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감영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 관가의 건물 현황. 충주는 1395년(태조 4) 충청감영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감영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실시할 때 충주부가 되었으며, 1896년(고종 33) 13도제를 실시할 때 충청북도의 관찰사부(도청)가 되었다. 1908년(융희 2) 충청북도 관찰도(도청)가 청주로 옮겨갈 때까지 충청북도의 중심 도시였다. 따라서 많은 관...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근린공원. 충주시 성내동 154-1번지 일대는 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官衙)가 남아 있는 곳으로, 1981년까지 중원군청 청사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화유산인 충주목 관아의 보호와 함께 시민의 건강·휴양 및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983년 1월 5일 당시 건설부 고시 제479호로 지정을 받아 「도시공원...
-
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대숙(大叔)·언부(彦夫), 호는 해화당(海華堂). 아버지는 밀직사를 지낸 서원(徐遠)이다. 목은 이색(李穡)의 증손으로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이축(李蓄)을 사위로 맞이하였다. 아들 서달(徐達)은 황희(黃喜) 정승의 사위이다. 1367년(공민왕 16) 태어난 서선(徐選)은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음지말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안부역(安富驛)은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조에 처음 기록이 나오며, 조선시대에는 연원도(連原道)에 속한 14개 역 중 하나였다. 안부역에는 대마 3필, 기마 6필, 복마 6필, 노(奴) 106명, 비(婢) 28명, 역리(驛吏) 25명이 속해 있었다. 안부역은 고려시대...
-
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빙옥헌(氷玉軒). 문의공 이언충(李彦沖)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작(李作), 할아버지는 이의흡(李宜洽), 아버지는 이신효(李愼孝), 어머니는 성허의 딸이다. 형제로 이복숭(李福崇), 이녹숭(李祿崇), 이명숭(李明崇)이 있다. 처는 홍순성(洪循性)의 딸이고, 아들 이귀령(李龜齡)은 병조판서를 지냈다. 사위는 파산부원...
-
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 고려 말 시중을 역임한 이춘부(李春富)의 4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옥(李沃), 할아버지는 이사근(李思謹), 아버지는 병조판서에 추증된 이온(李蒕)이다. 1422년(세종 4) 태어난 이승소(李承召)는 1438년(세종 20) 17세로 진사시에 급제하고, 1447년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
1728년(영조 4) 3월 이인좌 등이 정권 탈취를 기도하며 충청감영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사건.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은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서...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
조선 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趙泰采),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조영순(趙榮順),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1751년(영조 27)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조정철(趙貞喆)은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
1817년(순조 17) 충청북도 충주 출신 채수영이 일으킨 역모 사건. 1802년(순조 2) 김조순(金祖淳)의 딸이 왕비로 책봉된 뒤 1804년 정순왕후가 죽자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비변사를 비롯하여 조정의 권한을 장악하였다. 이로부터 안동김씨 세력의 세도 정치가 실시되었으며, 이로 인해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뇌물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수령들은 백성들을 더욱 수탈하였다. 18...
-
198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충주 지역 역사와 일반 현황을 정리하여 간행한 향토지. 충주 지역은 고구려 때 국원성, 신라 때 국원소경, 통일신라 때 중원경, 고려 때 전국의 8목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전기 충청감영이 설치된 충청도 지방의 중심 도시였다. 그런 만큼 충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충주를 다룬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충청도관찰사가 업무를 집행하던 관청. 충청북도 충주시에 두었던 충청감영에는 중앙의 6조를 그대로 옮긴 6방(이·호·예·병·형·공)을 설치하여 향리를 통해 감사가 도(道)의 사무를 집행하였다. 조선은 점차 국가의 기틀이 잡혀감에 따라 지방행정조직을 고려의 5도 양계에서 발전된 8도로 정비하였다. 조선의 8도는 경기·충청·전라·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