성되어 있는데, 설화는 서원모의 아버지인 서활(徐活)이 기록하였다. 기행문은 신집(申楫) 등 청송 출신 인사와 김성일(金誠一) 등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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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과 관련된 1945년 이전 편찬된 기록 자료와 서적. 오늘날 청송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청송과 진보로 나뉘어 있었다. 청송은 고려 성종대에 청부현(靑鳧縣)으로 고친 이래, 1394년 청보현(靑寶縣)으로 개칭되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소헌왕후의 친정 고향인 청보현을 인근 진보현과 합쳐서 청보군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424년(세종 5)에 다시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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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청송군의 고전문학으로는 우선 구비전승되고 있는 작품을 들 수 있다. 구비전승에는 설화·민요·속담·수수께끼 등이 포함되는데, 청송군 지역에는 다수의 설화와 민요·동요가 『청송군지』,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 7-20, 『청송의 향기』 등에 수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전설로는 초막골 지명에 얽힌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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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서원모(徐元模)[1787~1858]는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유학자이다. 권이복(權以復)과 유범휴(柳範休)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주왕산지』를 저술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선응(善膺), 호는 주남(周南). 아버지는 서활(徐活), 어머니는 김용학(金龍㶅)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 할아버지는 서이양(徐爾亮), 증조할아버지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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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청여(淸如), 호(號)는 매야(邁埜). 아버지는 서이양(徐爾亮), 어머니는 조경원(趙景源)의 딸 함안조씨(咸安趙氏)와 박성신(朴聖藎)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 할아버지는 서치중(徐致中), 증조할아버지는 서한정(徐漢挺)이며, 부인은 이의중(李宜中)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서활(徐活)[1761~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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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효원(徐孝源)[1839~1897]은 1896년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陳)의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청송의진의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에 선임되는 등 창의 때부터 해산할 때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백순(百順), 호는 석간(石澗). 1839년 9월 25일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서문희(徐文熙)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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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유치구(柳致球)[1793~1854]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성장한 후에는 유건휴(柳建休)에게 퇴계학통의 학문을 배웠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내봉(來鳳), 호는 소은(小隱). 아버지는 유상문(柳相文), 어머니는 조명복(趙命復)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인데, 유두문(柳斗文)과 생원(生員) 이천섭(李天燮)의 딸 여주이씨(驪州李氏)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