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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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敦睦齋 |
영어공식명칭 | Donmokja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36길 38[만촌동 19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일주 |
현 소재지 | 돈목재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36길 38[만촌동 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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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돈목재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36길 38[만촌동 197-1] |
성격 | 재실 |
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한옥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달성하씨 봉사공파 만촌동 종중 |
관리자 | 달성하씨 봉사공파 만촌동 종중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하시찬을 배향한 달성하씨 문중 재실.
[개설]
돈목재(敦睦齋)는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배향하고 있는 달성하씨(達城夏氏) 문중 재실이다. 달성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대도독을 지낸 하흠(夏欽)이다. 하흠은 인종(仁宗) 때 고려에 귀화하여 달성(達成)[현 대구광역시]에 정착하였고, 하흠의 아들 하용(夏溶)은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은 본관을 달성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달성하씨는 조선 후기 영조(英祖) 대 이후에는 벼슬보다 학문과 덕행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중에서도 하시찬은 예학(禮學)에 밝아 『팔례절요(八禮節要)』를 저술하였고, 만년에는 ‘독무암서(獨茂巖棲)’라는 서재를 짓고 유학에 정진하며 『열암문집(悅菴文集)』 전 5권을 남겼다.
달성하씨 문중의 유적으로는 고려 때 이부시랑을 지낸 효자 하광신(夏光臣)의 정려각과 독무재(獨茂齋),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당공원의 달성하씨유허비(達城夏氏遺墟碑) 등이 있다.
[위치]
돈목재는 수성구 화랑로36길 38[만촌동 197-1]에 있다.
[변천]
돈목재는 하동달(夏東達)이 여러 일족들의 힘을 모아 중수하였다. 박효수(朴孝秀)가 쓴 기문(記文)이 남아 있다.
[형태]
돈목재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이다.