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에 있는 신립장군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신립[1546~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명장으로, 1567년(명종 22) 22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 도총관 등을 거쳐 온성부사, 함경도북병사, 평안도병마절도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 방어의 임무를 띠고 팔도도순변사로 임명되어 충...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앙암면(仰岩面)과 복성면(福城面)에서 ‘앙(仰)’자와 ‘성(城)’자를 따 앙성면(仰城面)이 되었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앙암면이라 하여 말암(末岩)·검단(儉丹)·중방(中方)·서음(西音)·저전(楮田)·강정(江亭)·고촌(庫村)·학미(鶴尾)·천포(泉浦)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지리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충주는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충주시 용탄동과 조동리 등의 유적과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선사 문화의 시원과 이동, 전파 및 취락의 형태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선사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어업에 편리...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충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육승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의 의병장 조웅(趙熊)과 함께 충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앙성(仰城)[현 충청북도 충주시 앙서면]에서 왜군과 싸워 북상하는 적의 주력 부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또 정응성(鄭應聖), 이홍사(李弘嗣) 등과 함께 서득남(徐得男), 서춘세(徐春世) 등을 지휘하여 왜군을 유인하여 30여 급을 참수한 공...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의병은 어떤 특정한 시기에 국한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우리 역사의 전 시기에 걸쳐 외침이 있을 때마다 일어났던 민병대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용어가 같다는 이유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한말 의병전쟁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일어났던 다양한 성격의 의병이 동일하게 이해될...
-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의병장.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기(白旗). 개국공신 조인옥(趙仁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조일(趙逸)이다. 충주 출신의 조웅은 1591년(선조 24) 조헌(趙憲)의 천거로 선전관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강(趙綱)을 따라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나...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 의병장 조웅이 받은 공신녹권. 임진왜란 때 충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의 북상을 저지하다가 순절한 조웅(趙熊) 장군에게 1605년(선조 38)에 내려진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이다. 여기에는 임진왜란 때 충절로 이름이 있던 선무(宣武)·호종공신(扈從功臣) 등 9,000명의 이름이 등재...
-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서 조웅 장군의 전투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진왜란 때 조웅은 의병을 일으켜 청계산을 중심으로 왜병과 맞서 싸운다. 수차례 전공을 세운 조웅은 청룡사에서 순국한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1990년 충주공업전문대학 『청룡사지 지표조사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에 한종구가 채록하고 정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
-
충주 지역은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고대부터 철광산이 개발되어 철광석을 캐고, 쇠를 뽑고 녹이고 두드려 각종 무기나 농구 등의 연모를 만들던 쇠부리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고대 국가의 힘의 상징인 철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은 공히 충주 지역에 공을 들였으며 충주 지역을 확보한 국가가 항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충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하던 자원의 보고였...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열녀의 총칭. 충주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백기당(白旗堂) 조웅(趙熊)을 비롯한 4명이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환여승람』에는 11명,『충주시지』에는 11명이 기록되어 있다. 충주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에 헌신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