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로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건축 문화는 시대 조건의 반영으로 그 시대에 지역적 특성을 지닌 건축적 총체를 의미한다. 충주의 건축 문화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의 중원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을 지닌 건축적인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충주 지역이 중원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중원 지역은 제천·단양·청주·보은·진천·원주·영월·여주·안성·영주에 이르는 넓은 공간...
-
조선 후기 공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양(景養), 호(號)는 하당(荷堂). 증조할아버지는 민각수(閔覺洙)이며, 할아버지는 민백준(閔百準)이고, 아버지는 민용현(閔龍顯)이다. 어머니 김씨(金氏)는 김세순(金世淳)의 딸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다. 민치상은 1845년(현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불교 신자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 충주 지역의 사찰에 대해서는 『고려사』에 숭선사·죽장사·대원사·개천사, 『세종실록』에 청룡사·김생사·용두사·엄정사·향림사,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련사가 보인다. 이후『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도 사찰명이 기록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사찰이 있었던 것은 오늘에 전하는 수많은 절터로 알 수 있다....
-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원(孺元), 아버지는 임파현령 조이순(趙頤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김상휴(金相休)의 딸 광주김씨(廣州金氏)이다. 조병로는 1849년(철종 1) 음관(蔭官)으로 출사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시작으로 1858년 보성군수가 되고 1862년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밀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
-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문화와 생활 양식이 반영된 주거 유형과 주거 의식. 충주는 고대로부터 지방 행정 중심지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성곽 도시였다. 평지 중심부에 관아를 둘러싼 읍성을 비롯하여 주변 남산·대림산 등에 산성이 있다. 전형적인 성곽 도시여서 근대 도시보다 시가의 중심 도로가 불규칙적이며 인도의 폭이 좁은 편이다. 충주읍성은 1277년(충렬...
-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蒼龍寺) 옆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죽정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아직 미상이며, 남아 있는 석탑과 주변의 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보이며, 1652년(효종 3) 개즙(改葺) 기록이 있는 명문기와로 보아 이때까지도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폐사 시기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충주목사였던 조병로(趙秉老)에...
-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석종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시에 있는 남산의 산록에 일명 죽정사지(竹精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찰은 조선시대인 1870년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다. 사지는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사지 일대에 다량의 기와편을 비롯하여 밭 가운데 파손된 석탑재가 남아...
-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창건된 법주사의 말사. 남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하며, 1988년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창룡사는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靑石塔) 등의 유물로 보아 창건 시기가 신라시대로 올라가는 절...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건물. 동헌이 아닌 별관으로 사용된 관아 건물로,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 행차하였을 때 머무르던 곳으로 뒤쪽의 산고수청각은 이의 부속 건물이었다. 1870년(고종 7) 충주 청령헌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하여 아사(衙舍)로 사용하였고, 해방 후에는 지방관인 중원군수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가 1983년 중...
-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석탑. 창룡사는 충주시 직동에 소재하고 있는 사찰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시기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고려 말 선각왕사 혜근이 중수하였으며, 조선 후기 서산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범우고(梵宇攷)』를 비롯한 조선...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가 집정하던 동헌.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며, 1277년(충렬왕 3) 충주성이 개축(改築)되었고 1870년(고종 7) 병인양요 후 조칙에 의해 충주성이 개축되었다고 한다. 충주 청령헌은 1870년 8월 화재로 소실되어 같은 해 10월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하여 세웠다. 그 후 1895년(고종 32)에 전국이 23...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축성에 대한 사적비.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를 겪은 뒤 전국의 성첩과 군기를 보수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조칙이 내려오자 1869년 2월부터 읍성을 개축하기 시작하여 10개월 만인 11월에 준공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화강암 충주 축성사적비를 세웠으며, 앞면에는 축성 연대와 성의 크기, 문루의 크기를 상세히 기록하였...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터. 충주 청령헌(淸寧軒)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83년 보수할 때 옥개 부분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1870년(고종 7) 8월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같은 해 10월에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의 지시로 창룡사를 옮겨 중건한 건물임이 밝혀졌다. 그 동안 내부를 개조하여 중원군 청사로 사용하다가 1...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일대에 있던 조선시대 읍성. 충주읍성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를 치른 뒤 전국의 성첩과 군기를 보수하고 대오와 군저를 확장하고 포수를 배치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명을 받고, 1869년(고종 6) 2월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읍성을 개축하여 10개월 만인 11월에 완성하였다. 이때 개축된 성의 둘레가 3950척, 두께 25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