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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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7월 26일 저녁 8시에 산사태로 인해 사람이 21명이나 죽었어요.”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지만 4대째 남창마을에서 살고 계신 사공태 옹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어. 저 산성 안에 산이 도유림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도에서 전부 다 나무를 베고 가고 난 뒤에 산이 헐거워져서 그래 됐지. 도가 다 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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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마을 사람들에게 옛 남창마을을 기억하는 것은 곧 유년을 추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수풀로 뒤덮여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옛 남창마을 자리에서 어린 시절 마을을 누비며 떡을 사먹고 누가 심었는지도 모르는 돌배를 따먹던, 지금보다 풍요롭지는 않아도 마음 가득 따스함이 전해지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사공태 옹의 얼굴에서 유난히 추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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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칠곡지』에 의하면, 가산 산정에는 개암산[일명 가산바위]이 있는데, 야사에는 이 바위틈에 쇠말과 쇠소를 많이 쌓아 두었다고 전한단다. 일찍이 신라의 승 도선이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혹 탑을 쌓고 혹 쇠로 만든 물상을 묻어 지기를 진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1639년 이명웅이 경상도관찰사로 와서 가산산성을 쌓으면서 그 쇠소와 쇠말을 파서 버리고 한 산을 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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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남창마을에 사공태 옹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그처럼 풍요로운 남창마을 이야기를 어디에서 전해들을 수 있었을까? 살아 있는 남창마을 생활박물관처럼 어르신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하루하루에는 남창마을 역사가 오롯이 녹아 있었다. 2009년 77세가 되시는 사공태 옹은 요즘도 1년에 다섯 번은 가산산성을 오르실 만큼 건강하시다. 또한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총총한 기억력과 듣는 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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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산성을 오르는 많은 등산객 중 누가 과연 산성 안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남창마을 사람들이 현재의 자리로 이주한 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나서, 그나마 사람들의 기억력을 감안할 때 지금 70대가 넘은 마을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면 옛 남창마을의 추억도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도호부가 있고 성이 있고 성 안에 사람이 오래 살았으니까 이야기가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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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남원2리, 곧 남창마을은 1954년 집중 폭우로 원래의 남창마을이 유실되기 전까지는 남창마을의 논밭이 있던 자리이다.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농사를 이까지(여기까지) 지으러 와야 했지. 등허리 지게에 담아가 짊어지고 저 올라가면 오전에 한 짐, 오후에 한 짐, 두 짐밖에 못 져.” 하신다. 가산산성 안의 마을에서 논과 밭이 있는 현 남창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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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남창마을을 대표하는 것은 친환경 우렁이농법으로 재배한 쌀이다. 약 10여 년 전 원당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우렁이농법은 우렁이 각시 이야기처럼 마을 사람들의 일손을 덜어주며 마을 경제의 중심축이 되었다. “모심어 놓고 풀 나지 마라고(말라고) 제초제 치고 이라는데 그걸 여(여기) 놓으니끼네 농약도 덜 가고, 이기 자라면서 다 먹더라고…….” 논에 우렁이를 넣어 놓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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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남창마을은 1954년 폭우로 원래 남창마을이 유실된 후 남창마을 사람들이 그대로 옮겨와 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남창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재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한국민사원조단의 단장인 미 육군대령 로센펠드 대령을 기념하기 위해 1955년 세운 공덕비가 서 있다. 공덕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DEDICATED/ COL. A. H. ROSENF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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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232번지에 위치한 동명동부초등학교는 남원리 주민을 비롯해 동명면 5개 동 사람들의 유년을 풍요롭게 했던 장소이다. 특히 남창마을에 거주하는 사공태 옹 집안 3대에게는 더욱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어린 장소이기도 하다. 1954년 남창마을에 수해가 났을 때 수해민들이 임시 거처로 모여 지내던 곳이기도 해서 특히나 남창마을 사람들한테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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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산성으로 오르는 길 양편으로 펼쳐진 남창마을 들녘은 여느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돌담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유난히도 돌이 많은 남창마을은 담도 돌, 논도 돌투성이다. 그 돌로 마을 경제의 일부분을 채워 나가기도 했다지만, 그래도 농사를 짓는 데는 이만저만한 걸림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창마을에서 우렁이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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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마을의 대표적인 마을 행사였던 동제는 원래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에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여 마을 행사로서 거창하게 지냈던 동제는 사라진 지 오래고, 해원정사 스님들이 이세재 불망비 앞에서 이세재를 기리는 제사와 함께 간략하게 정성을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약 50여 년 전 동제의 제관을 맡은 적이 있던 사공태 옹에 따르면 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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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가 나서 갑자기 마을이 유실되었다고 해서 추억마저 유실되는 것은 아니다. 1954년의 집중 폭우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남창마을 사람들, 특히 그 당시 어린아이였다면 어릴 적 뛰놀던 옛 마을에 대한 기억은 더욱 생생할 것이다. 2008년 10월,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에서 사공태 옹을 만났다. 옹은 남창마을의 추억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입담 좋고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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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정자나무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쉬는 평상이 아닐까 싶다. 남창마을 입구에도 마을을 지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커다란 느티나무와 지은 지 5~6년 된 육각정 평상이다. “여름 되면은 정자에 전부 모여 가지고 연세 많은 분들은 경로당(새마을회관), 밑에는 할머니들 경로당(노인회관), 좀 젊은 사람들은 정자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